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나이로 막 40세가 되었다.
나이 앞자리가 바뀌니 뭔가 낯선 느낌이 든다.
솔직히 이 나이가 되어서까지 공부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지금 내가 하려는 건 주로 영어 공부이지만,
언젠가 여력이 된다면
대학교 과정을 다시 공부해서
다시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중,고등학교를 다닐때만 해도
그다지 공부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하고 싶은 과목만 공부했으므로
그다지 성적도 좋지 않았다.
특별전형으로 대학에 합격했었지만,
가정 형편으로 대학은 갈수 없었다.
그 당시 우리집은 작은 운수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내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 쯤
경리를 맡던 숙부가 그만둔다고 하자
내 진로는 거기서 바로 결정되어 버렸다.
그 때문에 20대엔 많이 힘들었다.
집안 사업이었기 때문에 거부할수도 없었고,
급여도 형편없었으며,
그나마도 다시 회사에 필요하다며 가져가곤 했다.
원치 않는 일, 보상마저 밋밋한 회사생활에
자존감은 바닥을 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국 나는 방통대 입학을 마음 먹었다.
'교육과'를 택해서 평생교육자격증도 따고 싶었고
만약 교육으로 성공하지 않아도
나중에 아이 키울때 도움이 될것 같아서였다.
나는 25살에 입학을 했는데,
같은 동네의 입학동기 언니들이 있어서
4년 내내 같이 움직이곤 했다.
난 방통대 학생치곤 무척 어린 편에 속했다.
대개가 40대 이상이었다.
40대가 넘어 공부를 시작한 동기 언니들은
열정만큼이나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며 힘들어했다.
특히 중간고사 준비를 하게 되면
예상문제에 대해 서술형으로 답안지를 제출하게 되는데,
그 연습을 하다보면
손목 인대가 늘어나고 시큰하다면서
젋은 내가 부럽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동안 공부를 많이 쉬셨나보다,
그땐 그렇게 생각했는데
내가 그녀들의 나이가 되어 영어공부를 하다보니
결코 엄살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지금의 난 손이 아프다 못해 저리다. -.-;
(드라마 모던패밀리를 보며 열심히 받아 적는 중이다)
방통대에 들어가자마자
집안 사업이 망해버리고, 그렇게 가세가 기울면서
공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7년이나 집안 일을 했지만,
그 마지막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오히려 낙심한 가족들을 보살펴야 했다.
그 힘든 시간이 언제 끝날지 알수도 없었다.
결국 나는 다른 회사에 취직했고,
방통대 학업을 이어갔다.
늘 허리가 아팠고, 잠이 모자른 시간들이었다.
방통대를 4년안에 졸업하는게 얼마나 힘든지
아는 사람은 다 알것이다.
나는 그 방통대를
3년동안 장학금으로 등록비 안내고 다녔으며
성적우수자로 졸업했다. (자랑맞다.^^;)
회사를 다니면서 공부를 병행하는 게 쉽진 않았지만
그렇게 자신을 몰아부칠 것이 있다는 게 감사했다.
우울하거나 비관할 시간도 없이
몰두할 것이 있다는 것은 내 정신건강에도 참 좋았다.
그리고 좋은 결과를 얻어낸 후로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원하면 할수 있는 거였구나,
나 그렇게 시시한 사람 아니구나 하는.
남들은 방통대를 시시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내게 방통대 졸업장이란 무척 소중한 자산이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스스로 할수 있다는
자신에 대한 확신을 주는 증명이자 훈장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
드라마 작가가 되기 위해서 1년 반 동안
방송작가교육원에서 공부를 했었다.
글 쓰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것으로 먹고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사정이 여의치 않아 스스로 그만두었지만
그 당시 습작에 대한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고,
단막극 7개를 지어낸 것도 후회하지 않는다.
무언가에 열중하는 시간,
그것이 날 흥분하게 하고 빛나게 했던 듯 싶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이제 나는 살기 위한 영어공부를 시작한다.
아직 갈피잡지 못하고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중이지만
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는 큰 거부감이 없다.
무언가를 습득한다는 것은
인간이 가질수 있는 최고의 지적 사치이다.
어차피 공부란 자기만족의 또다른 형태이다.
나처럼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새로운 패러다임도 요구되는 것이기에
그만큼 공부의 영역은 넓게 확장되어진다.
문화와 사회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말한다고 할수 없기에.
이 모든 새로운 공부...
그 시작점에 선 나는
당혹스럽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다.
아이와 하루종일 함께 있으니 여유가 많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하루에 한시간이라도 공부하려고 애쓰고 있다.
노트를 채워가는 글씨들를 보고 있으면,
내 마음속에도 알수 없는 만족감이 채워지는 듯 하다.
때로는
엄마와 아내로서 기능하는 나보다,
나를 위해 내 시간을 보내는 내가
훨씬 더 근사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내 인생의 가장 긴 공부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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