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사/희.노.애.락.

외로움이 다가올 때

by 글쓰는 백곰 2015. 10. 13.

며칠동안 아이가 아팠다.

사실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감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대수롭지 않게 넘긴 적이 별로 없었으므로

완전히 나았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계속 지켜보는 수밖에 없없다.

추석부터 아프기 시작하더니, 추석 당일엔 새벽에 응급실에 갔었고,

결국 그렇게 열흘동안은 집에서 같이 있었다.


남편은 휴직중이다. 이직을 위한 휴직.

학원을 다니고, 독서실에 다니며 공부를 하고 있다.

휴직하고 있다고 해서, 열흘동안이나 아이와 같이 있을 필요는 없다.

여튼... 열흘이나 아이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나니

나는 무척이나 힘들었다.

단조롭고도 계속되는, 반복적인 놀이와 이런저런 아이의 요구.

엄마만 있고, 나는 있어서는 안되는 시간의 연속.


그렇게 열흘을 보내고, 드디어 감기가 다 나아서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던 날.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의 시간동안,

밀린 살림을 하고, 남편과 사무를 보러 다니고, 교회 일을 하고.

그러다보니 금요일부터 시작된 연휴가 또 나의 무기력을 들춰냈다.

왜 이렇게 연휴가 많은 걸까... 어린이집 선생님께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특히 지난주 금요일... 한글날로 공휴일이었던 그날.

나는 갑자기 외로워졌다.

문득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낮 12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나.

그러나 전화할 사람이 없었다.

나라고 친구가, 남편이, 부모가 없는 게 아닌데.

12시... 이 황금연휴의 점심시간.

어딘가를 놀러가지 않아도 각자 점심을 먹는 시간이고,

자신의 자녀를 돌보는 시간이다.

친구라고 해서 그 시간을 침범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할순 없었다.

재혼을 한 아버지는, 

내 인생엔 자식도 필요없으며, 다만 배우자가 자신의 마지막을 지켜줄거라고

화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었다.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다.

특별히 내가 잘못한게 없었는데, 자신의 어머니에게 화가 난 아버지는

자신의 자식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그걸 고스란히 들으면서 나는 왠지 서글퍼졌으며, 외로워졌었다.

그래서 나는 거리를 두기로 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눈치채지 못한다.

남편은 학원에 갔다. 이제 수업이 끝나고 점심을 먹고 있을 거다.

어쩌면 독서실에서 배웠던 것을 복습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 시간을 참견하면 안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쓸쓸해졌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열흘동안이나 계속되었던 답답했던 생활 속에서

며칠 해방되었었는데, 그나마도 나를 위한 일은 하나도 없고

그렇게 나 하나가 소진되어서 일까.

아이는 깨어있는 순간, 나에게 시간과 여유를 주지 않는다.

계속해서 밥을 먹이고, 간식을 먹이고, 흘린 것을 닦아주고, 질문에 답해주고...

이 아이와 같이 있는데, 나는 왜 고독한 걸까.

엄마라서 더 고독해지는 것일까.

아직 대화가 불가능한 아이와 24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무척이나 쓸쓸하고, 힘든 일이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신세를 토로할 수도 없었던

그 황금연휴의 점심시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내린 결론은

이제 이것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

이전에도 존재했던 쓸쓸함이었지만,

문득 새삼스레 가슴이 서늘해지며 우울해지는 것에

다시 나를 단련시키고, 어떻게든 혼자만의 시간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

그게 앞으로도 계속될 나의 미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쩔 것인가.

나란 사람이 가진 자원은 이것 뿐이다.

나는 원래부터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아본 적이 없다.

나의 박복함을 누구에게 털어놓을 것인가.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가.

마음이 상하면 울면 되는 것이고,

쓸쓸해지면 그리워 하면 되는 것이고,

화가 나면 화를 낼 뿐.

그것이 비록 혼자서 하는 일련의 작업일지라도.

왜인지는 묻지말고.

그저 담담히, 그 감정에 충실하는 것 밖에는, 나에게 다른 방법이 없다.


아이 엄마라서 더 외로운가.

문득 뛰돌고 있는 아이를 잡아 끌어

왈칵 안아본다.

너 역시도 조금후면 날라갈, 개개인의 삶이지만

아직까지 이렇게라도 안을수 있음에 감사하며. 

'일상사 > 희.노.애.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민오기까지의 근황  (6) 2017.07.09
사진 찍는 날  (2) 2015.10.20
Studying English  (0) 2015.07.23
사재기의 충동  (0) 2015.07.10
첫발자국을 남길 것인가  (0) 2015.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