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발이 큰 편이다. 255 정도 되는 듯하다.
한국에서 용인되는 여자의 발사이즈는 230~250 정도이다.
약 2센치 오차만이 허용된다는 뜻이다.
지금이야 운동화를 신고 다니지만,
이 운동화도 여성취향을 저격하자면 직원에게 무시당하기 일쑤다.
어느 정도 포기할 때가 되었건만, 난 아직도 이 상황이 견디기 힘들다.
어릴 때 엄마는 무척 큰 신발을 사주곤 했다.
아이들은 쑥쑥 자라니까 일부러 넉넉한 사이즈를 사주었겠지.
그래서 가끔씩 신발이 훌렁훌렁 벗겨지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한 켤레로 지내야 했고.
나중에 중학교에 들어가 지금의 발사이즈가 되고 나선
이 모든 게 엄마가 큰 신발을 사줘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친구가 말하기를,
사람은 자기 몸을 지탱할 수 있을 만큼의 몸을 타고 나므로
네 발이 큰 것은 신발 때문이 아니라 네 신체적 특성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그것도 그럴싸 했다.
맞지 않는 신발을 신는 것처럼 불행한 일이 또 있을까.
고등학교 시절,
백부님 댁에서 통학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 내가 신던 구두가 250인가 그랬다.
학교에서는 갈색이나 검은색의 구두를 신도록 했는데
동네 시장을 겨우겨우 뒤져서 사게 된 신발이었다.
발을 우겨넣다시피 해서 신었다.
발볼도 작은 신발이어서 발끝과 발볼이 너무 아팠다.
몇 걸음 걷다가 쉬고, 몇 걸음 걷다 쉬었다.
그때 나는 엄마에게 새 신발을 사달라고 말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아침에는 그럭저럭 괜찮았으나,
오후가 되어 집에 돌아올 때는 울상이 되곤 했다. (오후엔 발이 더 커지니까)
그렇게 몇 개월은 다녔던 기억이다.
나중에 보니, 신발의 가죽이 다 들떠서 일어날 정도였다.
나도 힘들었지만, 이 녀석은 더 죽을 맛이었으리라.
참, 서로 못할 짓이다.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되고, 개개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분위기라
큰 신발이나 작은 신발을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문 생산이지,
가까운 신발집에 들어가 아무거나 신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아직도 230~250만이 지배하는 것이다.
할머니가 들려줬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우리 할머니는 사이즈가 245 이다.
그러나 그 시절에 245는 여자의 사이즈가 아니었다.
맞는 고무신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할머니의 여자 형제들이 한 차례 신고 나서
다 헤지고 늘어나야만 신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제서야 사이즈가 맞았으므로.
아. 난 할머니의 발을 타고 났다... 게다가 1센치 업그레이드 됐다.
이 왕발의 저주는 세대를 타고 흘러가고
아빠는 남자라는 이유로 거기에서 해방되었지만
나는 여자라는 이유로 불합리한 사회에서 허덕인다.
지금도 나는 운동화로 살고 있다.
구두라는 것을 포기하니 그럭저럭 또 괜찮다.
하지만 이게 맞는 건가?
이 신발도 신고 싶고 저 신발도 신고 싶은 게 과한 욕심인가?
아무리 대량생산과 수익성의 시대라지만,
고작 2센치의 허용치라니. 정이 뚝 떨어진다.
한국에서 산다는 건 정말 피곤하고 불합리적이야,
오늘도 중얼거린다.
그리고...
맞지 않는 신발처럼 개떡 같은 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