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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오늘은 초코소라빵

by 글쓰는 백곰 2020. 3. 11.

며칠 전부터 남편이 노래를 불렀던 초코소라빵을

주말을 맞이하여 만들어 보았다.

한국에 있었으면 동네빵집에서 사 먹으면 될 일이건만

미국에 사니 뭐 하나 간단한 것이 없다.


그동안 만들어 먹었던 빵들…

우유식빵, 옥수수식빵, 밤식빵, 크랜베리 호두식빵, 

소보루빵, 단팥빵, 치아바타, 생크림빵, 스콘, 와플 등…

나는 주로 식사가 될만한 것들을 주로 만들어

냉동고에 가득 쌓아놓곤 한다.

종류별로 채워 놓으면 밥하기 싫을 때 

내키는 것을 골라 다양하게 먹을 수 있고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기도 하다.

언젠가 화장실이 급해서 뚜레쥬르(미국)에 들어갔는데

빈손으로 나오기가 뭣해서 작은 식빵 한 통을 샀었다.

그 손바닥만한 식빵 사이즈가 5불이 넘었다.

남편은 *값이라 생각하며 넘기라고 했지만,

양이 많은 것도 아니요, 맛이 좋은 것도 아니었기에

정말 돈이 아까워 죽을 지경이었다.

그 후로 식빵은 무조건 집에서 구워서

식빵 두께로 잘라 냉동고에 보관해 놓는다.


또한 빵을 만들 때 거기에서 조금 더 양을 늘려

지인에게 선물해 주면 그렇게나 좋아할 수가 없다. 

미국의 빵 맛은 뭐랄까…

도대체 뭘 넣었는지 모르게 미국 빵만의 묘한 냄새가 있다.

그래서 미국 식빵을 먹지 않는 한국 사람들이 있다.

내가 아는 엄마들 중 아들이 잘 먹지 않아 고민인 집이 있다.

입이 워낙 짧아 잘 먹지 않고 까다로운 식성인데

어쩌다 내가 우유식빵을 한번 구워준 기억이 있다.

그랬더니 아이가 너무 좋아해서 다 먹은 후에도 계속 찾았다며

만드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했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가끔씩 그 아이를 위해 빵을 굽는다.

딱히 아이와 친밀한 관계가 있거나 한건 아니지만

잘 먹지 않는 아이들이 잘 먹는다는 소리를 들으면

기쁘기도 하고, 챙겨주고 싶기 때문이다.


빵을 만드는 건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반죽을 하고, 두 번의 발효를 거쳐, 다시 성형 후 굽는 것.

익숙해지면 그럭저럭 대단한 일이 아니지만

시간마다 한번씩 들여다 봐야 하는 수고가 있다.

그래서 빵을 굽는 날엔,

한 시간씩 발효 텀을 계산해서 이것저것 다른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동안 많은 돈을 들이기 싫어서

작은 제빵기를 구입해 반죽 용도로만 썼었는데,

그게 왠지 프로다워보이지 않았는지(?)

남편이 믹서기를 사주었다.

그것도 발렌타인데이 선물이라며.

미국 TV 에서 발렌타인데이 선물 광고를 볼 때마다

남편에게 공구 선물을, 

아내에게 믹서기 선물을 하는 장면이 자주 나왔었는데,

나는 그때마다 얼마나 비웃었는지 모른다.

일을 얼마나 더 하라고 저런 걸 사주는 건가,

저걸 받으면 로맨틱하다는 발상은 누가 하는 건가?

어처구니 없어했는데, 내가 그런 선물을 받는 사람이 될 줄이야.

참으로 로맨틱하다, 로맨틱해.


지난 주에는 큰맘먹고 상투과자를 만들었었는데

정말 노가다도 그런 노가다가 없었다.

한국 같았으면 백앙금을 사다가 만들면 되는데

여기는 그런게 없으니 앙금부터 만들어야 했다.

흰 강낭콩을 불려 일일이 껍질을 다 제거한 다음

잘 익은 콩을 믹서기에 곱게 갈아 설탕을 넣고

고운 앙금이 될 때까지 눌러 붙지 않게 저어 주는 것이다.

그렇게 만든 앙금에 여러가지 재료를 다시 넣고

짤주머니에 반죽을 넣어 이쁘게 짜서 만드는 것인데…

아… 쓰는 이 순간에도 진절머리가 난다.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후에 또 초코소라빵이라니.

자기가 임신을 하길 했어, 

아님 뭐 식욕이 없어 말라가길 해,

왜 자꾸 저러는 것일까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코로나 사태로 반강제 격리 생활을 하는 일상이 지겹기도 해서

한번 시도해 보았다.


이 초코소라빵의 가장 짜증나는 포인트는

반죽을 소라처럼 말아줄 원뿔형의 지지대가 없다는 거다.

물론 제과점 같은 데서 사용하는 전문적인 자재도 있겠지만

잊지 마시라, 여기는 한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결국 유산지와 호일을 이용하여 원뿔 12개를 만들었다.

그것만으로도 기력이 다 빨리는 느낌이 들었다랄까.

그렇게 완성한 초코 소라빵.




원래의 레시피 대로라면

커스터드 크림과 초콜릿, 코코아 파우더를 믹싱하는 크림이지만

간편 버전으로 나와있는 누텔라와 생크림 믹싱을 이용했다.

그랬더니 역시나 우리가 먹어 왔던 그 맛과는 달랐다.

하지만 커스터드 크림이라니…

바닐라 빈을 사는 것만 해도 일주일은 걸리겠다.

여튼… 그렇게 12개를 만들어 5개 정도 먹고

나머지는 냉동실에 고이 잠들어 있는 상태다.


언제쯤이면 남편 입맛이 현지화가 되려는지…

한국에서도 입맛이 까다로운 편에 속했는데

미국에 오니 더더욱 까탈스러워졌다.

미국은 한국처럼 밥을 주식으로 하는게 아니기에

빵문화가 많이 발달해 있을거라 믿었는데

의외로 맛있는 빵집은 손에 꼽을 정도다.

한국에서는 거들떠도 안봤던 파리바게뜨가

여기서 인기 최고인 현실이라니...

또한 우리가 여태껏 먹어 왔었던 일반적인 동네 빵집의 맛은

소위 말해 일본식 제과 제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때문에 여기서 그런 류의 빵을 사기가 힘든 것이다.

한국에서나 대중적인 것이지, 여기서는 아주 희귀한 맛인거다.


미국의 빵들에게선 왠지 모를 대용량의 공장 냄새가 나는 듯하다.

투박하게 데코된 케이크, 느끼한 버터크림,

너무 달아 오만상을 찌푸리게 되는 쿠키들...

물론 좋은 빵집도 있겠지만,

40년을 단련한 입맛이라는 게 참 무서운 거다.

나부터도 그건 부정하지 못하겠으니…

그래서 남편을 이해해 보자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하지만

저 남자가 어느 날에 또 어떤 해괴한 아이템을 속삭일지

이젠 불안하고 두렵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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