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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발렌타인 데이엔 순댓국이지!

by 글쓰는 백곰 2018. 2. 16.

어제가 발렌타인 데이였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조촐하게 발렌타인 데이 파티를 하고

친구들이 보내준 구디백과 카드를 종이백 한가득 들고 오는 날이었다.

선생님께 간단히 초콜릿을 드릴까 싶어 들렀던

See’s Candies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한국에서는 발렌타인데이가 상술의 날이라며

점차 시들해지는 추세라고 하는데

여기는 나름대로 공식적인 기념일 느낌이 난다.


선생님께 드릴 초콜릿을 사가지고 나오는데

남편이 자신의 것은 없냐고 하는 통에

다시 뒤돌아가서 작은 상자 하나를 샀다.

마약같은 맛이라 아예 외면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핑계 겸 나도 먹을 생각을 하니 조금 즐거워졌다.


발렌타인 데이에 뭘 할까?

그러자 남편이 제의했다.

순댓국 어때?

난 망설이지도 않고 오케이라고 외쳤다.

전날 학교 field trip을 다녀와서 몸이 축난 느낌이었는데

나름 보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기대가 되었다.

결국 남편이 퇴근하자 마자 순댓국집에 갔다.


코리아타운에 산다는 건 참 좋은거다.

이렇게 원하는 메뉴가 있으면 언제고 먹을 수 있다.

물론 맛에 있어서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곤란하고

단지 내가 해먹을 수 없는 것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하는,

그저 평균적인 맛이라고 보면 된다.



나는 순댓국을 보면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는 공장에 다니셨는데,

가끔씩 퇴근후 동료들과 목욕탕에 가신 후,

마지막 코스로 순댓국밥을 드셨다.

힘들게 일하고 난뒤, 다소 지칠 정도로 목욕을 하고

뜨끈한 순댓국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셨다.

나중에 암에 걸리셨을 때도,

이젠 저 맛있는 순댓국밥을 먹지 못하는구나 하며

길게 한숨을 내쉬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서 엄마가 돌아가신후,

순댓국밥은 왠지 슬픈 느낌이 드는 음식이었는데

시간이 약인건지, 어쩐건지

어느새 아무렇지 않게 순댓국을 먹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20대만 하더라도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었다.

순댓국집을 스쳐지나가기만 해도

비릿하게 풍기는 돼지냄새가 싫었다.

그러나 어느샌가 나이가 들고 보니

순댓국의 내장을 꼭꼭 씹어먹으며

입이 쩍쩍 달라붙는 국물을 들이키고 있노라면

허했던 몸이 회복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서민적이고도 푸짐한 순대국.

펄펄 끓는 하얀 국물을 보고 있노라면 흐뭇함이 차오른다.


그런데 왜 하필 발렌타인데이에 순댓국이야?

남편에게 물었다.

“빨간 맛~! 순대피도 빨갛고, 깍두기 국물도 빨갛잖아?”

그러면서 레드벨벳의 “빨간 맛"을 흥겹게 중얼대는 이 남자.

귀여운 남자 같으니라고.

마누라가 전날 무리해서 피곤한 것을 알기에

일부러 자신은 좋아하지도 않는 순댓국을 먹으러 가자고 한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역시...

발렌타인 데이엔 순댓국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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