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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우리집 겜돌이들

by 글쓰는 백곰 2020. 4. 18.

남편은 나와 연애하던 시절부터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자신은 아들에게 친구같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그때마다 나는 아버지와 아들이 농구를 하거나

사이좋게 캐치볼을 하는 풍경을 상상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지금 두 사람의 겜돌이가 서로에게 소리치며 게임 중이다.

-아, 거기로 가지 말라고!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고!

그래… 친구같긴 하다. 그래 뵌다…


남편은 비교적 어린시절부터 다양한 게임들을 접해 왔다.

그래서 나름대로 게임에 대한 철학도 가지고 있다.

남편 왈, 무슨 게임이든지 100시간 정도는 해봐야 

그 게임에 대해서 안다고 할수 있다고 한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는데 

(수긍하는 순간, 게임시간을 허락해줘야 할것 같은...)

그 말을 들었던 동네 고등학교 남학생은 

그 철학에 큰 감명을 받았다나 뭐라나… 


여튼…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나를

게임의 세계로 인도하기 위한 남편의 노력은 꾸준히 이어졌다.

여자들이 좋아할만한 게임을 추천해주고

더러는 같이 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왜 그런 말이 있잖은가.

운전은 남편한테 배우는 거 아니라고.

나는 그게 게임에도 적용된다고 본다.

이미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간 사람들은

초보자들이 저지르는 실수를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실수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초보자들은 컨트롤러를 다루는 것도 미숙하고

게임의 속성 자체도 잘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임을 배우던 초창기,

남편에게 엄청난 구박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같이 하면 안될 여러 가지 목록 중에

게임이란 종목을 하나 더 추가해 두었다.

지금은 각자가 좋아하는 게임을 따로 한다.

어차피 취향 자체가 맞지 않았다랄까.


그러다가 아이가 7살이 되자

어느 정도 게임에 대한 흥미가 생겼고

아이 자신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가 보다.

요즘은 워낙 세월이 좋다보니

유튜브를 검색하면 게임공략도 다 나와 있고

어떻게 흘러가는지 스토리도 다 파악할 수 있다.

이 때다 싶었는지 남편은 타깃을 변경하여

아들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폭력적이지 않으면서도 아기자기한 것들을 검색하다보니

주로 슈퍼 마리오 쪽 컨텐츠가 많았다.

그래서 사서 몇가지 시도도 해보았는데,

자신의 마음처럼 컨트롤되지 않는 게임 때문에

아이는 속이 상했는지 조금 하다 말았다.

그렇게 남편의 꿈이 좌절되나 싶었는데,

작년 11월에 루이지맨션3가 출시되면서

갑자기 아이가 본격적으로 게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아빠가 같은 팀이 되어 이끌어가는 것이지만

아이는 수차례 모진 구박과(?) 타이름을 오가며 게임을 배웠다.

(지난 날의 나를 보는 것 같아 짠하기도)

그리고 틈만 나면 게임공략을 검색해 보기 시작했으며,

그로 인해 나중에는 아빠보다 훌륭한 플레이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현재, 

두사람은 한 소파에 앉아 소리지르며 게임을 하는 중이다.




(요즘 온라인게임까지 같이 하는 루이지맨션3 )


흠… 저걸 아름다운 광경이라고 해야 하나 어째야 하나.

아직까진 아이가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안된다는 걸 알아서

아빠가 아니면 안되기에 게임을 혼자 하진 않고 있다.

그러나 게임을 좋아하는 건 분명해 보인다.

우리는 주말에만 1~2시간 허락해주고 있는데

자기는 주말만 기다린다고 할 정도니.

게다가 아무리 아빠한테 화가 난 일이 있어도

아빠가 같이 게임해주지 않으면 안되므로

뒤끝없이 아빠를 용서해주는(?) 관대함도 보여준다.

이렇게 겜돌이2가 탄생했다.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외출도 쉽지 않고

여러모로 육체활동이 적어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원체 아이와 아빠의 성향 자체가

야외활동을 좋아하지 않고, 지독한 집돌이들이다.

그러다가 요즘 내가 ‘저스트 댄스'라는

춤추는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 혼자 할 생각이었는데,

나를 지켜 보던 어린이가 호기심이 동했는지

요즘은 두세곡 같이 춤을 추기도 한다.

어느 날엔 내 컨디션이 안좋아서 쉬고 싶을 때도 있는데

왜 안하냐고 호통을 치는 바람에

하루에 30분씩 강제 댄스를 하기도 했다.

하마터면 족저근막염 올뻔 했다는… 

집에서 맨발로 하는 댄스가 이렇게 위험하다. 


아이가 8월까지 학교도 가지 않으니 

이 단조로운 생활속에서

이렇게 가끔씩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게다가 말 안들을때 협박용으로(?)

게임을 거론하는 것도 상당히 효과가 좋다. 


아빠와 투닥거리며 게임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참… 어느새 저렇게 컸지, 싶다.

어쨌든 같이 놀아주는 아빠가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는지

나중에라도 아는 날이 오긴 하겠지.

그때까지 겜돌이들아, 

게임할 때 서로 싸우지 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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