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집에서 정신을 잃을 정도로 곤히 자고 일어났다.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이었지만,
남편에게 줄 여러가지 간식들을 사려고 홈플러스에 갔다.
미국에 있다보니 한국의 최신 식료품들이 너무 먹고 싶었다.
내가 사는 곳에도 한국마트가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평균적이고도 대중적인 식품들만 팔기에
(아마도 한국에서의 유행이 돌려면 2,3년은 필요한듯)
어쩌다 유튜브에서 편의점 신상품들이라도 보는 날엔
어찌나 먹고 싶고 궁금하던지,
한국에 가면 내가 꼭 구해오리라 남편에게 호언장담했었다.
여기 홈플러스는 내가 회사 다닐 때 주로 가던 곳이었다.
주차장부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통로,
다 눈에 익고 발길이 익숙하던 곳이었다.
별거 아닌 마트임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친숙한 느낌에 울컥이던지.
저기 푸드코트에서 엄마와 냉면을 먹었었지,
남성복 매장에 가서 아빠의 사이즈가 있나 묻고 했었고.
이런저런 추억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시간이 없어 서둘러 쇼핑을 하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트렌드한 아이템이 없었다.
흑당, 마라가 유행한다고 유튜브에서 봤는데,
마트라서 그런가(편의점과는 상품이 다르니)
딱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그냥 먹어보지 못한 과자류를 몇개 집어들고,
한국산 참기름, 들기름을 사는 정도로 쇼핑을 마쳤다.
신제품 라면을 사고 싶어도,
요즘 미국에서는 아프리카 돼지 열병이니 뭐니 해서
육류가 조금이라도 들어간 스프가 있는 라면 역시
전량 다 폐기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그냥 패스해 버렸다.
점심으로 뭐가 먹고 싶냐고 아빠가 물어보셨다.
문득 아빠가 해주시던 연포탕이 떠올라 이야기 했는데,
결국 해산물 전문식당에서 먹게 되었다.
뭔가 이게 아닌데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내가 메뉴를 말하던 순간의 새엄마의 표정변화 속에서
식당으로 향하는 이 상황이
솔로몬의 판결만큼이나 현명했음을 알수 있었다.
역시나 연포탕은 내가 생각하던 그 맛이 아니었다.
이것도 다 추억의 맛인건가,
생각이 많아져 점심을 어찌 먹었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점심을 먹고 바로 공항으로 갔다.
새엄마께 약간의 용돈을 드리고 공항으로 들어가려는데,
아빠 걱정은 하지 말라고 내게 이야기하셨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간단히 목례만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래도 가족인데 너무 건조하게 헤어진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 그날 아침 오빠를 잠깐 보기도 했다.
좀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도 같고…
오빠를 볼때마다 느끼는 건데,
도대체 뭐가 진심인지 알수 없는 사람이다…
조금 일찍 들어선 공항 안.
나를 만나는 사람들마다 내게 건네준 용돈들이 제법 되었기 때문에
입금 시키기 위해 은행 창구를 찾아다녔다.
입국심사까지는 5시간이나 남았는데,
미리 공항에 와버린 것은
친정에서 오래 있는 것도 불편하고,
그동안 누군가를 만날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차라리 공항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친구가 있어서다.
역시나 친구는 20분 늦게 왔다.
나는 이 친구가 나보다 먼저 오는 걸 본 적이 없다.
그 때문에 얼마나 싸웠는지.
나중엔 그게 이 친구의 본질이라고 정의 내려버리니
이젠 그다지 노엽지도, 짜증나지도 않는다.
식사 때는 아니므로,
우리는 공항의 파리바게뜨에서 거한 디저트를 먹었다.
디저트만 두 쟁반 먹었다.
아기자기한 한국식 디저트를 보니
뭔가에 홀린 듯한 느낌이 들었고,
그동안 먹고 싶던 것들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한 억울함이 겹쳐
두 쟁반을 거의 다 해치웠다.
쉴새 없이 먹으며 친구의 일상얘기를 들었다.
40대에도 여전히 싱글이면서
나의 친구답게 굴곡진 인생의 소유자.
그런데 뭔가 내게 감추려는 것이 있어 보였다.
얘가 뭔가에 빠져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게 남자라던지, 어떤 취미생활이 아니라
정체 모를 종교인 듯 했다.
40년 넘게 채식주의자였다가 갑자기 육식을 시작한 것이
자신이 아는 선생님께서 권해주셔서 그랬다는데
얼핏 굿이니 뭐니 하는 소리까지 겹치는 걸 보니
세상 그렇게나 찝찝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고 물었으나
대답을 요리조리 피하기만 했다.
내게 납득을 못시키는 걸 보니 대중적인 것은 아닌가보다,
한숨을 내쉬며 친구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역시나 별난 친구로군.
공항에 있는 편의점에 내가 원하는 것이 있나 싶어
두 군데를 돌았는데, 딱히 새로운 것은 없고
여러가지 맛의 아몬드 종류만 패키지로 팔고 있었다.
요즘 외국인에게 인기있는 것들이었는데
해외교포인 나에게는 딱히 끌리지 않는 종목이었다.
그러나 자꾸 아쉬운 마음이 들어 이것저것 담았는데,
그마저 이 친구가 계산해버렸다.
이렇듯 한국에 와서 내 돈은 거의 쓰지 않은 듯 하다.
어느덧 해가 지고 비행기를 탈 시간이 되었다.
뭔가, 알수 없는 가공의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버린 허무함이 엄습했다.
분명히 5일 동안 한국에 있었고,
여러 사람들을 만났는데 말이다.
한국에 5일 동안 다녀왔다는 소식을 듣고
나의 미국 지인들은 못 믿어하는 눈치였다.
누가 고국방문을 그렇게 짧게 해?
그래서 하고 싶은거 다 했어?
여러가지 질문들이 쏟아졌다.
늘 걱정되는 사람을 만나고 왔어요.
단지 그렇게밖에 이야기할 꺼리가 없었지만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는 걸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서 비로소 깨달았다.
참으로 정신없고, 긴박했던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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