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국은 생필품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여유 있게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첫째, 나의 ‘쟁겨 놓는 버릇' 때문이며
둘째, ‘친구들이 보내준 사랑(?)’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게 식량을 보내주는 친구들이 있다.
그들이 보내준 비상식량은 대개 이렇다.
주로 건어물 (새우,멸치,김,미역,북어)과
각종 식자재(선식, 누룽지, 참기름 등)이다.
각자 나름대로 미국에는 흔하지 않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두 사람이 보내주는 물건들은 간혹 아이템이 겹치기도 하는데
그 속에서도 또 묘한 차이점이 느껴지기도 한다.
우선, 내가 작년에 한국에 갔을 때
한 친구는 누룽지 3키로, 미역, 김, 선식 등을 보냈다.
이 친구는 현재 맞벌이를 하고 있고
요리할 시간이 별로 없어서인지
주로 간편식으로 먹을 수 있는 완제품을
고급 품질로 보내는 편이다.
김을 보낼 때도, 간장만 살짝 찍어 먹어야 하는
아주 바싹 구워져있는 고급김을 보내고
미역을 보낼 때도, 별 모양으로 모양이 잡힌
이쁘고 작은 사이즈를 보낸다.
미식가이며, 센스 있는 그 친구답다는 생각을 했다.
또 한 친구는 작년 겨울에 우리집에 왔었다.
그 친구의 트렁크에는 자신의 소지품보다
내게 줄 건어물과 각종 식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친구는 이마트 트레이더스에서 대용량식자재들을 한가득 사왔다.
다른 친구와 아이템이 겹치는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이,
미역을 사도 대용량으로, 그것도 실미역, 돌미역, 종류별로 사고
김을 사와도 대용량으로, 김밥김으로 한팩, 생김으로 두팩으로 말이다.
게다가 새우, 북어채, 멸치, 쥐포, 한치 등
건어물을 대용량으로 한가득 가져왔다.
또한 깨, 참기름도 한두통씩… 스케일이 다른 내 친구.
덕분에 우리집 냉동고는 한동안 빈공간이 생기지 않았다.
이 친구는 원래가 알뜰살뜰한 편이고 식성도 좋다.
굳이 표현을 한다면
양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타입이랄까.
또한 아무래도 친구집에 직접 오는 길이다 보니
이왕이면 더 많이 가져오자 생각했을 것이다.
어쩜,
물건 사는 것도 이렇게 각자의 스타일이 나오는군,
신기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집에서 한국마트까지 먼거리도 아니므로
친구들이 보내주는 품목을 아예 구하기 힘든 것도 아니다.
하지만 친구들이 보내준 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것들을 사려고 고민하고 수고했을 모습이 떠올라
새삼 고마워지고 애틋해지고 그런다.
나는 친정에서 택배로 무언가를 받아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아쉬운 소리를 할 만한 성격도 못된다.
그런 나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내 친구들은
있다는데도 자꾸 이것저것을 보내 주었다.
잘 지내냐고 물을 때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다고 대답하는 내가,
사실은 꽤 고생하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에
자꾸만 뭘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아닐까 싶다.
이래저래 고마운 친구들이다.
하.지.만.
오래간만에 팬트리를 정리하면서 든 생각.
아무리 내가 한식을 많이 해 먹는다지만
깨 1.2키로를 1년 안에 소진하는 게 가능한가?
깨강정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닐까?
게다가 이 많은 미역들은...
물에 불려 놓으면 마치 산을 이룰 것 같은 이 미역들은…
최근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애를 낳기라도 한 걸까?
어떤 위급상황이 와도 미역국으로 6개월은 버틸 수 있을 듯 하다.
친구들의 이 사랑들(?) 덕분에
이 위험한 시국에 마트 갈 일이 줄었다.
고로, 나는 지금 행복한 불평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나저나 둘은 잘 지내고 있을까?
틈나는 대로 다시 연락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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