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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그사람

박씨 아저씨

by 글쓰는 백곰 2018. 9. 1.

나는 한때 화물운송업체에서 일했었다.

엄밀히 말하면 ‘알선업체'이다.

각자 영업용 화물차를 가지고 있는 차주들에서

달마다 수수료를 받으면서

업체로부터 운송 알선을 해주는 곳이었는데,

엄마가 배차를 하고,

나는 경리를 보았다.

그것이 내 첫 직업이었다.


그때가 1997년이었고,

IMF로 경제가 파탄나던 시기였다.

원래 화물업은, 화물운전만 전문으로 하는 기사들이 있었다.

그러나 IMF 이후로 퇴직한 사람들이 몰리면서

전직 은행원, 꽃농장 주인등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7년을 거기에서 일하면서

여러사람이 떠오르곤 하는데 그중 박씨 아저씨가 기억난다.


아저씨는 할아버지라도 해도 이상하지않을만큼 나이가 많은 편이었다.

다혈질에, 화가 나면 목소리부터 커지는 사람이었고

그 때문에 여러 사람들과 자주 부딪히긴 했지만

그 과정을 한번 겪은 사람들은

다음날이면 으레 좋은 동료 사이가 되곤 했다.

아마도 그 다툼을 푸는 과정에서

아저씨의 화통함, 뒤끝없는 성격이 드러났기 때문이리라.

물론 정말 이상하고 나쁜 사람들은 상대도 하지 않으셨다.

듬성듬성 빠진 치아, 쭈글쭈글한 얼굴 주름,

인상 쓰고 있을 때의 아저씨는 확실히 호감형 얼굴은 아니었다.

체격은 나보다 작았지만,

아저씨의 거친 손은 누구보다 두꺼웠고, 거칠었으며

육체노동으로 단련된 삶을 증명하는 것만 같았다.

아저씨들이 모여 고스톱을 치고 있을 때,

나는 물끄러미 그 손을 쳐다보곤 했다.

왠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고 속삭이는 듯한 손이었다.


아저씨는 부모님의 사업을 도와주는 나를 안쓰럽게 여기셨다.

동료들에게는 욕도 서슴치 않고 발길질도 하셨지만

내게는 언제나 존댓말을 하셨고, 다정하게 웃어주셨다.

늦둥이 딸 하나가 있었던 아저씨는

귀한 딸 보듯이 나를 대해주곤 했다.

아저씨는 아주 어릴적 부모를 여위고

고아처럼 살다가 닥치는대로 아무일이나 하며 살았다고 한다.

박복한 자신은 결혼도 못할거라 생각하다가

뒤늦게 아내를 만나 늦둥이 딸을 낳았는데

자신의 나이에 비해 너무나 어린 아이가 언제나 걱정이라고 했다.

아저씨는 우리 회사가 망할때까지 함께 했었고,

결국 회사가 망하게 된 후에도 안부를 전해오곤 했다.


그후 몇 년 지나지 않아 엄마가 돌아가셨다.

나는 장례식장에서 손님들을 맞고 있었다.

아저씨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미 한참을 운 듯한 퉁퉁부은 얼굴이 보였다.

고개를 숙인 채로 영정사진에 절을 하던 아저씨는

내게 아무말도 못한 채로 입술을 꽉 물고 뒤돌아섰다.

나 역시도 아무말 하지 못했다.

내 슬픔 자체도 감당하기 어려웠기에.

몇분 되지 않아 식당에서 아저씨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나도 그 소리와 같이 울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자, 아버지는 재혼을 했다.

1년도 되지 않아 재혼을 했다고 누군가는 수군거리기도 했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법이니까,

남자는 스스로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편이니까,

나는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두분 다 재혼이기에 간단한 절차를 치를줄 알았는데

뜻밖에 결혼식을 감행하셨다.

부끄러울 것 없다는 입장이셨고, 나도 동의했다.

자녀들이 부모님에게 보낼 편지를 준비해달라고 아버지가 부탁하셔서

나는 자식들 대표로 결혼식에서 축하의 편지를 낭송하기도 했다.

여러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아무 생각없이 결혼식을 지켜보았고

결혼식이 끝나자 식당으로 향했다.


내가 결혼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아는 분들에게는 인사를 해야했다.

그게 자식된 도리 같았고, 반가운 얼굴도 있었다.

그렇게 식당테이블을 보면서 인사를 하고 있는데,

저기 어딘가에서 젖은 얼굴로 내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박씨 아저씨였다.


내 손을 왈칵 잡으신 아저씨는

소리 죽여 울고 있었다.

-아저씨, 이 좋은 날 왜 울어요,

나는 웃으며 아저씨를 달랬지만

아저씨의 어깨는 더욱 크게 들썩였다.

-미쓰유, 잘 살어, 잘 살아야 해. 알겄지?

그 말만 몇번이고 반복하셨다.

내 손을 꽉 잡고 있는 아저씨의 손이 한없이 뜨거웠다.

문득 내 눈시울도 뜨거워질것 같아 눈을 들어보니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몰리고 있었다.

마치 사연있는 사람들마냥 보이는 듯 해서

나는 아저씨의 손을 슬그머니 놓고 와버렸다.


아저씨는 왜 그렇게 울었던 것일까.

엄마와 그렇게 허물없던 사이였는데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나서,

그 짧은 생이 안타까워서 우신 것일까,

아니면 엄마를 빨리 잊어버린 듯한 아버지가 원망스러워서 우신 것일까,

이제 정말로 엄마를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내가 가여워서 우시는 것일까,

왜일까.


아저씨의 울던 얼굴이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얼굴이 되어버렸다.

우락부락하지만, 한없이 다정해 보이던 그 젖은 얼굴.

이제는 칠순도 넘으셨을 아저씨,

아저씨 딸은 시집을 갔을까,

틀니를 하신다고 이를 다 뽑으셨었는데

지금은 치통으로 고생하지 않으시려나,

잘 지내고 있으시길,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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