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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그사람

슈퍼마켓 아저씨

by 글쓰는 백곰 2015. 4. 21.

19살. 1996년.

실업고를 다녔지만, 학교에서 추천하는 8개의 회사에서 줄줄이 떨어지고

그때 마침 숙부가 더이상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부모님은 나를 떠밀었다.

사람 구하기도 힘들었을테고, 무엇보다 돈 관련 일이니 믿을 사람이 필요했을거다.

하지만 난 그것이 너무 견디기 힘들었다.

 

아버지는 운수업을 하셨다.

영업하는 사람도 두고, 배차는 어머니가 맡았으며

자금 관리하는 건 내가 하게 되었다.

화물운송중개업이었는데,

각자 영업용 화물차를 소유하고 있는 차주들이

회사에서 일거리를 받는 대신 일정한 중개수수료를 내는 그런 구조였다.

 

19살의 내가 견디기 힘들었던 이유가 두가지 있었다.

첫째, 회사 환경이 너무 열악했다는 것과.

둘째, 그것을 거부할수 없었다는 것이다.

회사는 운전기사들의 담배연기로 늘 가득했다.

운전기사들은 일거리를 기다리며 주로 도박을 하고,

다방 아가씨들을 불러 무릎에 앉혀 커피를 마셨으며,

끊임없이 담배를 피고 자기들끼리 욕을 하며 싸우기도 했다.

사무실을 열고 들어오면 제일 먼저 반겼던 그 기분나쁜 냄새와

누렇다 못해 갈색으로 변해가는 벽지들.

아, 이곳이 내가 다니는 회사라는 거였지. 참으로 우울했다.

집에 돌아갈때는 머리카락과 옷에 담배냄새가 배어 빠지질 않았다.

일은 딱히 힘든 것이 없었으나, 내겐 동료랄 것도 없었고

가족이 있었지만 오히려 타인만도 못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나를 이곳으로 밀어 넣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대학교에 합격했었다. 

실업고였지만 내신이 좋아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어머니는 나를 보내주지 않았다. 누가 회사를 볼 것이냐.

돈도 없고, 네 오빠도 가지 않은 대학교를, 왜 너를.

그런 내용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미칠것만 같았다.

 

친구도 만나기 힘들었다.

회사와 집이 너무도 먼곳에 있었기에,

왕복 5시간이 걸려야 겨우 서울에 갈수 있었다.

게다가 이제 막 20대가 된 나의 친구들은 각자의 삶이 너무도 바빠서

주말을 나에게 내어주지 않았다. 약속도 어겼다.

난 그것만을 기다려왔는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쓸쓸하고, 괴롭고, 막 욕이 하고 싶었다.

 

그 시기에 내가 하는 일은 경리의 전반적인 일이었다.

여러 소모품을 구비하고, 은행과 우체국에 가기도 했다.

마트는 수시로 가곤 했는데, 담배를 물고 사는 운전기사들은

물 대신 인스턴트 커피를 마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슈퍼마켓에 가곤 했다.

거기서 아저씨를 만났다. (서두가 너무 길군)

 

슈퍼마켓 아저씨.

카운터에 앉아 멍하니 TV만 보는 분이라 생각했다.

마른 체구에, 지쳐보이던 눈빛, 그다지 친절하지도 않았다.

대개의 사람들이 그래서 아저씨에게 호감을 갖지 않았다.

 

그 날도, 평소와 다름 없이 우울해져서 집에 돌아가려는 중이었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나, 어쨌나... 기억이 가물하지만.

우울한 표정으로 물건을 계산하는데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슬프거나 우울할 땐 따뜻하게 목욕을 하고 한숨 자는게 좋아.

아마도 그 때부터였을 것이다. 아저씨가 좀 다르게 보였던 것은.

그리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할지도)

 

내가 아는 아저씨는, 회사를 다니며 방통대 국문과를 나왔으며,

김종환의 노래 가사를 좋아했고,

서비스직이었으나 결코 친절한 편은 아니었으며,

글씨를 아주 멋지게 쓰는 분이었다.

샌들을 맨 발로 신고 다니면 발이 상한다며 양말을 신으라고 하셨고,

힘들게 외출하고 나선 목이 마르니 귤이라도 먹으라고 내어주던 분이었다.

