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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미국 회사의 팟럭 파티

by 글쓰는 백곰 2017. 11. 19.

다음 주면 추수감사절이다.

미국인들에게는 추석 같은 명절인 듯 하다.

미국에 오고 나서 처음 맞는 명절인데

특별하게 준비할 것도 없고

초대 받는 것도 없어서

추수감사절 시즌에 간단히 근교라도 여행할까 

생각만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남편이 일주일 전부터

회사에 팟럭 파티가 있다며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자신도 메뉴를 정해서 공지에 올려야 한다고.

우리집의 대표 메뉴 잡채를 하자고 했다.

나는 늘상 해오던 거라 부담 없었는데,

남편은 꽤나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남들은 어떻게 하는지, 무얼하는지,

한사람도 안빠지고 다 하는 건지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여직원들만 지원하고 있다며

다른 직원들에게도 참여하라고 독려했다 한다.

그래도 반응이 미지근하다고,

결국 참여하는 사람이 많은 양을 해야한다며

나에게 20인분 정도는 해달라고 부탁했다.


원래 추수감사절은 다음 주이지만,

회사에서 미리 땡겨 17일에 하기로 했다고 해서

대충 재료를 준비해 놓았다.

어차피 담을 그릇도 없어 1회용 handi-foil도 샀다.

일회용품의 나라답게,미국에서는 호일그릇도 많다.

주로 오븐을 사용하는 나라다 보니,

튼튼한 1회용 호일에 통째로 조리를 한다.

어제 보니 터키 로스트용 타원형 호일이 제일 많았다.


요즘은 간단히 잡채를 한다고는 하는데

(한군데에 다 넣고 기름 없이 하는 그런 조리?)

나는 구식 사람이고, 갑자기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아서

다 하나하나 볶아서 정석대로 했다.

예전에 나의 지인분이 맛있는 잡채를 해준 적이 있는데

어찌나 감칠맛이 뛰어나던지 비법이 뭐냐 물어봤었다.

그러자 약간의 굴소스를 넣으면 된다고 알려주셨다.

출장요리를 하는 친언니의 비법이라며. 

그때부터 나도 열심히 비법을 사용하는 중이다.



(별거 없는데 2시간 걸린 애증의 잡채)


시금치가 없어서 오이로 대체하고,

지단을 부치기 귀찮아 파프리카로 대체했다.

저렇게 만드는데 약 30달러 정도 들었던 듯 하다.

12시부터 시작한다고 하길래

11시까지 만들어 남편 회사에 가서 전해주고 왔다.


평소보다 양을 좀더 많이 했다고

얼마나 피곤하던지. 

간단히 한인슈퍼에서 김밥을 싸와 점심을 때웠다.

그리고 조금 후에 남편의 피드백이 있었다.


(남편 회사의 팟럭 점심 시간)


사람들이 준비해온 음식이 생각보다 양이 많아서

아주 인기가 좋은 메뉴를 빼고는 거의 남았다고 한다.

육류를 좋아하는 미국에서 과연 잡채가 인기가 있으려나

반응을 기대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도 반 이상은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싸준 용량이 남들의 2배였다고.

내참... 나보고 많이 하라던 양반이 이제 와서... -.-;

잡채는 동양 여인들에게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아마도 중국인들의 입맛에 맞았을 거 같다.

남편에게 잡채를 오픈하자마자 한번 휘저으라고,

혹시 붙었을지 모르니 잘 섞어놓으라고 당부했는데,

그 휘젓는 와중에 한 중국 여인이 다가와

나는 이걸 좋아한다, 네가 만들었니,

어쩌구 하면서 한접시 크게 떠갔다고 한다.

아마도 미리 공지해놓은 메뉴를 보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고 한다.


남편 회사에는 남편 말고도 2명의 한국인이 있다는데

정작 그들과는 말 한마디 섞어본적이 없다 한다.

이름만 한국인인 듯 하다며.

이번에 보니 그들은 음식을 준비하지 않았다 한다.

그래서 혼자 한국 전통음식을 낸 셈이 되었다.

그밖에도 회사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만한 음식들을 준비해왔다고 한다.

각국의 전통음식들 말이다.

나중에는 음식이 너무 많이 남아서 모두가 싸갔다고 한다.

남편도 이것저것 싸서 집에 가져왔다.

덕분에 세계음식(?)을 접할수 있어서 좋았다.

여러 나라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여기가 미국이란 나라 맞구나 싶어져

신기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했다.


대개 팟럭 파티를 하게 되면

묘한 신경전이 흐른다고 한다.

내가 준비해간 음식이 인기 있기를 바라는 거다.

나름대로 자신이 뽐낼 수 있는 메뉴를 준비해 가는데

사람들이 먹지 않아 남기게 되면 그처럼 속상한 것도 없다.

잡채는 반 이상은 먹었다고 했지만

나머지가 버려져서 속이 상했다는 남편.

나는 그럴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면 종류라 싸가기도 애매하다.

우선은 더이상 팟럭 파티가 없을거 같지만

그때를 준비해 다른 주력 메뉴를 하나 생각해봐야겠다.

한국적이면서도, 대중적일 것 같은,

그러면서 좀 경제적인. 


여튼, 부럽다. 남편의 회사생활.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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