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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먹고 싶은 자가 요리한다.

by 글쓰는 백곰 2019. 1. 1.

미국에 와서 가장 곤혹스러웠던 것은

음식이 그다지 입에 맞지 않는다는 거였다.

줄줄줄 기름지거나, 숨막힐 정도로 달거나.

게다가 원래 먹어 오던 식재료가 아니다 보니

이게 무슨 맛에 먹는 건가, 갸우뚱하게 된다.

특히 텍사스에 살 때는 한국식자재를 구하기가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이 양식을 해 먹어야 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에 오고 보니

어느 정도 신경만 쓰면

한국에서 먹던 것 그대로 구현할수 있다.

문제는… 그게 상당히 귀찮다는 것이지만.


어느 곳에서나 외식은 비싼 법이다.

게다가 미국은 팁문화 때문에 가격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맛이 만족스러운가, 그도 아니다.

가끔씩 남이 해주는 밥이 그리워

한국 식당에 가보기도 했지만,

미국에서 오래 살지 않아서 그런건지 어쩐건지

이곳의 한식은 뭔가 부족한 맛이다.

한국 본토의 진한 맛이 아니다.

식재료가 한국산이 아니어서 그런가,

아니면 유통과정에서 신선함을 잃어서 그런가...

언젠가 지인과 곱창볶음을 먹었는데

아… 그 비릿하고 쿰쿰한 맛이라니.

차라리 안먹겠다 싶었다.

그러나 지인은 ‘여기서 곱창을 먹는다는 것만으로도 어디냐'며

너무 맛있게 드시는 거였다. 현실이 이렇다... 참담하다.


미국에 오니 가장 먹고 싶었던 것이

치킨과 돈까스였다.

바삭하고 신선한 치킨,

두툼하고 고소한 돈까스를…!

그러나 눈을 씻고 봐도 그런 곳이 없었다.

내가 사는 곳의 치킨은 한국치킨임에도 불구하고

튀김껍질은 흐물흐물, 기름이 줄줄줄, 닭비린내가 훅훅훅...

그리고 두꺼운 생돈까스를 파는 곳을 찾아내지 못했다.

너무 슬펐다.

그렇다고 그 때문에 한국에 갈수도 없는 노릇이니

목마른 놈이 우물판다고,

그래, 먹고 싶은 놈이 요리하는 수 밖에.



운이 좋게도 한국마트에서 치킨가루를 공수,

후라이드와 양념을 만들어 먹었다.

다리와 날개를 섞어먹고 싶었지만,

대국답게 미국닭다리가 내 주먹 같이 두꺼워서

(너무 커도 내키지 않을 때가 있다)

닭봉만 사서 해먹었다.

개인적으로는 얇게 반죽 한번만 해서 튀기는 게

두번 반죽으로 튀기는 것보다 가벼운 맛이어서 좋았다.





빵가루가 없어서 식빵을 갈아 튀김가루를 만들고,

고기망치가 없어 칼등으로 등심을 내리쳐가며

돈까스를 만들어 먹었다.

1년 반 동안 참아온 식욕을 대변하듯

접시에 산으로 쌓아 놓고 볼이 미어 터지게 먹었다.


세상이 참 좋아졌다.

집에서도 다 해 먹을 수 있는 걸보면.

그러나 나는 좀 피곤해 졌다.

돈도 아끼고, 입맛에 맞는 걸 먹으려면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산더미같은 기름설거지를 보고 있노라면

전화 한 통이면 밤늦게라도 달려오던 한국배달치킨이

사무치게 그리워지곤 한다.

아.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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