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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옛날 사람, 옛날 TV

by 글쓰는 백곰 2018. 3. 27.

가끔씩 유튜브를 통해 옛날 TV 방송을 본다.

도대체 이런 영상들은 어디서 구해서 만드는지

세상 참 편해졌다 생각한다.

그 추억의 영상들을 멍하니 보고 있으면

어느샌가 남편이 다가와

너는 ‘옛날 사람"이라며 놀리곤 한다.


옛날이라…

그 단어가 주는 아득한 시간의 느낌이

어느샌가 나에게도 낯설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문득 그리운 음악이나 영화를 다시 접하게 되었을 때

그것들의 처음이 언제였던가를 떠올리는 것이

10년, 20년 단위를 훌쩍 뛰어넘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내 삶의 시간이 무척 빠르게 지나가고 있구나 싶어져

섬뜩하고도 아쉽게 느껴진다.

게다가, 가장 감수성이 풍부했던 시절이 10대이니

앞으로 더더욱 그것들에게서 멀어질 일만 남았다.



(가요프로의 조상, 별 다섯개의 위엄.

아유, 범수오빠! 얼굴이 팽팽해서 놀랐잖수! )


가끔 유튜브를 보곤 하는데,

어제는 Jay TV의 90년대 가요를 접했다.

영상이 시작되자마자 떠오르는 가요톱텐의 로고,

세상에나. 이게 이렇게 아득한 시절이 될수 있다니.

그리고 그 시절,

질리도록 들었던 카세트 테잎 그 오빠들,

풋풋하고도 아름다웠던 그 젊음의 얼굴들이라니.

이제 같이 늙어가는 처지가 되고 보니

과거의 우상들에게서도 세월의 가차없음을 보았다.

그리고 아련하고, 그리운 분위기의 노래들...

짤막하게나마 스쳐가는 몇마디 음악들과,

그 가수에 대한 해설은

(Jay TV의 위트있는 자막…여러번 배꼽잡았음)

맞아 맞아, 연신 박수를 치게 했다.


어릴 적엔 놀거리가 충분하지 않아서

무척이나 열심히 TV를 봤었다.

또한 감정의 과잉상태인 사춘기를 달래주던

내가 사랑했던 그 노래들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선율과 문장들로 남아 있다.

기억이란 참 이상한 것이어서

최근에 즐겨 들었던 노래들보다는

그 사춘기의 노래들이 더 선명하게 남아있다.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따라 부르는 자신을 보면서,

하루에도 몇십번씩 카세트 테잎을 돌려 듣던

순수하게 노래를 사랑하고, 열중해 있었던

어린 나를 다시 만나는 느낌을 준다.

물론 그 시절의 나는 스스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제 다른 시절을 살고 있는, 어른이 된 나는

그 불만 가득하던 사춘기의 나를 떠올리며

그렇게 나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고,

나름대로 귀여운 구석도 있었고, 순수했었다고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넬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때는 뭐가 그리 심각하고, 우울했는지.

돈 벌어야 하는 상황도 아니고, 큰 사건이 있던 것도 아닌데.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어떤 것들을 따라가야 유행에 뒤쳐지지 않을까,

내 안으로 꼭꼭 숨어 사소한 고민만 수천번 하던 시절.

뭐, 지금에서야 그립고 아련하다고 할수 있지만

그걸 다시 시작하라고 한다면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불완전하고 다소 우스꽝스럽던 나의 사춘기가 떠올라

살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신해철의 그윽하던 목소리,

시원하면서도 애절했던 김지훈(투투)의 목소리…

다시는 만날수 없는, 그 시절에 갖혀버린 음악 속에서

다만 기쁘게 그 순간을 사랑하기로,

그리운 것은 그리워하고,

그것만으로도 고마워하자고,

그렇게 상실의 슬픔을 누른다.


좋아하는 노래가 있다는 것은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감정의 버튼을 갖고 있다는게 아닐까.

그러므로 노래 한구절만으로도 시간여행을 가고,

그 기쁘고도 슬펐던 날들의 나를 추억하고.


문득 어떤 연구 결과가 떠오른다.

노인들을 상대로 한 실험이었는데,

그들의 한창 시기라고 할수 있는 상황으로

환경을 조성해주면(옛날 삶의 시스템)

병약하던 그들이 활기를 띠게 된다는 연구였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했던,

그들이 혈기왕성하던 시절에 대한

그런 동경이랄까, 회귀 본능이 있는 듯 하다.

익숙한 것, 자신이 일궈오던 과거의 일들은

그들의 삶이었고, 그 이유가 되어 주었기에

그 노인들은 다시 삶이 즐거워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노인들도 알았을 것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공의 상황이었다는 것을.


세상은 너무 빨리 발전하고,

유행은 너무 쉽게 오고 가고,

그 속에서 균형을 잡고 살아가기란 쉽지 않지만

그래도 과거의 사랑스러웠던 자신의 일부분을 간직할수 있는 자만이

다시 새로운 과거를 일궈갈수 있는게 아닐까.

---- 이라고 옛날 사람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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