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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이제부터 게임을 시작하지!

by 글쓰는 백곰 2020. 3. 15.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미국을 강타하고 있다.

세상 태평하던 미국 대통령도 이제서야 심각성을 인지했는지

(뭐, 자신도 검사 받을 정도이니)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고,

그로인해 미국 현지 사람들은 한껏 긴장된 상태이다.

코스트코는 오픈하기도 전에 사람들이 몇백미터씩 대기줄을 서있고

그밖에도 유명한 마트들은 생필품들이 다 나간 상태라고 한다.

그동안 소모품을 쟁기는 버릇이 있었던 나의 습관이 

드디어 쓸모가 있게 되는, 뜻하지 않은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내가 사는 카운티에서는 특별한 징후가 없었다.

물론 옆에 있는 산타클라라 카운티는 난리가 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등교를 했고, 남편은 출근을 했다.

우리 한국인들끼리 하는 말이 있다.

미국인들은 모두 ‘쿨병'이 걸려 있는게 틀림없다고.

물론 우리 동양인들처럼 사태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기에는

시간이 다소 걸릴수 밖에 없었다.

엊그제만 해도 교육청에서는 해괴한 말들을 해댔다.

아이들이 안나와도 결석처리는 안해주겠으나

교직원들은 다 출근해서 수업을 진행할 거라고. 

(말이냐, 막걸리냐?)

그러다 어제 드디어 국가비상사태가 열리니

그제서야 학교를 닫는다고 발표했다.

회사들은 대체로 재택 근무를 권한다고 한다.


남편은 일의 특성상 회사 장비 사용으로 인해

재택근무와 출퇴근을 병행해야 할 듯 싶다.

아이는 우선 2주간의 임시방학을 맞았다.

집에 돌아온 우리 아이 가방 안에는

그동안 공부해야 하는 내용들이 그득하게 들어 있었다.

나는 그 두꺼운 숙제봉투를 보면서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그것이 내 생활에 침투하고 말았다고. 


우선… 집에서 밥 해 먹이는 건 어렵지 않다.

물론 메뉴의 단조로움으로 좀 지겨울수도 있겠지만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참고 지내야 할것 같고…

문제는 아이의 공부다.

물론 시키면 하기야 하겠으나… 

그전에 내가 선행학습을 해야 한다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다.

아이의 하루 학습량은 이렇다.

1.하루동안 있었던 일을 8문장 이상 쓰기.

2.수학문제 4쪽 풀기

3.단어와 어휘사용 문제 2쪽 풀기

4.하루 20분 이상 독서

5.교과서읽고 요약, 주석 달기

6.학습사이트에 접속해서 공부하기.




이거야 원, 학교에서 하는 체육활동 빼곤

교실에 앉아 하는 것들은 거의 실행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하… 여기서 좀 스트레스 상황이 되는 것은

영작을 해야 하는 1번, 

토익을 방불케 하는 난이도의 5번이다.

이 비루한 영어 실력으로 떠듬떠듬 어떻게 가르칠건지.

게다가 답도 없는 이 문제는 (몰래 답안지 좀 동봉할 것이지)

아이와 나의 지루하고도 긴 싸움이 될게 분명하다.

최소 하루전에는 미리 교과서 해석을 끝내야 하고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영어는 영어로 설명해야 알아들음)

그 역시 영작을 해야 한다. 

흰머리가 부쩍 늘겠는걸…

이렇게 나의 젊음이 또 다시 떠나간다.


막상 시작해보면 그럭저럭 어렵지 않겠지만

저 두꺼운 숙제봉투가 풍기는 위엄이란...

하루하루 잘 지낼수 있을까 모르겠다.

아이야 워낙 집돌이니 외출하자고는 안하겠지만,

피폐해질 나의 정신이 탈출을 감행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집을 참 좋아하는 사람인데 말이다.


어쨌든, 이제 게임은 시작되었고

다들 울며 겨자먹는 심정으로 임하고 있을 것이다.

받아들이자, 그리고 이겨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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