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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한국에서 온 손님

by 글쓰는 백곰 2019. 2. 15.

외국에서 살면서 가끔씩 그런 생각을 했다.

지인들이 우리집에 찾아와주면 얼마나 좋을까.

며칠씩 집에서 머무는 것도 좋겠고,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노는 건

또 얼마나 즐거운 일일까 하며.

그러나 한국에서 미국으로 여행 온다는 것 자체가

결코 만만한 코스가 아니다.

긴 비행시간, 상당한 경제적 부담...

그래서 누군가가 온다면,

성심성의껏 챙겨줘야 한다는 의무가 생긴다.


지난 2년간 우리집에 찾아온 손님은

딱 두 팀이었다.

시부모님께서 2주간 계셨고,

지인의 자녀들 두명이 열흘 간 머물렀다.

지금 생각해보니 외국에서의 첫 손님들이

무난하지만은 않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알겠다.


시부모님은 작년 여름, 한창 더울 때 오셨는데

한국은 40도를 육박하는 더위였으나,

우리가 사는 캘리포니아는 25도 내외였다.

한마디로 휴양하러 오시기 좋은 날씨였다고 할까.

그러나 고령의 부모님께서는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오는 것만으로도

이미 지칠대로 지친 상태셨다.

공항에서 대기하는 시간도 길었고(직항이지만 미국이니)

13시간 가량 비행기를 타는 것은

젊은이들도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무척이나 오고 싶어하셨다.

그렇게 2주 가량 계셨는데,

시차 적응 실패로 낮에는 거의 주무셨고

체력도 워낙 좋지 않으신 탓에 관광도 하지 못했다.

차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를 한번 다녀왔을 뿐인데도

다음날 일어나시질 못했다.

결국 집에서 2주를 꽉 채워 계셨는데

매번 다른 끼니, 그것도 한식을 많이 해야하는 것이

며느리로써의 고충이었다.

한여름에 매번 국과 찌개를 하고,

새로운 반찬을 만들어드리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한국에서 보시던 방송들을 틀어드려야 했으며,

미국 특성상 차가 없으면 외출이 불가능하므로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드려야 했다.

그동안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수시로 두분의 상황을 살펴야 했다.

시부모님의 일정 때문에 2주밖에 안계셨지만

내게는 2주가 아니라

2년 같은 시간이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올해 지난 달,

지인 분의 자녀들이 왔다갔다.

18살, 20살 오누이였다.

아무래도 젊은 애들이니까 좀 덜 신경쓰이겠지 싶었지만

그래도 집에 찾아온 손님이니 소홀할수는 없었다.

연세 드신 분들보다야 젊으니까

아무거나 먹을수 있겠지 싶었는데

또 그렇지 만도 않았다.

아직 어려서인가, 새 문물을 받아들인 경험이 없어선가

한식이 아닌 낯선 메뉴는 가끔 손도 대지 않았다.

결국 아이들의 동태를 살펴가며 음식을 해줘야했고

어른 손님들과는 달리 관광을 원하는 그들을 위해

수시로 외출을 해야했다.

쇼핑센터를 데리고 다니고,

스탠퍼드 대학교도 견학 시키고,

샌프란시스코 자전거 관광도 시켰다.

연휴에는 LA에 2박 3일로 놀러도 갔다.

열흘 간 있으면서, 집에서 쉰 적이 한번도 없게

알차게 데리고 다녔다.

또한 내 아이가 학교를 다니고 있는 중이었으므로

일정이 겹치지 않게 움직여야 했다.

아이가 학교에 있는 동안

근처 관광을 알차게 해야했지만

어린 손님들을 아침에 깨우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았다.

그렇다고 내 조카도 아닌 아이들을 막 깨울수도 없고

수시로 일정을 조절해가면서 움직여야했다.

LA에 놀러 갔을 때

왕복 12시간이 넘는 로드트립에서도

아이들은 차안에서 눈 한번 뜨지 않고 자기만 했다.

좀 많은 풍경들을 보고 느끼기를 원했지만

멀미를 호소하는 아이들은 잠만 잤다.

뭐, 우리도 그 나이때 어른들이 하는 말이 들렸던가,

여튼 열심히 끌고 다니며 많은 걸 보게 하려고 노력은 했지만

과연 100% 만족한 여행이었는지는 의문이다.


노약자와 어린이들(?)을 손님으로 치르고 보니

고충사항이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질적으로 양적으로나 고생스럽긴 마찬가지라는 결론이 났다.

손님이 방문한다고 할때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것들,

예를 들어 손님방을 모두 치우고

침구와 각종 필요도구들을 채우는 것도 결코 만만치 않았으며

매번 그들의 끼니를 고민해야하고

관광은 관광대로, 휴양은 휴양대로

24시간 옆에 붙어서 보호자 역할을 해야한다.

몸이 축나지 않으면, 정신이 축나는,

뭐 그런 식이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사람으로 북적이던 집이,

손님들이 돌아가 조용해지면

왠지 모르게 허전하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하다.

집에 남아있는 그들의 흔적을 정리하고,

그렇게 다시 일상속으로 돌아가는 것도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당분간은 손님을 받지 않을 예정이지만

아주 예전부터 우리집에 오겠다고 한 사촌동생,

그 끝판왕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 아이와 동갑인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와서

여름 방학 한달동안 여름캠프를 보내겠다는데…

한 달이라니. 아이고.

이젠 여름캠프까지 알아봐야하는 상황에 빠졌다.

그래도 나와 수다 상대가 되는 성인이 오니 좀 나을까…?

아, 모르겠다,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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