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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한잔의 커피가 만들어지기까지 -2

by 글쓰는 백곰 2023. 8. 31.

생두를 잘 선별한 후, 로스팅이 이어진다.

가정용 로스팅기인 베네카페(한국산)는

미국에서도 제법 유명한 편이어서 구입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보통 한번 로스팅하는 양은

반 파운드 기준이다 (약 225그램).

미국의 모든 식품의 계량 단위가 파운드, 온스라서 그런가.

여튼… 생두를 판매하는 기본양도 파운드 기준이다.

 

우선 로스팅기에 로스팅 온도를 설정해놓고

예열이 되도록 기다린다. 마치 오븐처럼.

나는 400도가 넘는 온도에서 로스팅을 하는데

그날의 온도, 원두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곤 한다.

(한마디로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뜻)

5분 정도 예열을 하면 기준 온도에 다다르는데

그때 선별한 생두를 넣고 볶아지는 것을 관찰한다.

 

원두는 보통 2번의 탈피 과정을 거치는데

그 팝핑되는 것을 기점으로 원두의 로스팅기준이 정해진다.

1차  팝 직전에는 라이트 로스트이며

보통 비싼 커피인 게이샤 종을 볶을 때 쓴다.

1차 팝이 종료되면 미디엄 로스트이며

보통 가성비가 좋은 커피의 기준이다.

2차 팝이 진행되면 풀시티 로스트이며

요즘 잘나가는 로스터들의 블렌딩 배전도라고 한다.

그 이후로는 다크 로스트라고 하는데

보통 스타벅스 스타일이라고 보면 된다. 

 

일반적으로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로 먹는 커피는

미디엄 로스트와 풀시티 로스트에 속한다.

신맛이나 특이한 향이 나는 건 미디엄 로스트인데, 

원두 자체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또한 구수하고 진한 향이 나는 것은

풀시티 로스트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원두마다 가지고 있는 특징이 달라서 차이점이 존재하지만

대개의 원두는 그렇게 로스팅된다.

미국에서는 유난히 다크 로스트가 많은데,

특히 스타벅스 같은 대형 프렌차이즈는

우유등 다른 음료와 믹스된 형태로 파는 메뉴가 많아서

커피를 강하게 볶아야 그 맛이 선명해 진다.

커피 자체로 승부를 본다기 보다는 

음료 재료의 하나로 쓴다고 보는 개념이다.

 

(최근에 로스팅한 동티모르 디카페인)

이 중 내가 선호하는 것은 풀시티 로스트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수하고도 향이 그윽한 포인트랄까.

2차 팝핑이 일어나고 톡톡 소리가 잦아들 때 쯤

로스팅을 멈추고 선풍기로 재빨리 식혀준다.

그 와중에도 커피 내부는 익어가고 있으므로

신속히 움직이는 것이 좋다.

그렇게 커피가 다 식으면 밀폐용기에 보관하고

2주내에 소진한다.

간혹 냉장고에 보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커피의 신선도에 중요한 것은 

온도가 아니라 밀폐력이기 때문이다.

공기 차단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다.

 

우리가 드립커피를 내릴 때 구워지는 커피빵은

로스팅후 2주부터는 생겨나지 않는다.

나는 이걸 맛이 갔다라고 표현한다. (???)

음식은 신선할 때, 적당히 숙성시켜야 제 맛이듯이

커피는 로스팅후 3일부터 2주까지 먹는 것이

가장 맛이 좋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또한 커피는 갈지 않은 상태로 보관하는 것이

더욱 신선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공기와 접촉되는 부분이 많을 수록

커피의 맛과 향은 달아나 버리니까.

 

또한 커피를 즐기는 것에 대해 조언을 하자면

심혈관 질환이 있는 분들은 

에스프레소로 추출되는 커피,

즉 커피잔에 크레마가 남는 커피를 피해야 한다.

커피 자체에 있는 식물성기름이 혈관에 해롭기 때문이다.

그런 분들은 드립커피를 내려서 먹는 것이 좋다.

또한 카페인에 취약한 사람은 반대로 해야 한다.

커피를 추출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카페인의 추출량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에스프레소로 추출된 커피는 특유의 고소함이 있고

드립으로 추출된 커피는 특유의 강렬함이 있다.

둘다 각자 개성이 있지만,

이제 맛보다는 건강을 생각해야 하는 슬픈 나이에 서 있다면

어쩌겠는가. 선택해야지.

 

나는 누군가에게 초대를 받거나,

무언가를 선물하고 싶어질 때 커피를 볶는다.

집에 전자동머신이 있는 집이면 원두 자체를,

아니라면 일회용 드립백을 만들어간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많지만

각자 즐기는 방식은 각각이어서

(캡슐, 커피메이커, 콜드브루 등등..) 

그라인더를 갖추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일회용 드립백을 만들곤 하는데

약 8-9그램의 커피를 갈아

일회용 드립백에 넣고 1회용 포장지에 실링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나마 공기 접촉이 작아지는 편이어서

그럭저럭 괜찮은 상태의 커피를 제공할 수 있다.

남의 집에 초대되어 갈때 무엇을 사갈 것인가,

무엇을 해 갈 것인가는 상당히 까다로운 일일수 있는데

나는 신선한 커피 1파운드를 볶는 것만으로도

환하게 웃으며 기뻐하는 이웃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

그 표정을 보는 것이 너무나 흡족해서,

나는 계속해서 커피를 선물하게 되는 것 같다.

솔직히 나의 성의를, 

나의 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

몇 안되는 방법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실제로 커피를 볶는 건 아주 성가신 일이다.

로스팅할 때 나오는 연기는 온 몸에 배기 쉽고,

호흡기에도 당연히 좋지 않다.

필수로 마스크를 껴야하고,

커피 껍질 청소도 해야하고,

화상을 입지 않게 조심해야 하고.

조금만 눈을 떼면 커피는 맛이 180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 커피를 칭찬해 주는 지인들 덕분에

(어떤 이는 일부러 그라인더까지 샀다)

나는 가끔 그들이 예상치 못할 때 

툭 한봉지 커피를 내밀면서

괜히 혼자 흡족해 하는 경우가 있다.

뭔가 이렇게라도, 

내가 조금 특별해 지는 순간이 존재하는 것만 같아서.

낯선 땅에서 평범한 주부로만 살다보면

이 작은 능력이 그나마 없는 자존감을 세워주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아, 이렇게 계속 글을 쓰다보니

갑자기 또 커피가 마시고 싶어진다.

커피를 내리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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