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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거실 인테리어 -3

by 글쓰는 백곰 2023. 9. 4.

바닥에 언더레이먼트 작업을 한 후,

대망의 마루바닥 깔기가 시작되었다.

여러가지 옵션이 있었으나 우리가 선택한 것은

엔지니어 하드우드였다.

하드우드를 하자니 너무 가격이 부담이 되었고

라미네이트를 하자니 너무 싸보이고(?)

결국 절충안으로 엔지니어 하드우드를 선택했다.

합판에 목재를 얇게 붙여서 만든 자재인데

나무 느낌이 나면서, 관리도 편한 게 마음에 들었다.

색은 월넛으로 조금 어둡게 했는데

우리집 가구들이 대체로 월넛 계열이라

바닥이 밝으면 가구들이 동동 떠있는 느낌이 들것 같아서였다.

시공은 하드우드와 같은 방식으로

자재를 서로 맞물려서 톡톡 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무척 고된 작업이었다.

 

방이 아니라 거실을 시공하는 것인데

바닥 모양이 사각형 반듯한 게 아니라

어느 부분은 길고, 어디는 짧고,

어디는 튀어 나와있고, 어디는 들어가 있고…

결국 자재들을 재단해서 잘라내야 하는데

그게 보통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테이블쏘를 사서 직접 잘라냈는데

그때마다 엄청난 톱밥이 날렸다.

그래서 차고에서 잘랐는데 

한줄 한줄 시공할 때마다 몇번씩 차고에 들락날락거려야 했다.

내가 언젠가 언급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집에서 브레인은 남편이 담당하고

파워는 내가 담당하고 있다.(?)

남편이 재단한 후, 잘라오면

그것들을 착착 밀면서 붙여주곤 했는데

5줄 정도 했을 때 남편의 체력이 바닥나고 말았다.

아무래도 처음 하는 일이다 보니

왔다갔다 자르는 일도 힘들고

비싼 자재를 망치지 않기 위해 재단도 정확히 해야 했으며

요령이 없다보니 바닥 자재를 서로 잇는 것도 힘이 부쳤다.

남편이 갑자기 씩씩대더니 못해먹겠다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더이상 못하겠다고, 힘들어 죽겠다고.

공사를 한지 4일째 되던 날이었다.

 

물론 나도 옆에서 논 것만은 아니어서

자재도 날라다 주고, 미리 공구를 준비해 주곤 했지만

파트너가 못하겠다고 화를 내버리니 

별 도리가 없었다.

아마도 체력에 한계가 오지 않았나 싶다.

우리는 재작년 겨울 12월 21일에 일을 시작했었다.

미국은 새해까지 연휴니까,

바짝 일주일을 쉬지 않고 일한후에

나머지 날들을 쉬어야겠다고 계산했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마루 까는 작업이 힘들고 속도가 나지 않자

아마도 짜증이 났던 것 같다. 물론 체력적 한계도.

그럴 땐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라는 걸 나는 안다.

그래서 이튿날까지 푹 쉬었다.

남편이 스스로 다시 시작하자고 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그렇게 이틀째가 되던 날, 

시작한 건 끝을 봐야하지 않겠냐며 남편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그 지루하고도 괴로운 마루 깔기 작업이 이어졌는데

꼬박 사흘이 걸렸던 듯 싶다.

정말 그땐 나도 옆에서 조수 노릇하느라 쉴틈이 없었다.

여기까지가 총 일주일 간의 여정이었는데

우리는 밤마다 앓으며 잠이 들었고,

끼니 때마다 걸신 들린 듯이 먹어 치웠으며,

Lowe’s에 수시로 출근도장을 찍었고,

무슨 수혈이라도 하는 듯 밀크티를 들이켰다.

 

마루바닥을 다 깔고 나서

바닥의 트랜지션(문틈이나 베란다틈의 경계부분)을

새 자재로 바꿔 주었다.

그 후엔 베이스보드(몰딩)를 설치해야 했다.

우리는 또 자재를 잔뜩 실어와 재단하고, 자르고, 붙였다.

베이스보드의 경계면에는 퍼티를 발라 매끈하게 만들고

다시 하얀색으로 페인트칠 했다.

베이스보드와 벽면이 뜨는 공간에는 실리콘을 쏘고

흘러 넘친 부분을 꼼꼼히 닦아 틈새를 모두 메꿨다.

 

(애증의 거실 공사 완성본)

더 디테일한 사항을 쓰자면 끝이 없겠지만

이게 벌써 2년 전 일이라 기억이 조금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가계부를 쓴 탓에 공사비가 얼마인지는 정확히 안다.

거실 공사에 3,300불을 사용했는데

이중 800불 정도가 공구(테이블 쏘, 타일커터 등)에 들었고

각종 자재로는 2,500불 정도가 들었다.

미국에서 이 정도의 가격으로(그것도 캘리포니아에서) 

공사를 끝낸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자부한다. 

우리가 직접 거실 시공을 한 이유는

물론 경제적인 이유가 제일 컸지만

우리가 자유롭게 공사기간을 정할 수 있으며

직접 시공한 것이므로 그다지 불만(?)이 없을 거라는 거였다.

3,300불에 거실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데다

퀄리티 역시 그다지 나쁘지 않아서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공사였다.

생각보다 이쪽에 소질이 있는 게 아닐까?

나중에 제2의 직업으로 부부 시공단을 해볼까 잠시 고민했는데

열흘 일하고 한달 앓았던 과거의 저질 체력이 떠올라

이내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난 이 공사가 너무나 큰 공사여서

이제는 인테리어는 쳐다도 안볼 줄 알았다.

질려서 다시는 안 할 거라고…

그러나 무언가를 해봤다는 성취감은

또다른 노역(?)을 만들어 내고

우리는 그렇게 뒷마당 공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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