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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그사람

문학선생님

by 글쓰는 백곰 2015. 4. 29.

사춘기 때만 해도 문학을 참 좋아했다. 특히 시를.

그래서 국어와 문학 점수는 좋았었다.

게다가 교내 백일장의 운문 부분은 거의 장원이었기 때문에

국어 선생님과 문학 선생님은 어쩔수 없이 친해지게 되어 있었다.

그 중 특이한 카리스마로 나를 제압한 분이 있으셨는데

그분이 문학선생님이다.

 

내가 세상을 살면서 까다로운 사람들을 몇몇 만났는데

그중에서 최고봉이라고 할만한 분이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첫 문학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아이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대충 듣고 보니 그분의 평판이 아주 좋지 않았다. 다들 몸을 사렸다. ㅋ

난 사실 과목 자체가 좋았으므로 신경쓰지 않았지만,

첫 수업을 듣고 나서 느낄수 있었다. 역시나, 대단하시다는 것을.

그분은 자신의 수업시간에 시계를 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게다가 책상에서 철제 필통이라도 떨어져 큰 소리가 나는 날엔

약 10분간의 인신공격이 이어졌다.

수업 도중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기도 했었는데

그것에 대해 어물어물 대답을 잘못했다가는

그것이 또 건수가 되어 비웃음에 시달리게 되었다.

자신의 가치관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이 너무 분명하고

너무나 예민한 사람이어서,

누군가가 그에 반하는 행동을 했을 때 (철없는 학생이라도)

가차없이 공격하는 스타일이었다.

매가 아닌 말로도 사람을 울릴 수 있는 그런 분이었다.

 

나 역시 그분의 예민함을 건드리는 별난 학생이었으므로

어쩔수 없이 그분의 레이다에 걸려 된통 혼난 적이 있었다.

학교에서 가훈 조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냥 아무렇지 않게 '술을 마시지 말자'라고 썼다.

물론 그게 현명한 일은 아니었지만

아마 학생 열에 아홉정도는 없는 가훈을 적어 냈을 것이다.

우리집은 주사가 심한 집안이어서,

아버지 형제간 불화도 많았고 늘 그 중심엔 술이 있었다.

그래서 별 생각 없이 적어 냈었는데, 그 내용을 본 윤리 선생님이 격노하셨고,

그 옆에 계시던 문학선생님이 그 사건을 캐치하신 거다.

그렇게 다음 수업 날, 수업에 들어서자마자 내 이름을 호명하셨다.

그리고나선 약 20~30분 간의 맹공이 이어졌다.

주는, 너네 집안이 그 따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네가 그모양이다.

뭐 그런 내용이었다.

인신공격에 탁월하신 분이었다.

아마 수업시간 내내 울었던 걸로 기억난다.

지금은 시간이 지나서 나의 입장도 이해가 되고

그 분의 입장도 이해가 되지만. 그 당시에 나는 어렸고

뭐 저런 사람이 다있어, 하며 질색팔색 했었다.

 

깡마른 몸, 비웃는 듯한 말투로 무장한 그분은

사실 상업고등학교의 문학교사로선 어울리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내일모레 취업해야 할 아이들이 문학에 대해서 얼마나 알겠는가.

게다가 그분 자체의 까다로움과 예민함은 아무도 비위맞출 자가 없었다.

그분의 산제물이 되었던 나 역시도, 문학시간만 오면 몸이 경직되기 시작했다.

 

어느날인가, 그분이 나를 교무실로 불렀다.

그때 치뤄진 교내 백일장 심사 때문인 듯 했다.

나같은 심성을 가진 애가 어떻게 이런 걸 쓸 수 있는가 했던 것이다.

나는 나대로 교무실까지 끌려오는 상황이 화가 났다.

그분이 물었다.

"이거 네가 썼니?"

간단히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분이 또 물었다.

"이거 순수하게 네가 창작한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니? 유일한 거라고."

이건 또 뭔 소린가. 화가 치밀려다가 잠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곰곰히 생각 후, 대답했다.

"아니요."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게 돌아가보라고 했다.

그리고 나서 나는 장원을 했던 기억이다.

어린 맘에도, 세상에 유일한, 첫번째의 새로운 글을 썼다고는 할수 없을 것 같았다.

예전에도 나와 같은 생각과, 나와 같은 말투로 시를 쓴 사람이 있었을 거고,

다만 내가 그것을 알지 못할 뿐이지. 내가 세상 아래 가장 처음이라곤 할수 없다고.

아마도 그걸로 나를 시험해 본 듯 하다.

그때 내가 화를 내면서 내가 썼다고 우겼다면

그녀는 내게 상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예민했던 그분.

하지만 문학을 사랑했기에 그분을 미워할수도 없었다.

시적표현과 그 아름다움을 칭송하고 있는 그 환한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때 나에게 심한 말을 했던 그 분 맞나 싶을 정도로

명랑해보이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게,

문학시험지 마지막에 써있던 시 구절이다.

'선운사에서' 라는 시였다.

 

꽃이

피는건 힘들어도

지는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이런 시였는데 두고두고 잊혀지질 않는다.

계속된 시험에 지쳐있는 제자들을 위한 선생님의 작은 선물이었다.

그 때문인가,

그 까다롭고 예민했던 선생님의 말들은 모두 다 희미해지고

저 시 하나 남아서 그분 얼굴 위에 살며시 포개진다.

동백꽃이 필때면 저 시가 떠오르고, 그렇게 또 그분이 기억나고.

 

시간이 지나면 나빴거나 슬펐던 그런 기억들은 희미해지고

사랑했던 기억, 좋아했던 기억들이 더 크게 선명해져서는

그 사람의 전부가 된다. 아름답게.

시간이 흐른다는 건 정말 마법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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