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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우리 동네에 불난 날

by 글쓰는 백곰 2019. 6. 26.

우리집은 Mission Blvd에 자리 잡고 있다.

Fremont에서 나름 유명한 출퇴근 도로이다.

잠을 자기 위해 안방으로 들어오면 

창문으로 그 도로가 훤히 보이는데

많은 이들이 지나가서인가,

하루에 한번 이상은 경찰차나 앰뷸런스, 소방차가 지나간다.

그 소리에 이골이 나서 웬만해선 신경쓰지 않는데

어제는 이상하리 만큼 소방차 소리가 많이 나는게 아닌가.

뭐지 싶어 커튼을 열어보았더니, 

동네 야산에 불이 나 있었다.


우리집에서 육안으로도 보일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다행히도 길 하나가 있어서 우리집까지 번질 위험은 없었지만

남편은 혹시 모르니 어서 대피할 준비를 하라 했다.

나는 간단한 옷가지, 귀중품등을 캐리어에 넣고

불이 어떻게 번져가는지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동네 야산이긴 해도 큰 나무가 많다거나 한건 아니어서

바짝 말라버린 풀들을 태우며

불이 꾸준히 번지고 있는 상태였다.

이윽고 소방차가 많이 출동했으니 크게 걱정되진 않았지만

불이라는 것만으로도 어쩔수 없이 신경이 쓰였다.


캘리포니아에 살면서 가장 신경이 쓰이는 두가지,

지진과 산불이다.

특히 산불은 매년 발생하는 추세이고,

워낙 건조한 환경이다 보니 작게 끝나질 않는다.

작년 11월에 났던 산불은 며칠이고 계속 되었는데,

어찌나 규모가 컸는지 우리집과 거리가 있는 곳이었는데도

창문을 열면 매캐한 연기 냄새가 진동했고,

공기질마저 나빠져 학교에서 임시 휴교를 하기도 했다.

약 일주일간 외출을 하지 못할 정도로 연기가 심했다.

불길이 진압된 후 며칠이 지나서

어느 늦은 오후에 창문을 열었는데,

희미하게 타는 냄새가 나른한 가을 공기에 섞여 있었다.

순간, 그 냄새가 갑자기 아련하게 느껴지면서

나의 어린시절이 갑자기 떠오르는 게 아닌가.

해가 질때까지 밖에서 놀다가 저녁밥 먹으러 들어갈 즈음의,

어느 선선하던 늦은 오후 말이다.


그땐 그렇게 공기가 나쁜 시절이 아니었는데,

그 냄새만큼은 추억과 함께 저장이 되어 있었는 모양이다.

이제 다시는 한국에서 맡을 수 없는 그 시절의 냄새.

그걸 캘리포니아에서 재회하게 될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때마침 그 날도 해가 뉘엿뉘엿 지는 늦은 오후였다.

누렇게 바래지는 오후 햇살 속에서 

다소 흐릿한 연기냄새를 맡고 있노라니

어디선가 깔깔대는 아이들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 속에서 내 소녀 시절의 어린 친구가 손을 흔들고 있을 것만 같고,

집집마다 저녁밥 짓는 냄새가,

아이를 부르는 엄마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그 그립고 아련한 느낌이라니… 

문득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우리가 어릴 때만해도 환경보호법 같은 것이 미비해서

동네 사람들이 종종 알게 모르게 쓰레기나 연료를 태운게 아니었을까 라고 추측해본다.

그래서 뭔가가 타고 있는 냄새, 그게 그 시절의 냄새가 되어버린 걸거라고.

2018년의 캘리포니아가

1988년의 서울이랑 겹쳐지는 건 다 그 때문일 거라고.


그러나 정작 내가 아는 불이란 

다만 아름다운 추억이 아니고, 처참한 기억 쪽이 더 가깝다.

가난한 판자촌에서 살았을 시절,

개발업자가 동네에 불을 냈었는데

닭장처럼 붙어있는 집들은 무섭게 타들어갔다.

당장 살 곳이 없어지는 상황이었는데,

펑펑 가스통이 터지는 모습을 보면서 

마치 폭죽을 터트리는 것 같다는 철없는 생각을 했던 시절이었다.

그 좁은 골목길에 소방차가 들어가지 못해 

판자촌의 반을 태운 후에야 겨우 불이 그쳤었다.

우리집까지 타진 않았지만

몇주 동안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등 불편한 생활이 계속되었고

동네 사람들의 인심은 더욱 거칠어졌던 기억이다.

소문에 의하면 개발업자들이 불을 질렀다 했다.

2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 지금은 흐릿해진 기억이지만

그때 이후로 불은 나에게 막연한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당장 살 곳이 불타 없어진다는 것의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보다 좀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사실은

누군가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저지를 수 있는 일이란

생각보다 무척 잔인하고 날카로운 모습을 가졌다는 거였다.

타인의 악의의 실체를 직접 마주하게 되었던 첫번째 사건이었고,

그로 인해 불공평한 세상에 대한 원망을 마음 속에 품게 되었던 사건이었다.

그렇게 사춘기의 나는 좀 더 성장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여튼… 우리동네의 불은  한 시간 안에 진압되었고

나는 다시 짐가방을 풀어야 했다.

그러나 언제고 비상시를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게

인생이라는… 그런 뻔한 생각을 다시 곱씹어보았다.

산 아래에 집을 안사서 참 다행이다… 라는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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