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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흰개미의 습격

by 글쓰는 백곰 2020. 3. 16.

약 한 달 전에 일어났던 일이다.

아이 방에서 쉬고 있던 남편이 큰소리로 나를 불렀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가보니, 벽에 이런 구멍이 있었다.




게다가 이 구멍 밑에는 모래같은 톱밥이 쌓여있었다.

우리는 순간,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리나케 검색을 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Termite… 흰개미였다.


캘리포니아의 주택들은 지진이 많이 나기 때문에

나무로 집을 만들게 되어 있다.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가끔씩 바닥에서 삐걱거리는 소리도 나고

벽을 두드려 보면 텅텅 빈 소리도 난다.

처음엔 그 소음이 무척 크게 들리는 듯 했다. 

나의 육중한 몸 때문에 유난히 큰 소리가 나는 건가,

그 땐 무척 신경 쓰이더니

이제는 적응이 되어 아무렇지도 않다.

뭐, 이젠 밤에 울리는 기차 경적 소리도 안 들리는걸, 

이 정도 삐걱대는 소리 쯤이야.


Termite 검사를 받은 게 집을 살 때였으니

벌써 1년 반 정도가 지난 시점이긴 했다.

그런데 막상 눈으로 그 실체를 보고 나니

어찌나 심난하던지.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알아보기 시작했다.

업자를 부르면 얼마나 드는지, 

와달라고 하면 당장 와주기는 하는지…

이러다가 집이 무너지면 어쩌나 걱정되어

리얼터였던 분께 전화를 해보니

일분일초를 다투는 급박한 일은 아니니

업자를 알아보아 처리하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방역업체를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남편이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내가 처리해야 할 것 같아"


우리집은 타운하우스다.

세 집의 벽면이 붙어 있다.

그중 우리집은 가장 중간에 끼어 있는 집으로

이런 구조의 집들은 세 집 모두가 함께 소독을 해야하지

어느 집만 한다고 하는건 의미가 없으므로

아예 접수를 받아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약 6개월 전에

옆집으로 왔었던 방역업체 차가 떠올랐다.

그때만 해도 옆집 사람들이 유난히 집에 공을 많이 들이길래

(정원사 고용, 마룻바닥 시공 등…)

그냥 그 중 하나인가 싶었다.

게다가 옆집 여자가 임신을 한 바람에

집안 환경에 좀 더 신경을 쓰는가보다 생각했을 뿐인데,

에라이, 그집 흰개미들이 우리집으로 다 이민을 온거구만!


여튼… 우리는 울며 겨자먹기로 소독을 하기로 했다.

우선 소독액체(붕산)을 시키고,

분사할 수 있는 물통, 마스크, 보호안경, 방진복 등…

계산해 보니 300불이 넘는 돈이 들었던 듯 싶다.

일주일이 지나 주문한 것들이 도착하고

그렇게 남편의 소독 작업이 시작되었다.


우리집은 2층인데, 2층 위 지붕밑에 약간의 공간이 있다.

난 겁이 많아서 거길 들여다 본적도 없다.

뭘 할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공간인데

남편이 거기에 들어가 약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십분 후, 남편은 거친 숨을 내쉬며 내려왔다.

방진복 안에 속옷만 입고 있었는데도,

온 몸이 다 젖어 있었다.

그리고 남편은 그 후유증으로 이틀간 앓아야만 했다.


뭐… 그 이후로 우리집에 다른 구멍은 발견되지 않았다.

쓰고보니 참… 

남편도 나름대로 자신의 일을 하느라 고생했구나 싶어

나중에 소라빵 12개 만들어줘야 겠구나 싶었다.

낯선 곳에 살면서 우리 모두 각자의 고충이 있고

때로는 그 때문에 불평불만이 솟구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의 적(돈?)을 해치우기 위해서는

서로서로 이쁘게 봐줘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얼마전만해도 입맛 까다롭다고 구박했는데,

이 자리를 빌어 심심한 유감의 뜻을 건넨다. 

베이붸, 암쏘 쏘리, 벗 알라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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