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날의 일정은 친구를 만나는 것이었다.
그걸 여기에 쓰는 게 과연 잘하는 것인지
며칠을 고민하느라 글을 쓰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을 겪었던 것들이
전혀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될 수 없듯,
이마저도 나의 삶 하나이기에 써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친구는 며칠 전, 아들을 잃었다.
나는 한국에 와야만 했다.
그러나 친구는 나를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
카톡 메세지에도 대답이 없었다.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친구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어떤 위로도 건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 얼굴을 봐야만 안심이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결심한 한국행이었다.
비록 내가 친구를 만나지 못하게 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마저도 이해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친구와 연락이 되었고
셋째 날에 만날 약속을 했다.
남편이 예약해 둔 호텔에 짐을 맡기고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
그 길 내내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렇게 도착한 친구집의 현관문을 열었을 때,
거대한 슬픔이 파도처럼 나를 덮쳤고
나는 친구의 고통에 압도되었다.
많은 사진과 그림들, 장난감들이
어지럽지만 질서정연하게 놓여있었다.
나는 친구를 안고 한참을 울었다.
그렇게 몇십분을 울었고,
누군가를 원망하고,
미친 듯이 화를 냈다가,
또 울고...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친구에게 밥을 먹자고 했다.
끼니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해 핏기 없던 친구는
네 덕분에 밖에 나와본다며 쓸쓸히 웃어보였다.
우리는 집 근처 샤브샤브집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먼 곳에서 친구가 와서 오래만에 많이 먹어본다며,
그나마 열심히 젓가락을 놀리는 모습을 보니
그제서야 겨우 안심이 되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이 너무 안타까웠다.
너도 호텔에서 하루 잘래?
그러자 친구가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는 기분이 좋았다.
친구가 저렇게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너무 기뻤다.
친구의 차를 타고 호텔에 와서 짐을 풀고
또 다른 친구를 하나 더 만났다.
원래는 그 친구와 하룻밤을 세울 생각이었는데,
뭐 둘이 자면 어떻고, 셋이 자면 어떻나 싶었다.
어차피 다 아는 사이이고.
그렇게 우리는 오래간만에 셋이 만났다.
안 본 사이 우리는 참 많이 변해 있었다.
채식주의자이던 친구는 어느샌가 고기의 맛을 알아버렸고,
그 누구보다 힘차던 친구는 모든 것에 시들해지고 말았다.
환경이 그렇게 만들고,
시간이 그렇게 단련시킨 것이겠지만
누구에게 주먹질을 하고
멱살을 잡아 따질 것인가.
우리는 울었다가, 웃었다가,
마치 정신나간 사람들처럼 감정의 끝을 오가는 대화를 이어갔다.
둘만의 진지한 공기도 좋았지만
셋이 만들어내는 다소 산만한 공기도 가볍고 좋았다.
우리가 좀 더 좋은 날에 만났으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우리는 원체 박복한 인생들이잖아?
좋은 날 따져가며 만난다면 평생을 두고 서로 그리워만 하겠지,
그러니 이렇게 만난 것만으로도 기뻐할 일인거야,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호텔에서 맥주를 마시고
2시경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작은 침대에 두명이 자는 게 불편해서는 아니었다.
다만,
나는 좀 더 오랫동안 친구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친구는 쉽게 잠을 자지 못하고 뒤척였다.
나는 꼼짝하지 않고 그 옆에 눈을 감고 있다가
친구가 얕은 숨을 고르게 내쉬기 시작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의자에 앉아 한참이고 친구의 자는 얼굴을 보았다.
꿈 속에서는 울지 마,
오늘 밤은 그냥 잠만 잤으면 좋겠다,
잠든 모습을 보고 있는데 자꾸 눈물이 났다.
안타까워 쓰다듬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그저 이렇게 거리를 두고 지켜 보는 것만이
나란 친구가 할수 있는 최선의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슬펐다.
나는 네가 될수가 없기에
너의 슬픔을 짐작만 할 뿐이고
그 짐을 함께 지고 갈 수도 없다.
그렇게 자격이 없는 나지만,
어떤 모습이라도 좋으니
계속 해서 너를 보고 싶을 뿐이다.
이렇게 바라보고만 있어도 애달픈 너를
나는 어쩌면 좋을까, 어쩌면...
그렇게 한참동안 친구의 얼굴을 보고 있던,
마음 아픈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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