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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입덧하는 남자

by 글쓰는 백곰 2019. 6. 29.

한국에 있을 때는 그다지 조리를 많이 하지 않았다.

애가 너무 어려 하루하루가 고단했으므로

뭘 만들어 먹겠다는 의지 자체가 없었다랄까.

그런데 요즘은 알게 모르게 열심히 요리하는 듯 하다.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입덧하는 남자,

남편이라 적고 웬수라 부르는 그 남자가 있다.


우리는 한국 방송을 그다지 즐겨보지는 않지만

한국음식방송은 나름대로 챙겨보는 편이다.

미국에 오니 뭐랄까…

각국의 음식의 종류가 많아 선택의 폭은 넓어졌는데

맛이 뭔가 하향평준화 된 느낌…?

미국 이민 2년 차가 되니

한국인들이 얼마나 미식이 발달한 민족이었는가를 새삼 깨닫는다.

한국같은 맛을 추구하는 민족이 없다.

단짠느매,

달고, 짜고, 느끼하고, 매운 것,

이 모든 것이 있기에 쉬지 않고 먹을수 있다.

심지어 요즘 미국에서는 한국음식 붐이 일었다.

건강하고, 맛도 좋다는 그런 인식이 있어서인가,

미국의 고급 식자재 매장인 홀푸즈에도

한국식 소스와 인스턴트 음식들이 가판대를 메우고 있다.


그러나 실상 미국에서는

극단적 짠맛, 극단적 단맛만 있다.

그러다보니 40년동안 단련해 온 한국적 미각이

자꾸만 과거의 맛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몸이 좋지 않거나, 뭔가 우울할 때

한국음식을 먹으면 기운이 나는 게 사실이다. 

이걸 소울푸드라고 할수 있는 걸까…?

여튼… 그래서인가, 남편이 자꾸 입덧하듯 음식타령을 해댄다.


집에서 만든 손만두가 먹고 싶다,

홈메이드 식혜를 맘껏 마셔보고 싶다,

자기는 원래 곤드레밥을 좋아했다,

빵은 뭣하러 사먹냐, 집에서 만들어 먹으면 되는 것이다… 등등.


며칠 전, 남편이 불쑥 맘모스 빵이 먹고 싶다고 했다.

이젠 한국에서도 좀처럼 팔지 않는 그 맘모스 빵이.

난 어린 시절에 그걸 먹으면서도

크기는 엄청 큰데 목 메이게 뻣뻣하고 달기만 해서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기억인데,

이제와 새삼 먹고 싶다고.

하필 그 즈음 갑자기 더워지는 바람에

남편의 입맛이 뚝 떨어져 잘 먹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생크림과 딸기잼을 사와 만들기 시작했다.






빵을 만드는 게 아주 까다로운 일은 아니지만

발효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가사일을 하면서 종종 들여다 봐야한다.

생크림도 적당히 쳐야하고,

스트로이젤(소보루)도 만들어야 했다.

게다가 태산같이 쌓이는 설거지는… -.-;

빵이란 먹을 때만 간편한 요상한 음식임에 틀림없다.


남편은 그 맘모스 빵을 추억의 맛이라며,

다음날 저녁까지 알뜰히 다 먹어 치웠다.

잘 먹는 걸 보니 뭐라고 할순 없는데… 

좀 성가시다랄까…

뭐 그래도 그렇게 가끔 주문을 하는 날이면

저녁 메뉴는 뭘 해야 하나 걱정을 덜어주기도 하니까.

또 자기가 원한 메뉴다 보니

두번 이상은 먹기도 하니까.

그렇게 좋게 좋게 마음을 먹자 싶으면서도

아이와 24시간 붙어 있는 여름날,

새로운 메뉴를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전력을 다하다 보면

내가 지금 왜 이걸 해야하나,

가끔씩 주체할 수 없는 화가 치미는 건… 그런건...

갱년기가 오고 있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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