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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미국에서의 첫 교통사고

by 글쓰는 백곰 2018. 8. 8.

약 2주 전,

시부모님이 한국에서 오신 지 사흘째 되던 날,

무료해하시는 시어머님을 모시고 시내구경을 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산타클라라는 뭐랄까,

워낙 잔잔하고 조용한 동네라 구경거리랄 게 없었기에

어머님이 그렇게 소원하시는 사람구경을 시켜드리기 위해

써니베일에 있는 다운타운에 갔다.

거기서 어머님께서 친구들에게 선물하실 물건도 좀 사고,

필즈 커피에서 커피도 사와 집에 돌아가던 길이었다.

신호 하나만 건너면 우리집이었다.

그 신고를 건너다가, 우리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경위는 이렇다.

우리는 직진신호를 받고 건너편 차들을 주의하며 천천히 서행하는데,

갑자기 우리차 옆구리로 직진한 차에 받친거다.

우리가 동서 방향 신호였다면

뜬금없이 남북 도로에서 신호 위반하여 우리를 친 것이다.

(우회전도 아니다)

그때 남편이 운전하고 있었고, 조수석에는 어머님이,

그 뒤에는 내가 탄 상태였다.

나는 별 생각없이 오른쪽 창문을 봤다가

나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직진하는 차를 정면으로 보았다.


정리를 하자면,

우리는 신호를 지키고 잘 가고 있었고,

어떤 또라이 차량들이 시내에서 레이싱 게임을 하며

신호 위반을 하다가, 우리를 받아버린 것이다.


나는 정면으로 받친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너무나 놀랐다.

남편은 앞만 보고 운전하느라 차가 받친 걸 나중에 알았지만

내 비명소리에 놀랐다고 한다.

다행히도 우리 세사람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저 뒷자리에 앉아 있던 나... 몇센치만 빗나갔어도 나는 이 블로그를 남기지 못했을테지...

차 파손이 별거 아닌 듯 보여도 뒷바퀴 축이 다 나갔다.)



(우리를 박은 또라이 차... 얼마나 세게 박았는지 우리차 바퀴 휠뚜껑이 박혔다.

심지어 그들은 에어백도 터졌다. 

"에어백 때문에 살았어~" 해맑게 웃던 그 얼굴들... 아오... 빡쳐...!)


그러나 문제는 사건 처리였다.

사고가 나면 보통 그 상황에서 사진을 찍거나 해서

증거를 남기기 마련인데,

사진을 찍기도 전에 상대편 차가 황급히 차를 빼버렸다.

교차로 가운데였기 때문에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차를 뺐다.

그리고 나서 서로 운전면허 정보를 주고 받고,

각자 보험회사에 연락을 했다.


표면적으로보면 별 문제가 없어보이지만,

이건 상당히 잘못된 사건 처리였다.

우선, 상대편에서는 자신이 잘못했다고 인정하지 않았으며

우리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조차 하지 않았다.

이는 자신들의 잘못임을 입증하는 자료가 되기 때문이고,

차를 바로 뺐던 것은 증거인멸을 위한 것이었다.


영어가 수월치 않은 우리가 그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수 있었겠는가.

생각나는 대로 아는 분들께 도움을 요청하려 전화해봤지만

단지 ‘보험 처리하라'는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결국 나중에 경찰을 불렀지만, 이미 차를 다 빼고 난 상태라

(심지어 그 사람들은 그 틈을 못참아 차를 견인해감)

경찰도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우리는 일방적으로 받친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의 생각이었을 뿐이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변호사에서 전화를 걸어 문의하니

5:5 과실로 나올 확률이 높다고 한다.

첫째, 사건 현장에 대한 증거가 없는 점.

둘째, 목격자도 존재하지 않는 점.

그렇기에 무조건 5:5로 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교통사고가 났을 때

대체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편이며

명확한 증거가 없을 경우 대개가 반반의 과실로 남는다는 것이다.


억울했다.

다친 것도 서러워 죽겠구만,

보험료도 올라가고, 수리비도 나가게 생겼으니.

게다가 상대편과 우리측 보험사가 같은 곳이라

더더욱 안이하게 처리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정말정말 억울하고 짜증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걸 맘껏 티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외출을 하자고 했던 시어머님의 마음이 불편할까봐,

그런 어머님을 아버님이 계속 책망할까봐,

우리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해야했다.


이번 사건으로 깨달은 게 많다.

첫째. 사건이 생기면 절대로 차를 옮기게 하지 말 것.

물론 그로 인해 교통체증이 생기겠지만,

경찰이 올때까지 차를 옮기지 않아야 과실의 여부가 정확히 판명난다.

둘째. 증거자료를 꼭 만들 것.

목격자를 확보한다던지, 블랙박스를 장착한다든지 해서

상대방이 부인할수 없는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다.

셋째, 언제고 사고 당할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를 할것.

한국에서 운전을 그렇게 오래 해도 사고 한 번 난 적 없다가

정작 외국에서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대처 요령이 없었다는 것. 너무 몰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짧은 영어로 이 상황을 설명하기 조차도 힘든 상황에

누군가가 와서 도와주겠지 라는 희망도 버려야 한다.

물론 아는 분이 와서 해결을 해주면야 좋겠지만

모든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어차피 본인의 몫이므로

만약을 준비하며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한다는 것이다.

추가하자면, 리스카를 조심해야한다.

제대로 된 차량 넘버가 아닌 차를.

여기에서 리스카는 한국에서의 '허' 넘버 차량격이다.

내가 관찰해본 결과, 그들은 운전을 양아치스럽게 한다.

(개인적인 의견이나, 참고할만하다고 생각함)


현재 차를 수리중인데, 상태가 심각한 모양이다.

차를 산 가격의 반 정도가 수리비로 청구되었다.

어차피 보험처리를 할 것이지만,

여러모로 가슴쓰린 사건이었다.


모르니 그렇다. 준비하지 않으니 그렇다.

인생의 값진 수업료를 냈다고 생각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억울하다 생각하면 끝이 없지만

또라이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음을

감사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 이후로 우리 식구는,

차만 타면 몸이 경직되는 일이 많아졌다.

남편차가 수리중이라 내 차로 운전하고 있는데,

둘 다 충격이 심했는지 운전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고 있다.

생각같아선 운전하고 싶지도 않지만

여긴 차 없으면 못 사는 곳이니

어차피 극복해야 할 것,

이 악물면서 견뎌야지 별수 있나.

어서 빨리 이 후유증에서 벗어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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