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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그사람

첫번째 아들

by 글쓰는 백곰 2017. 7. 10.

나는 약 8년 전부터 해외아동을 후원하고 있다.

예전에도 후원에 관심은 많았지만,

한번 시작하게 되면 계속 그 아이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고

나의 생활에 확신을 할수가 없었기에 망설이기만 하다가 말이다.

물론,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엄마가 말기 암환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난생처음 종교라는 것을 가지게 되었고

신에게 엄마를 살려 달라고 기도하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신을 기쁘게 하면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가장 컸었다. 

게다가 그 시기에 아이티 지진까지 일어나 후원에 대한 광고가 넘쳐나기도 했었다.

가장 믿을만한 기관이 어디 있을까 고민하다가 컴패션을 선택했다.


첫번째 아이는 7살이 된 인도네시아 소녀 였고

두번째 아이는  10살이 된 인도네시아 소년이었다.

그 소년이 바로 Vico 다.


Vico는 다른 후원 아이와는 다르게 도시 쪽에 살고 있었고,

한창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었다.

공부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피씨방에서 했던 인터넷이 너무 재미있으며,

축구를 하루종일 했다며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고도 했다.

나는 아이에게 편지와 노트를 보내곤 했고

기념일마다 선물금을 보내기도 했다.

생일, 새학기, 크리스마스 등...

그 때마다 아이도 답장을 보내기는 했는데,

남자 아이라서 그런가 하는 말이 늘 비슷비슷했다.

어쩌면 편지를 쓰는 것을 해보지 않았기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Vico는 학업성적이 별로 좋지 않은 편이었는데 (컴패션에서 보고해 줌)

늘 편지 말미에는 시험을 잘보게 기도해달라,

다음 학년에 올라가게 기도해달라고 할 정도였다.


그렇게 약 5년을 표면적으로 알고 지내다가

나에게 충격을 준 사건이 일어났다.

아이가 페이스북으로 친구 신청을 한 것이었다.

충격 포인트는 두 가지이다.

하나. 아이는 페이스북을 할수 있는 핸드폰이 있었다.

둘. 페이스북의 아이는 내 생각보다 더욱 순진하지 않다.


Vico가 도시쪽에 사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것은 몰랐다.

핸드폰... 후원을 받는 아이가 소지할수 있는 그런 물건인가.

내 선입견인가? 요즘은 후원청소년은 다 가지고 다니나?

생각보다 애가 별로 힘들지 않은거 아닌가? 

혼란이 왔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점차 그럴수 있다고 바뀌었다.

한창 친구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고, 호기심 많을 16살이었다.

그래서 나는 친구 신청을 허락했고, 그렇게 아이의 사진을 접하게 되었다.

그 사진들 속에서... 나의 상상보다 더욱 적나라한 아이의 실상을 접했다.

아이들 무리가 모여 술마시고 담배피는 사진,

문신과 헤비메탈 공연에 열광하는 것들이 주를 이루었다.

16살 아이가 담배를 피는 걸 보려고

내가 후원을 시작했던가. 심한 회의가 밀려 들었다.

컴패션은 기독교 선교 사업으로 시작된 후원프로그램이라서

당연히 아이들의 탈선은 어느정도 방지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건 나만의 오산이었다.

컴패션도 아이의 모든 일상을 관리하기란 사실상 힘들 것이다.

나는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컴패션에 전화를 걸었다.

내 마음에 너무 큰 갈등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자 컴패션에서는 당장 페이스북 관계를 끊으라고 조언했다.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이다.

생각해보니 그 룰을 지키지 않은 나의 잘못도 있었다.

그래서 페이스북을 끊었다.


나는 당분간 속았다는 느낌에 망연자실했다.

아이에게 좋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후원을 끊을 수도 없었다.

실망을 했다고 해서, 자식과 같은 아이를 버릴순 없었다.

최소한 아이가 홀로 설수 있을 때까지 지켜주겠다고 스스로에게, 아이에게 약속했었다.

어쨌든 약속은 지켜져야 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아이가 18살이 되었을 무렵

나는 미국 이민이 확정되어 한국을 떠날 시기가 가까워졌다.

아이에게서는 7개월째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러다가 또 아이가 인스타그램으로 남편에게 친구 신청을 했다.

후원자 명의는 남편으로 되어 있었기에 아이는 우리 부부를 다 알고있었다.

나는 일부러 못본 척 했다. 또 상처 받고 싶진 않았으니까.

남편이 인스타그램으로 아이의 사진을 보다 보니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사진을 같이 보았는데, 아이가 해외에 있는 것이다.

분위기를 보아, 아이는 어느 메탈그룹의 스텝이 되어

해외투어까지 같이 다니는 듯 했다. 몇개국을.

처음에는 좀 의아 했다가, 나중에는 다행이다 싶었다.

어쨌든 자기 살길을 찾아낸 것이 아닌가 하고.

게다가 너무 즐거워하며 환히 웃는 얼굴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무척 행복해보였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나는

전형적인 한국인 부모가 가지는 마인드,

즉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 되어라 하는 어른이었던 것을 깨달았다.

아이가 내 예상과는 다르다며 마음 상해하는 방식마저

전형적인 답답한 어른이었던 것이다.

아이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해서

버리는 부모가 어디 있는가...

그때 망설였던 나의 마음이 너무 부끄러워졌다.


그래 , 이제 됐어, 훨훨 자유롭게 날아가,

이제서야 작별인사를 건넬때가 온것이다.

그렇게 사진을 쭉 내려가며 보고 있는데,

낯익은 사진 하나가 있었다. 내 사진이었다.

그리고 밑에 간단히 적혀있던 말.


언제나 나에게 인생의 조언을 해주고,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고마운 사람.

감사합니다.


그 때 얼마나 울컥였는지 모른다.

나는 아이가 한번도 그렇게 말하는 걸 본적이 없었다.

고마웠고

부끄러웠다.

너는 이미 이렇게나 성장해버렸는데,

나는 아이가 나를 생각하는만큼도 성장하지 못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Vico는 나에게 소중한 아이었다.

8년 전, 엄마가 결국 병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셨을 때,

나는 지독한 우울증에 걸렸었다.

기도한다고 될일도 아니었고, 신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엄마가 돌아가셨다.

인생에서 가장 큰 괴로움이었다.

삶에 대한 회의감으로 모든 것이 무기력하고 눈물만 흘리곤 했다.

그러다 문득 Vico의 사진을 보았다.

9살의 Vico는 너무나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큰 위안을 얻었다.

맞아, 나에겐 네가 있어.

내가 책임져야 할 인생이 있다,

계속 이렇게 가라앉아 있을순 없어. 

잊어야지, 살아야지...

그렇게 마음을 다 잡게 해줬던 게 바로 너였다.

그걸 잊을 뻔 했다... 미안해.


내게 첫번째 아들이 되어준 Vico.

자식을 키운다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

난생처음 알게 해준 소중한 아이.

지금은 자신의 길을 찾아 컴패션을 떠났고

돈을 모아 대학에 꼭 가고 싶다는 너.

그리고 그 언젠가,

나를 만나러 오겠다고 약속한 너.

그래, 아줌마는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릴거야.

아프지 말고, 지금처럼 행복하렴.

내 첫번째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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