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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그 곳

3박 4일 로드트립

by 글쓰는 백곰 2017. 9. 10.

본의 아니게 로드트립을 했었다.

이사를 하려고 보니 차 수송비가 너무 들어

차라리 우리가 끌고 가자고 해서 시작된

3박 4일의 여정이었다.

 

텍사스에서 캘리포니아로 가는 길엔

뉴멕시코, 아리조나를 통과해야했다.

총 4개 주를 건넜다고 볼수 있는데,

약 30시간 정도가 걸렸다.

 

첫 날.

이삿짐을 다 보내고, 공과금 정리하고

늦은 점심을 먹고 난후 출발했다.

 

 

처음에는 텍사스의 시골길을 한참 달려

10번도로로 진입해야했다.

이제 저 멋진 텍사스 하늘도 끝이라니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해가 질때까지 5시간을 운전했지만,

아직도 텍사스를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미리 예약해둔 숙소에서 하루 잤다.

 

그리고 두번째날,

그 날이야 말로 지루한 운전이 시작되었다.

오전내내 달렸더니 뉴멕시코에 들어섰다.

점심엔 엘파소에서 간단히 타코를 먹었다.

 

 

계속 되는 운전, 또 운전...

남편과 나는 번갈아가며 운전을 했다.

미국의 장거리 운전에는 '크루즈'기능이 필수라는 것을 느꼈다.

페달을 떼고 정속도로 가는 것이 덜 피곤하긴 했다.

남편은 주로 그 기능을 많이 썼는데,

의심이 많고 고지식한 나로써는 그게 불편했다.

게다가 자꾸 추월하는 차들, 느리게 가는 차들이 한데 엉켜

일정하게 운전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장농면허인 남편은 오히려 낮은 속도로

크루즈 운행을 하며 갔다. 

아마도 내가 70프로, 남편이 30프로 정도 운전했었던 듯 하다.

가끔씩 식사를 하거나, 주유를 하러 도시에 들어서면

무척 혼잡한 도로사정에 남편이 힘들어 했기 때문이다.

 

뉴멕시코에 들어선지 얼마 안되었을 때

주경계선을 넘어서자, 검문이 있었다.

하필 국경에 인접해 있는 도로를 달린 것이었다.

검문을 한다는 이야기는 얼핏 들었어도

특별히 준비할게 뭐가 있나 싶어 

앞차가 어찌 하는가를 살펴보니

그냥 유리창 내리고 얼굴보고 쓱 가길래

우리도 그렇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유리창 내리고 인사하고 가려는데,

검문하는 사람이 무서운 목소리로 불러 세웠다.

너 미국인이야?

아니. 그냥 영주권자인데.

그럼 증명해봐.

그래서 우리는 주섬주섬 그린카드를 꺼냈다.

그러자 자세히 보지도 않고

그냥 그린카드의 실루엣만 보고도 통과시켰다.

아마도... 우리가 검문에 걸리게 된 것은

썬그라스를 낀채로 통과하려 했다는 점과

(공손해도 모자를 판국에)

일반적인 인종(?)이 아니어서이지 않나... 싶다.

 

 

열심히 달리다 보니,

어느새 뉴멕시코를 통과해서

아리조나 주에 들어서게 되었다.

 

 

벌써 해는 뉘엿뉘엿 지려 하고...

숙소에 가기 전에 요기를 하기 위해

한국 식당을 수소문해 들어갔다.

 

 

주 메뉴인 육개장과 파전, 김치찌개는 별로였으나

식탁에 쫙 깔리는 밑반찬은 무척 만족스러웠다.

오스틴에서는 만나볼수 없었던 퀄리티였다.

별게 다 반갑고 좋아서, 허겁지겁 먹고 왔다.

 

그날은 내가 7시간 가량을 운전했는데,

나중에는 내가 운전을 하고 있는 건지,

운전이 나를 하고 있는 건지 알수 없을 정도로

무상무념으로 운전했던 기억이다.

게다가 너무 오래 운전을 하니

차에 내리고 나서도 어지럽고,

자꾸만 몸이 앞으로 쏠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그 와중에...

까다로운 아들의 밥도 챙겨줘야 했기에

호텔에서 볶음밥을 만들어 먹였다.

여행 내내 호텔에서 볶음밥을 먹였는데,

주방이 있는 호텔이 거의 없어서

핫플레이트를 가져가서 조리했다.

