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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성경필사

by 글쓰는 백곰 2017. 7. 12.



나의 하루 일과 중 가장 먼저 시작되는 것이 성경 쓰기이다.

아침에 일어나 물 한잔을 마시고 책상에 앉아 

계속 써 오던 부분을 펼쳐 또박또박 한글자씩 옮겨 적는다.

그렇게 한 장 이상을 쓰는게 목표이다.


난 기독교인이지만, 사실 믿음에 자신은 없다.

그러므로 누구를 전도할만한 능력도 되지 못한다.

내가 생각하는 전도란

말로써 상대방에게 믿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전도자 그 사람의 됨됨이와 

그의 일상에서 묻어 나오는 선함으로 인해

타인으로 하여금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신앙을 가지게 된 건 약 9년 전.

엄마가 말기 암환자가 되었을 때였다.

그 전에도 내 인생에 있어 여러가지 굴곡이 있었지만

나는 종교를 가지지 않았다. 

그래도 그럭저럭 이겨낼수 있었고.

그런데 '죽음'이라니.

이건 정말 인생 고난의 끝판왕이었다.

도저히 저것을 이겨낼 힘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종교를 가지기로 마음 먹었고, 기독교에 들어섰다.

매일 울면서 기도 했고, 매일 성경을 읽었고, 

마음 속 소원을 빌었다.

시간이 나면 무조건 성경을 읽었는데,

그 생소한 표현들 때문에 제대로 읽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써가며 읽어보자 하여 필사 1독이 시작되었다.

예전부터도 나는 공부를 할땐 써가며 하는 편이라 시작이 어렵지 않았다.

잡히는 종이 마다 가리지 않고 썼는데,

확실히 읽는것보다는 나았다.

사람을 계수하고, 건물을 짓고, 그런 지루한 부분들도

쓰다보니 해냈다는 느낌이 들어 뿌듯했다.

이렇게 열심히 노력을 하면,

엄마도 좋아질거야, 그런 막연한 기대를 품었었다.


하지만 엄마는 10개월 후 돌아가셨다.

슬펐다.

그리고 신에게 화가 났다.

난생처음 빌었던 유일한 소원이었는데, 그렇게 외면하다니.

그래서 나도 외면해버렸다.

그럼 그렇지, 내 인생에 무슨 종교인가.

어차피 사람은 정해진 운명대로 나아가게 되어 있을 뿐,

다 짜놓은 판을 다시 엎어달라고 억지부린다고 그리 되나.

내가 허상을 믿었구나, 배신감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렇게... 3개월 정도가 지나고 나니

내 정신이 온전하지 않았다.

심한 우울증이 찾아와 시도 때도 없이 울곤 했고

잠도 잘 자지 못했다. 

모든 것이 허망하고 부질없었다.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아 보았지만,

그 순간에만 마음이 편해졌을 뿐

자꾸만 찾아오는 감정기복은 견디기 힘들었다.

회사도 다녀야했고, 결혼생활도 해야 했는데 말이다.

결국 나는 아무 생각없이 성경책을 꺼내들었다.

쓰던 거나 마저 쓰자.

그냥, 아무 생각없이 쓰자.

멍 때리고 있는것 보다는 무얼 하는게 나을 거야.

그런 마음이었다.


쓰다보니 하루에 열 장 넘게 쓰는 날도 생겼고 

그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이 없어져 기분이 나아졌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내용에 집중하게 되었고

그렇게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

성경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가는 구절을 찾기 마련이다.

매일이라고 볼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때 내 마음을 만져주었던 것은 '전도서'였다.

그렇게 필사 1독이 끝날 무렵, 

어느샌가 나는 멀쩡해져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그냥 쓰기만 했는데...?


그리고나서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한 생명은 끝났지만, 또 다른 생명이 시작되고

또 그렇게 나는 신을 찾을수 밖에 없었다.

한 사람을 책임진다는 것, 부모가 된다는 건 그런거다.

나말고도 강력한 누군가가 아이를 지켜주기를 원하는 것.

그래서 다시 종교생활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사람 사이에 살다보면 여러가지 갈등이 생기고,

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하루를 보내는 일들이 생긴다.

엉뚱하게 분노와 화로써 에너지를 다 소진하는 것이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나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뭐... 자세한 걸 열거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가 생기고 나니 더더욱 갈등이 깊어졌다. 

결국 나는 다시 내 감정의 돌파구를 찾게 되는데

그것이 또 성경필사인 것이다.


이제 성경 쓰기는 나에게 마음 수련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뭐라고 정확히 설명할수는 없지만,

쓰고 있는 동안에는 그렇게 마음이 편하다.

잡념에 휘둘리지 않아도 되고,

지금 내가 가진 문제에 대해 우회적인 답을 듣기도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쓰기전에 단락을 읽어 옮겨 놓는 작업,

틀린 것이 없나 검토하는 작업을 거쳐

약 3번 이상을 읽는 작업이다. 

그러니 마음에 더 잘 새겨지기도 한다.

물론 쓴다는 것 자체가 힘든 작업이다.

두번째 필사는, 아예 노트를 사놓고 했는데

아이에게 물려줘도 될만큼 정성들여 써보자 하여 시작했다가

쓰는 내내 '아이고, 이거 언제 다써, 다시는 쓰나 봐라' 한숨이 나왔었다.

그러다가 이제 막바지에 이르게 되니

이거 다 끝나면 이제 뭘 해야 하지? 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래서 깜짝 놀랐다. ㅋㅋ




내가 쓰는 노트는 성경쓰기 전용 노트인데

두께는 약 2센치 된다. 

이것을 성경전체를 다 쓰면 7권이 나온다. 

(위 사진의 글씨 크기로)

난 1권을 다 쓴 다음 추측하여 나머지 노트를 사 놨었다. 

나중에 노트를 생산하지 않으면 어쩌지 싶어서.

필사 하시는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란다. (광고 아님)

물론 편한 노트에 써도 상관은 없다. 


첫번째는 2009.12~2011.11.30. 약 2년간

두번째는 2012.1.27~ 현재까지 약 5년이 걸렸다.

하루 2~3장씩(성경단락) 꾸준히 쓰면 2년 안에 쓸수 있을 듯 하다.

두번째 성경쓰기가 길어진 건, 

임신과 육아로 인한 공백기가 커서이다.

성경쓰기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대략 저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예상하시고 시작하시면 될듯 하다.


어지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을 때,

소원하는 간절한 것이 생겼을 때,

믿음을 조금이라도 키워가고 싶을 때,

성경 필사를 하는 것을 추천해 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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