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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오랜만의 데이트

by 글쓰는 백곰 2018. 3. 8.

오래간만에 남편과 데이트를 했다.

늘 아이와 함께 있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 용건만 간단히 해결해야 했는데

어제는 남편과 단둘이 시간이 보낼 수 있었다.

물론 아이가 학교에 있는 시간동안만.


약 5시간 내로 움직여야했으므로

산책할 겸 스탠퍼드 대학교를 가보기로 했다.

차로 30분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아이의 흥미가 될 요소가 하나도 없기에

갈 일이 없을 것만 같던 곳이었다.

스탠퍼드 대학교 근처에 쇼핑몰도 있다 하니

학교 산책 후, 점심을 먹고 돌아오기로 했다.


(드넓은 잔디밭. 잔디는 밟는게 아니라고 배웠는데,

여기서는 마구 밟고 다니고 있다. 쾌감이 느껴질 정도로.)


미국문화에 관심 하나 없던 나도

스탠퍼드 대학교가 좋은 학교라는 것은 안다.

남편이나 나나 아들이나(?)

공부할 목적으로 올일은 전혀 없어 뵈는 곳이지만

동네 명소이니만큼 천천히 걸으며 둘러보았다.

나는 방통대를 졸업했기 때문에

캠퍼스가 주는 느낌 자체를 잘 모른다.

게다가 미국 캠퍼스는 더더욱.

생각보다 학생들이 많이 보이진 않았지만

조용하면 조용한대로, 여유가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건축양식도 구경하고

간간히 마주치는 학생인지 교수인지 모를 젊은이도 관찰하며

천천히 걸었다.

남편은 걷는 속도가 빠른 편인데,

다행히도 다리 근육통이 있어서(?)

나와 걷는 속도가 같아 수월하게 산책했다.


(대학교의 멋진 건축물들.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계속 두리번거리게 되는.)


(미술관 근처에 있던 로뎅 조각공원)


(로뎅의 지옥의 문)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가장 볼거리가 많다는 미술관의 개장을 기다리며

11시까지 주변을 서성였는데, 막상 시간이 되고보니

아무도 미술관에 들어가지 않는 거였다.

괜히 눈치만 살피던 우리는

미술관 휴관에 딱 맞춰온 자신들의 센스에 감탄했다.


(화요일엔 쉰다던 그 미술관 )


결국 학교 근처 쇼핑몰에 와서 조금 이른 점심을 먹었다.

피자 집이어서 그런가,

앉아서 먹는 와중에도 테이블까지 재가 날렸다.

그래도 못 견딜정도는 아니어서,

우리는 다만 얼굴을 문지르지만 말자고 얘기했다.


(멕시칸 맛이 났던 피자와,

마카로니, 익힌 소고기와 구운 고추.

언제나처럼 음식이름은 외우지 않는다.

다만 맛이 있었는가, 아니었는가일 뿐. ㅋ

결론 : 중간 이상의 맛. 저 고추는 정말 신의 한 수)


야외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는 정말 좋은 곳에 살고 있다고 재차 확인했다.

이렇게 온후한 지역이 또 있을까 싶고,

공기도 무척 상쾌하다는 결론이었다.

물론 물가 비싸고, 월세도 비싸지만

그 비싼 값을 하는 것인지 어쩐 것인지,

너무나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한국에 있을 때도 남편은 전원생활을 꿈꿨었다.

좋은 공기를 맡으며 살고 싶다고.

다만 자신은 농사를 지을 자신은 없으며

어느정도 생활편의가 갖춰진 시골에서 살고 싶다고.

그러나 사실 한국에서의 시골살이란

몸이 고달프도록 단순한 것이어서

문명의 이기(?)를 좋아하는 남편에겐 맞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은

공기도 아주 좋으면서, 모든 편의가 갖춰져 있어서

자신이 꿈꾸던 그 이상과 딱 맞아 떨어진다며

끝까지 여기에서 살아야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날씨도 너무 근사하다고.

물론 이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은 이마저도 덥다, 춥다 하겠지만

한국처럼 습기로 가득한 찜통 더위도 아닐뿐더러,

수도관이 동파되고 세탁기를 못돌리던 추위도 아니니,

우리의 체감계절은 4계절이 아닌 한계절인 것이다.

봄과 가을 같은 날씨의 연속이랄까.

여기서 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다.

그러나 봄은 확실히 봄인 듯 하다.

방금 방향제를 딴 것 같이

진한 꽃향기가 길거리를 덮은 걸 보면.

우리는 봄의 한 가운데에서 앉아

이 낯선 땅에서의 여유를 느끼며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현실이 아닌 무슨 가공의 공간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가끔씩 이야기하곤 한다.

무슨 회오리속에 빨려들어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 낯선 곳에 와버린 것 같은

어리둥절한 기분이 종종 든다며.

미국회사에서 일하는 남편은 일한지 6개월이 되었는데도

자신의 현실을 못믿어한다.

영어라면 경기를 할만큼 기피하던 내가

스타벅스에서 5단콤보 주문을 클리어하는 걸 보면

나 역시도 지금의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

이제 조금 후면 미국에 온지 만1년이 된다.

우리는 여전히 믿을수 없는 현실에 감사하고,

그렇게 되어진 것엔 어떤 이유가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좀더 열심히 살아서

우리의 인생목표에 가까워지자고,

굳이 말은 하지 않아도 그렇게 다짐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