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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그럼에도 꽃은 피고

by 글쓰는 백곰 2020. 4. 12.

집에서만 생활한 지 어언 4주가 되었다.

처음에는 낯설고 답답하고 그러더니만

적응이 된건지, 

포기를 하게 된건지,

그럭저럭 하루하루가 무던하게 지나가고 

그렇게 또 감사하고 

뭐, 그렇다.


뉴스를 봐도 미국은 연일 신기록을 갱신하고 있을뿐.

동부, 특히 뉴욕이 심한 상황인데

나중에라도 동부가 진정된다고 해도

서부로 옮겨가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는 것이고

이래저래 낙관적인 기대에서 반포기상태(?)에 들어섰다.

남편은 아직도 재택 근무를 하고 있지만,

5월엔 출근할지도 모르겠다.


장기간으로 가는 코로나 사태를 대비해서

한국에서 쌀도 많이 주문하고,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색종이, 그림그리기 책도 주문하고,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한 소설책들도 잔뜩 주문했다. 

모두 다 선박이라서 6주 가량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정도야 뭐… 급한 것도 아니니.

참, 며칠 전에는 코스트코 홈페이지에서 휴지도 구입했다.

그 휴지상자를 품에 안은 순간, 

마치 천군만마를 얻은 심정이었다랄까.

휴지칸 수를 세며 닦던 날은 이제 안녕.

나는 이제 최고의 사치를 누려볼 셈이란다.

그렇게 차고가 열린채로 휴지를 차곡차곡 쌓는데 

갑자기 남편이 어서 서두르라 했다.

우리의 재산상태(?)를 남에게 들켜서는 안된다며.


집에서 생활한지 2주차까지는 

생활이 좀 엉망으로 흘러갔었다.

아무래도 학교와 회사를 가지 않는 상황이다 보니

일어나는 시간도 제각각이고 

뭔가를 하는 시간도 규칙적이지 않았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고, 

그런데 해야 할 일은 있고, 막상 하기는 싫고,

뭔가 자유롭지 못한 느낌에 답답하고 그랬다.

나는 무엇보다 아이의 학교생활을 집에서 이어간다는게

너무나 힘들고 곤혹스러웠다.

아침에 일어나자 확인하게 되는 선생님의 지시사항 메일.

그 안에 있는 스케쥴대로 아이와 시간을 보내야했다.

데일리 저널쓰기, 수학 3페이지, 독서감상문 쓰기,

또 요일에 따라 체육과 미술, 과학, 요가까지 

유튜브 영상과 각종 첨부 파일로 가득했던 그 이메일.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모든 과제를 다 끝내놓고 놀겠다는 어린이 덕분에

열심히 노력하면 1시까지는 모든 공부를 마칠수 있었다는 거다.

그렇게 아이와 이런저런 공부를 함께 하다보니

우리애가 뭘 제일 못하는지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특히 영어로 의견 말하기, 스토리텔링 등이 취약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 그 부분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어제부터 봄방학이 시작되어 아이는 좀 놀게 놔두고

그동안 나는 아이가 앞으로 공부할 내용에 대해서 미리 예습을 해놔야 한다.

아. 영어 좀 잘하고 싶다. 정말로.

그렇게 하루 학습량이 끝나면

아이와 함께 보드 게임을 하거나,

닌텐도 스위치로 저스트 댄스 (춤추는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틈틈이 살림도 하며.


봄비가 4월까지 이어지더니만

며칠전에는 좀 굵은 비가 내렸었다.

그러자 아이방 천장에 빗물이 들이닥쳐 천장이 얼룩졌다.

다행히 줄줄 흐르지는 않았지만,

시국이 이렇다보니 괜히 심난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원망스럽던 비가 한껏 내리치고 나니

어느 샌가 우리집 뒷마당에 장미가 활짝 피어있었다.

어머, 맞아, 장미 나무가 있었지. 우리집에.

가까이 가서 냄새를 맡아본다.

지독하리만큼 강한 향기였다.

사람들이 바깥에 나오지 않아 

전세계적으로 자연환경이 좋아졌다더니만,

코를 쏘는 듯한 꽃향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람들 마음에 비가 내리던 말던,

자연은 그렇게 피고지고를 잊지 않고

자신들의 시간표대로 꾸준히 달려가고 있다.

그게 늘 순탄한 일만은 아니었겠지만

그동안 결코 불평하는 법도 없었다.

인간은 아주 보잘것 없으면서도 

각자의 불만으로 폭주하는 상태인데 말이다.

좀 쉬어가며 주변의 꽃을 살펴 볼 줄도 알아야지,

이뻐할 줄도 알아야지.

그렇게 장미꽃이 방긋 피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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