김소월의 초혼을 줄줄 외우시는 분이었고(아마도 TV에 시 구절이 나왔을때)

책읽는 걸 좋아하시고, 문학을 사랑하시는 분이라서

한때 시를 좋아하는 나로써는 이야기가 잘 통하는 면도 있었다.

아저씨는 아내와 같이 슈퍼마켓을 운영하셨는데,

아줌마가 부식거리를 다듬느라 손이 거칠어졌다며 안타까워 하시곤 했다.

 

아저씨를 바깥에서 한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아마 동네에서 가장 큰 서점을 안내했을 때였을 것이다.

아저씨 눈에서 광채가 났다. 그렇게 흥분되고 좋아하는 모습이란.

아저씨 기억속의 책방이란 나이지긋한 노인이 어둑어둑한 조명에서

책먼지에 쌓여 안경을 닦는 그런 곳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동네의 최대규모 서점을 안내했다.

매장은 밝고, 책도 많았고. 아저씨는 좋아하셨다.

그러면서 내게 필요한게 없냐고 하셔서 '광장' 이란 책을 골랐다.

근데 정작 지금 그 책은 남아있지 않아 미안할 뿐이지만...

그 후로도 아저씨는 김종환의 새로운 앨범의 노래가사가 너무 좋다고

작은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다며 워드 타이핑을 부탁하셨다.

아저씨는 그 종이를 받고 어린애처럼 기뻐하셨다.

남들에겐 다소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분이셨지만

나에겐 참 다정했던, 순수했던 분이셨다.

 

군대 갔던 남편을 면회하고 오던 어느 겨울 날,

해가 너무 빨리 떨어졌고 화장실이 급했나 뭐 그런 이유로

집이 아닌 슈퍼에 갔던 기억이다.

아저씨는 몸을 좀 녹이라고 하시고선 집까지 데려다 주셨다.

사실 거리는 멀지 않았으나, 차가 자주 오던 때가 아니었기에.

아줌마는 그게 좀 실례가 되는거 아닐까 걱정하셨지만,

아저씨와 나는 딱히 아무 (?) 거리낌이 없었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

 

그때가... 삐삐가 있던 시절이었다.

회사가 임대계약이 끝나 다른 곳으로 이전을 하게 되자

당연히 슈퍼마켓에 갈 일이 없어졌다.

일부러 그쪽으로 찾아가기도 애매했고,

나는 또 나름대로 뭔가 늘 심각하고 바빴다.

아저씨가 몇번의 호출을 했는데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다음에 한번 가서 만나면 될거야 하고.

그렇게 몇개월이 흐르고,

작정하고 내가 슈퍼마켓에 갔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다.

슈퍼마켓의 물건들도, 슈퍼마켓의 간판도, 늘 같은 자리에 앉아있던 아저씨도.

나는 멍하니 슈퍼 앞에서 서있다가 주위를 기웃거렸다.

슈퍼 안, 굴러다니는 잡동사니들을 보니 건물이 빈지 오래된 듯 했다.

 내게 이상하다 싶게 많이 호출을 하시던 그 날.

아마도 아저씨는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의 무심함으로, 연락은 끊어졌고 그게 마지막이 되었다.

 

어쩔수 없게 되어버렸구나... 하고 잊어버리고

그래도 만약 주소라도 알고 있었으면 편지라도 주고 받을수 있었을텐데.

다시 아쉽고, 미안하고... 그렇게 잊혀졌다.

 

그렇게 몇개월이 흐르고 나서 나는 방통대에 입학했다.

회사 다니면서 졸업을 했고, 성적도 나쁘지 않아 졸업포상도 받았다.

이걸 알았다면 참 기뻐했을 분이 그 분인데.

아저씨와 이야기를 할 당시에, 방통대에 가야겠다고 맘 먹은 적도

아저씨가 권한 적도 없었건만 나는 방통대를 졸업까지 했다.

그렇게 우리가 과거에 나눴던 이야기들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씨를 뿌리고

결코 작지 않은 시간들을 보내고 나면

문득 뒤돌아봤을 때 큰 나무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아닐까.

아저씨는 방통대 시절이 너무 행복하다 했다.

나도 너무 힘들었지만 가장 행복했다.

그걸 이야기해줄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또 마지막까지 못한 말이 있다.

 

-아저씬 슈퍼마켓과 어울리지 않아요!

늘 그말이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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