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는 봄비가 추적이고 있다.
사흘째 오락가락 내리는 비를 보면서
나는 내 친구를 생각한다.
월말에 이사한다고 했는데,
이 혼란한 시기에 잘 했는지 궁금하다.
작년에 한국에 갔을 때,
우는 친구를 남겨 두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 와야 했을 때
나의 마음은 조금도 편하지 않았다.
시간이, 언제나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
그러다 며칠 후,
사정이 생겨 열흘간 집에 혼자 남게 되었다며
그동안 우리집에 와도 되겠냐는 친구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너무나 기뻤다.
내가 미국에 살고 있다는 게 기뻤다.
물론 친구는 여러가지 복잡한 것들에게서 잠시 벗어나
마음 편한 친구가 있는 곳에 오는 것이겠지만,
그런 안식처로서 나를 떠올려 줬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늦은 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왠지 모를 설렘도 들었고
멀리서 트렁크를 끌고 오는 친구를 봤을 땐
뭔가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기도 했다.
남편의 유럽출장으로 며칠간은 우리끼리 지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일상은 이어지는 것이어서
아이의 등하교도 해 줘야 하고, 살림도 해야 했지만
나는 되도록 친구를 보살펴 주고 싶었다.
잠도 잘자지 못하고, 잘 먹지도 못하겠다던 친구는
그래도 우리집에서 어느정도 일상을 이어갔다.
시차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잠도 길게 잘 자는 듯 했으며,
식욕도 어느 정도 회복한 듯 보였다.
다소 의욕이 없어 보이는 친구였지만,
우리는 아침 일찍 동네 브런치 카페에 가기도 했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공원을 걸으며 함께 무지개를 보기도 했다.
다른 가게들의 햄버거 맛을 비교해 보기도 하고
아울렛 상가에서 다리가 아프도록 쇼핑하던 일,
소살리토의 유명한 아이스크림을 먹어 보던 것 등
나는 그 순간들을 모두 잊지 못한다.
누군가가 나를 찾아온다면 꼭 해보고 싶었던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친구가 행복할 때가 아닌
가장 힘든 시기에 해야 한다는 것이 슬펐을 뿐...
그래도 그 순간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
나는 틈나는 대로 몰래 몰래 친구의 사진을 찍었다.
친구는 그런 나를 그냥 내버려 두었다.
나는 식욕을 잃은 것 같은 친구를 위해서
나름대로 이것저것 만들어 주기도 했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내 손으로 밥상을 차려주었다는 게
가장 뿌듯하고 기쁜 일이었다.
가끔은 이 순간을 기억하면서
언제고 그 따뜻한 밥을 기억하면서
힘들 때마다 마음의 위안삼기를, 나는 소망했다.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게 열흘이 되었고
다시 돌아가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또 울었다.
언제고 오고 싶을 땐 망설이지 말고 오라는,
떠오르는 말이라곤 그것밖에 없었다.
더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해 미안했다.
이제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가야 하는 헤어짐이었다.
친구가 있었던 그 초겨울,
비가 참 꾸준히도 내렸다.
소파에서 지친듯 잠이 든 얼굴을
한참이고 쳐다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것과 비슷한 비가 내리는 어느 봄날,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친구의 안부를 궁금해한다.
문득, 그렇게 또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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