운전만으로도 지치고 기절할 지경이었지만

자식이 뭐라고... 두눈을 찔러가며 만들어 먹였다.

 

그리고 다음날... 또 시작되는 운전, 운전.

 

 

나는 텍사스만 불지옥인 줄 알았는데,

그보다 더 한 곳이 아리조나였다.

어찌나 햇볓이 강렬한지, 

습기도 하나 없는데 숨이 턱 막혔다.

 

 

만화에서나 보던 인간 선인장(?)이 보이는

사막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아리조나는 사막이었던 것이다.

어쩐지... 죽을 것 같이 덥더라니...

 

그렇게 오전을 내내 달려

드디어 캘리포니아에 들어섰다.

우선 LA에 들어섰는데,

사막만 달리다가 도시에 오니

시내 도로가 아수라장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운전 매너 역시 대도시다웠다.

칼치기 운전에, 빵빵대는 소음에..

 

 

우리가 간 식당은 강호동의 '백정'이라는 곳이었는데,

너무나 시끄럽고, 서비스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고기 먹고 힘내자며 들어갔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정신을 놓은 채 먹었다.

오래간만에 먹은 코리아 바베큐(?)는

처음 몇 입은 먹을만 했으나,

지나친 기름기로 인해 많이 먹기 거북했다.

텍사스에서 기름기 없는 고기들만 먹다가

마블링 가득한 한국형 고기를 먹으려니

어느 순간엔 한계가 느껴졌다.

그래도... 먹었다.

운전을 하다보니, 하루에 한 끼 먹기도 힘들었다.

적당히 어디서 쉬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컨디션이 어찌 될지 모르니

되는 대로 움직이고, 되는 대로 먹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긴 여행동안 아이가 얌전했던 것이다.

예전부터 차를 많이 태우고 다녀서

카시트에 앉는 것도 힘들어하지 않아하고,

각종 간식과 아이패드를 구비하여

오는 내내 평화롭게 올수 있었다.

물론, 인터넷이 잘 안터져서 

유튜브가 많이 끊기긴했지만, 

그럭저럭 잘 협조해 준 아들이 고마웠다.

 

 

생각보다 일정이 늦어져서 

캘리포니아에서 밤운전을 해야했다.

처음에는 해안가를 따라 가더니만

나중에는 왠 산을 타고 가는게 아닌가.

와... 좁은 도로를 왕복 1차선으로 가는데

불빛 하나 없어서 차선도 잘 보이지 않고,

앞이 하나도 안보이는 것이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가 반대편에서 차가 나타나기라도 하면

그 불빛때문에 자꾸만 시력을 잃었다.

게다가 내 뒤에는 차들이 바짝 붙어

초행길인 나의 사정따윈 상관하지 않고

계속 압박해댔다.

운전경력 20년의 나도 정말 간담이 서늘하고

그 스트레스가 어찌나 컸는지 모른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를 운전하고 나니

기진맥진... 죽을 지경이 되어 숙소에 도착했는데

그 와중에도... 아들 볶음밥은 만들어야 했다.

너무 어지러워서 잠깐 침대에 누워있으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볶음밥 타령을 하는 아들...

아... 정말이지....

이 볶음밥의 저주는 언제까지인가... ㅋㅋㅋ

 

다음날... 3시간 정도를 운전해

드디어 우리집 산타클라라로 도착했다.

 

 

이제 우리동네라고 생각하니

낯선 풍경에도 안도감이 들었다.

 

30시간의 운전으로 4개 주를 건너온

로드트립... 

휘발유값은 약 150불 정도 들었다.

뭐 숙박비는 비행기를 탔어도 들었을 거고...

정말 정말 토 나오는 여정이었다.

약 3000불 벌자고 시작한 여행이었는데

딱 3000불치 몸을 혹사한 느낌이다.

내가 1년만 더 나이를 먹었어도 하지 않았을

미친 시도였다... 

그렇게 이사온 지 3주가 지났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맛이 갔던 컨디션이 돌아왔다.

텍사스와 캘리포니아의 2시간 시차 역시

이제서야 적응이 된듯 하다.

그런데 며칠전에 남편이 하는 말,

크리스마스에 라스베가스를 캠핑카 끌고 가보자고.

저 양반, 양심도 없다. 

아니, 기억력이 없는 건가?

나는 아직도 토할것 같았던 몸의 기억이 생생한데.

한번만 더 이야기해봐라...!!! 아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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