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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시부모님 맞이 준비

by 글쓰는 백곰 2018. 7. 18.

지금으로부터 약 한 달 전,

우리는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다.

시부모님께서 우리집에 오시기로 한 것이다.

두 분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을 늘 궁금해 하셨다.

아직 우리 자가주택도 아니고, 렌트이지만

캘리포니아 기후가 온후하기 때문에

오셔서 요양도 하시고 관광도 하시면 좋겠다 싶었다.


두 분은 소일거리 삼아 봉사 활동을 하신다.

겨울에는 2~3달 쉬는 기간이 있으므로

남편은 그 시기에 우리집에서 한달 정도 요양하셨으면 했다.

그러나 나는 흔쾌히 대답하지 못했다.

한달이라...

그동안 남편은 출퇴근을 할 것이고,

두 분을 보살펴드리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일텐데.


90세가 가까우신 아버님은 최근 몸이 많이 쇠약해지셨다.

게다가 입맛도 성격도 까다로우신 편이다.

그에 반해 어머님은 호기심이 많으시고 활발하신 편이다.

이렇게 극과 극의 성격이라

두분 사이에서도 극적 분위기가 연출될 때가 많다.

그런 두분을 내 집으로 모시고 와서,

두분의 구미에 맞게 모신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우선 식사를 3끼 다양하게 차려야 한다는 의무감과,

(아버님은 상에 두번째 오르는 것은 안 드신다)

교통이 편하지 않은 이곳에서

어디를 가시고자 하신다면 내가 다 모시고 다녀야 하고,

원하시는 티비 프로그램을 찾아 드려야 하고,

두 분이 가끔씩 다투실 때 중재(?)도 해야한다.

시댁이 편한 며느리가 몇이나 있겠냐마는

내가 고백하건데,

아니 내 몸이 증언하건데,

7년동안 같이 살다가 분가를 하자마자

만성 위염이 나았다는 것 정도로만 적어두겠다.

그런데 한달이라고…?

나도 출근한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남편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그냥 여름에 오시게 하면 어떨까 싶었다.

겨울에 오시면 한국에 비해서 캘리포니아가 따뜻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겨울이므로 관광하기에 적절하지 않고,

만약 두분이 아프시기라도 해서 컨디션이 망가지면

(두분은 각자 지병을 갖고 계심)

그게 더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으니

약 2주간 휴가처럼 오시는 건 어떨까 싶었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는 아버님을 생각하면

하루 빨리 오시는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에게는 겨울 1달보다

여름 2주라는 것이 최고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그리하여… 허겁지겁 두 분의 스케쥴을 조정하여

비행기 티켓을 구했고, 오실때 각종 준비해야할 것들과

유의사항(입국심사때 보여줄 레터까지)을 보내드렸다.


이제 그 날짜가 점점 가까워져오고 있다.

나는 현재 심한 압박감에 시달리며(?)

시부모님 맞이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우선 침구를 사야했다.

우리집에 지인이 놀러와 잔 경우가 거의 없으므로

접이식 매트리스 두 개를 샀다.

퀸 하나를 살까 하다가

각자 편하게 주무시라고 더블 두개를 샀다.

새로운 이불과 매트시트등을 사서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

차례차례 이불빨래를 세탁기에 돌렸다.

렌트집에 포함된 세탁기라 크기가 작아서 그런가

겨우겨우 들어갔다.

비슷한 크기의 이불을 돌려본 적이 있어서

이번에도 의심없이 넣었다.

그리고 살림 이것저것을 하느라 잠시 한눈을 팔았는데,

15분후, 섬유유연제를 넣으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

세탁기 주변 바닥에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불이 물을 모두 튕겨내어(새 이불이라 숨이 안죽어)

바닥이 물난리가 난 것이었다.

결국 나는 한숨을 폭폭 쉬어가면서 다 닦아내고

이불을 겨우겨우 꺼냈다.

베란다에 건조대를 꺼내어 조심조심 너는데,

이불이 너무 큰 나머지 베란다 바닥에 이불모서리가 닿아

까맣게 먼지가 묻었다.

아, 갑자기 뒷목이 뜨거워지면서 방언이 터지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나를 다스려야했다.

이제 시작이야! 정신차려!

조심스럽게 닦아내어 건조대에 널었다.



(애증의 이불빨래)


전날에는 2시간 30분동안 멸치똥을 땄다.

국이 없으면 밥을 드시지 않는 아버님을 위해서.

한국마트에 갔더니, 소량으로 파는 것들은 상태가 모두 쩔어있었다.

누렇게 뜬 것들을 제치고 가장 상태가 좋은 것을 찾아보니

1키로 상자에 있는 것들이 제일 상태가 좋아보였다.

그래서 주말 저녁, 소파에 앉아 2시간 30분동안 멸치똥을 땄다.

손가락이 따끔거리고 멸치 비린내가 손에 배었다.



(사진으로 내 고통의 설명을 생략한다)


어제부터 국을 대량으로 끓이고 있는 중이다.

어제는 미역국을, 오늘은 육개장을 끓이고 있다.

이 더운 날에 땀이 푹푹 나오지만,

이렇게 다양하게 만들어 놓고 냉동실에 얼려놓으면

그때마다 다른 국을 꺼내서 끓이기만 하면 되니까.



(안녕? 난 20인분이란다)


이제 본격적으로 식단도 짜야 한다.

2주동안 주방아줌마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면서 마음을 다 잡는다.

이것이 마지막이야, 마지막이야.

마지막으로 효도 한번 진하게 하는거야,

그렇게 스스로에게 마음을 다잡고 있다.

문득 생각해보니,

시부모님 맞이 준비는 다른 것들보다 먼저

내 마음가짐부터 다잡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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