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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엄마 선생님

by 글쓰는 백곰 2020. 5. 5.

요즘 들어 하루하루를 꽉꽉 채워 사는 느낌이 든다.

뜻하지 않게 아이의 선생님이 된 것이 그렇고,

갑자기 남편의 점심도시락을 싸게 된 것이 그렇다.


등교시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아이는 일어나자마자 식탁 앞에 앉는다.

무얼 먹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 할당된 학습량을 어서 해치우자는 뜻이다.

학교도 8시 30분에 수업시작했으니

우리도 그 시간에 시작하자고 했으나

말이 통하지 않는다. 어서 하자고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아이는 해야할 일을 어서 해치우자는 스타일이다.

덕분에 나는 눈꼽도 떼지 못한 채 같은 테이블에 앉는다.


우리는 Google Class 에서 그날의 학습과제를 받는다.

봄방학즈음 선생님이 다양한 교재를 우편으로 보내줬고,

그것과 별개로 다른 수업들에 대한 지침들을 그때마다 보내준다.

하루에 해야 할 것이 몇가지 있는데

요일마다 조금씩 다르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체육, 수요일은 미술, 

목요일은 독서, 금요일은 과학 등.

일반적으로 학교의 시간표대로 수업내용을 구성해주는데

그 내용들을 내가 훤히 알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날 그 자료들을 해석하고, 풀이를 찾아본다.

그렇게 준비를 다 끝내 놓아야

아침에 당황하지 않고 수업에 임할 수 있다.


여튼… 그렇게 해온지 벌써 6주던가, 7주던가…

우리는 누가 서로 영어를 못하나 대결이라도 하듯이

서로 투닥거리며 (네가 맞네, 내가 맞네) 수업을 해왔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 

서로 눈짓발짓 해가면서 그럭저럭 나아지고 있는 중이다.

내가 영어를 잘하거나 하는 편은 아니지만,

28명이나 보살펴야 하는 선생님은 시간 관계상 그냥 넘어갈 일을

나는 절대로 그냥 넘어가주지 않으므로

비록 엉터리일지언정 글 몇 줄 더 쓰게 되고,

점차 생각이라는 것도 하고, 

고민이라는 것도 하게 되면서

아이도, 나도, 매일매일 좋아지고 있는 중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의 수난은 말도 못한다.

글씨 쓰기 싫어하는 아이를 위해

여러가지 사탕 발림을 했었다.

TV를 보게 해주겠다, 게임을 허락해주겠다 등등.

그러자 이젠 스스로 글씨도 이쁘게 쓰고

스스로 이렇게 쓰는 게 근사할 거라며 의견을 내기도 한다.


아이와의 문제는 그럭저럭 해결되는가 싶지만

여전히 학교수업을 집에서 수행하는 것은

나에게 크나큰 미션이다.

숙제를 하고 나서 다시 제출해야 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 중 미술이 가장 난이도가 높다랄까...

재료가 없는데 뭘 자꾸 만들어내라고 그런다.

지난주에는 조각에 대해 배우면서

플레이도우로 뭔가를 만들라고 하는데

집에 플레이도우가 없는 바람에 

집에 있는 재료들을 다 털어서 만들어야했다.

반죽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던지.

준비 시간만 1시간이 어영부영 지나갔는데,

그걸 기다리며 자신의 학습시간이 길어졌다며

아이는 울기 시작하고… 

여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녹차가루, 단호박가루, 물감, 밀가루, 그리고 나의 파워)


또한 아이와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가끔 나의 집안일을 도와주기도 한다.

그래봤자 쓰레기 버리기, 우편물 가져오기 등 사소한 거지만

이젠 경제 관념도 생겨야 하니 용돈도 줄겸

작은 보상을 해주기 시작했다.

어느 날이던가,

쓰레기도 치워 주고, 청소기도 정리해 주길래 1달러를 주었다.

그러자 왜 1달러냐며 화를 버럭 내는 것이었다.

-나 오늘 저널 글씨 이쁘게 썼잖아! 왜 1달러 더 안줘?

마치 맡겨놓은 사람마냥 호통치는 그 모습이

어이가 없어 한참동안 웃었다.

이런 날강도 어린이를 봤나. ㅋㅋ


남편 회사는 원래 캐더링으로 점심을 제공했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로 전직원이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당연히 점심 제공도 끊어지게 되었다.

남편은 회사에 있는 장비 때문에 출근한지 2주차가 되었는데

덕분에 점심도시락을 싸는 상황이 되었다.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면서

동시에 도시락을 싸는 멀티형 인간! 

그것이 바로 나인 것이다!

후후… 스스로 대견하고 기특하고 그렇다. 

뭐, 따로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나라도 칭찬해줘야지.

이제 3학기도 6월 중순이면 끝나게 된다.

그걸 위로 삼아 견디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어디선가 스물스물 들려오는 불길한 소문.

가을에 다시 코로나가 재유행할 것이며

올해 자체가 학교를 닫을 지도 모른다는.

하하… 하하하…!

정신줄을 놓게 하는 쇼킹한 소식이로구나.

뭐가 최선인지 모르겠지만, 에라이, 될대로 되라.

짝퉁이긴 하지만 하라면 해야지 뭐.

엄마 선생님 노릇 하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