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을 다시 만들기도 해야 하고,
운전면허 갱신도 해야 해서 사진을 다시 찍었다.
지금 여권과 운전면허 모두 똑같은 사진이고, 8년 전의 사진이다.
그 사진은 나의 증명사진 흑역사 중에서 유일하게 건진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늙었고 그러므로 사진도 갱신해 줘야 한다.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 왜 그렇게 부담스러워지는지.
안하던 화장을 하고, 최소한 피부톤이라도 깨끗하게 하려고 말이다.
안하던 머리 산발을 하고. 최소한 얼굴이 작게 보이려고 말이다.
그러나 두 가지 예상은 더욱 참혹한 결과를 불러왔다.
안하던 화장은, 음영조절을 하지 않아 아주 넙대대한 얼굴을 완성시켰고
머리 산발을 해봤자, 여권사진은 귀가 보여야 하므로 얼굴형이 그대로 드러난다.
나... 뭐 한걸까...
결과물을 봤을 때의 참혹한 심정이란.
역시나. 내 이럴 줄 알았어.
사진을 한참 들여다 보다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나란 사람이 이렇구나.
이런 얼굴로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겠구나.
살이 찌긴 했구나. 나이가 들긴 했어.
게다가 시간이 주는 세월의 모습이 언뜻 보이는 듯 했다.
여태껏 지나온 시간이 평탄치만은 않았다는 그런 증거를 마주해야 했다.
나는 이내 인정해 버렸다.
저게 내 얼굴. 저게 내 모습.
어릴 적이면 맘에 들지 않는 사진이 아니라고 한참이고 불만이었겠지만
나이가 드니 그런 사소한 반발도 하고 싶어지지 않고
어쩌면 가장 객관적인, 아픈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가 보다.
거울 속의 나는, 내가 원하는 각도로 선택해서 볼수 있다.
그래서 내가 갖고 있는 이미지란 다소 과장되어지거나 미화될 수 있다.
그러나 사진은 다르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싶어서 다소 체념을 하는 순간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시간을 견뎌온 흔적을 얼굴에서 발견했을 때,
마치 어떤 훈장을 지닌 것처럼 나 자신이 조금 대견하기도 했다.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렇게 인생을 배웠다.
그것이 나이테처럼 가슴에도 새겨지고, 내 모습에서도 풍겨져 나오고.
자연스럽다. 그것이 맞는 것이다.
순응하는 것처럼 편한 게 어디 있나.
뚱뚱하고 넙대대한 얼굴 속에서
나는 이제 시간을 조금 아는 얼굴이 되었다.
다 알 수는 없지만,
8년 전의 패기 어리고, 뾰족해보이던 인상은
이제 넉넉하고, 그럭저럭 사람 좋아 보이는 아줌마의 인상이 되었다.
만족한다.
그리고 남편이 그 사진을 보더니 질색하며 말했다.
전혀 네가 아니라고. 안경은 왜 또 이렇게 바보같이 치켜 올렸냐고.
사진사가 올려 써야 한다고 해서 그렇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그래도 아직은 나를
사진 속의 아줌마보다 좀 더 이쁘다고 생각해 주는 남자가 있어서
사실은 조금 행복하기도 한,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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