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이가 걸어 다니는 걸 좋아해서
학교수업이 끝나면 일부러 걸어서 집에 돌아온다.
아침에는 정신이 없어서 차로 데려다 주지만
하교길은 어느정도 여유가 있고,
낮이니 햇볕도 따스하고 걷기도 좋은 온도다.
어떤 점이 좋아서 걷자는 건지
아이에게 물어도 별 대답이 없다.
다만, 둘이 손을 잡고 걸어오는 그길에서
아이는 누구보다 수다스러워지고,
많이 웃을 뿐.
그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니, 그 순간이 너무나 행복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는 주택가로 빙 둘러가는 것보다
차가 많은 대로 주변으로 걷는 걸 좋아한다.
안전하기야 주택가가 더 훌륭하겠지만,
간판도 없고, 차들도 없는 그런 한적한 곳이
아이에게는 영 재미없는 모양이다.
그 대로를 걸으면서
아이는 노래를 부른다.
그날 하루 학교에서 배웠던 노래를.
마치 주문을 외우는 사람처럼 열심이다.
상가의 간판과 표지판을 가리키며 읽어보고
길을 건너면서 차들을 세어보기도 한다.
그 작고 사소한 아이의 행동을 보며
잘하네, 근사해, 엄만 몰랐는데.
박수를 쳐주기도,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하며
때론 거리에 멈춰 서서 안아주기도 한다.
아직 자발적으로 이야기를 할 줄 모르므로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고 이끌어줘야 하는데
나 역시도 그렇게 자란 사람이 아니었기에
아직도 서투르고 낯설고 그렇다.
그래도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그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쉴새 없이 중얼대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행복감에 젖어들곤 한다.
나의 어린시절이 떠오른다.
내 등하교 시간엔 엄마가 없었다.
갑자기 비가 많이 쏟아지던 하교길에도
엄마는 한번도 우산을 들고 마중 온 적이 없었다.
공장에 다니던 엄마는 어쩔수 없었을 것이다.
기다리기를 포기하고 혼자 비를 맞으며 걸어오는 길,
엄마와 함께 걷는 아이들을 눈으로 쫓곤 했다.
내심 부러웠다.
내가 가질수 없는 것들이 당연한 그 아이들이.
그러나 내 아이는
내가 가지지 못한 추억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비록 딸로서 가지지 못한 추억이지만,
엄마로서 가질수 있는 추억이 있는게
얼마나 다행이고 사랑스러운 일인지.
나중에 아이가 커서
우리가 걷던 그 길이 떠오르게 될때면
그 때 엄마랑 같이 걷곤 했어, 이야기할수 있도록
그 기억의 순간을 만들어주었다는게 얼마나 행복했는지.
그 사소한 것이 엄마인 내겐 얼마나 필요했었는지
아이가 크면 알수 있을까.
평생 알지 못하고 나만 추억하게 될지라도,
아이와 걷는 길은 언제나 즐겁고 애틋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