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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해외에서 자식노릇하기

by 글쓰는 백곰 2019. 3. 1.

며칠 전, 어머니의 환갑이 있었다.

나는 해외에 나와 있기도 하고,

어머니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잘 모르므로

(아버지는 8년에 새어머니와 재혼하셨다)

약 4개월 전에 어머니 딸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넌 어떻게 준비하고 있냐는 말에

시어머님 환갑때 어느 정도 현금을 드렸으니

똑같은 수준으로 할 거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그 정도로 해야겠다는 합의를 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머님 생신에

어머니 계좌로 용돈을 송금해 드렸다.

그리고 생신이 지난 다음날,

아버지에게서 카톡 사진이 왔다.

무심코 사진을 봤는데, 그 속에선 환갑잔치가 열리고 있었다.

나는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아버지랑 통화를 했다.

어머니 딸이 잔치를 준비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상황에서 뭔가 씁쓸함을 느꼈다.

뭐, 내가 주체가 되어서 하는 것이 아니니

뭐라고 할 입장은 못되지만,

잔치를 준비할 정도면 나에게도 알려주었다면

좀 더 신경을 써드릴 수 있었을 텐데.

뭔가 돈만 달랑 보낸 모양새가 되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번 일이 있고나니

문득 시어머님 생각이 났다.

올해는 시어머님 칠순이 있는 해다.

사실, 작년에 시부모님을 미국으로 오시게 한것도

어머님 칠순을 그것으로 대신하자는 것이었다.

항공료와 여러가지 비용들을 다 지불하고

미국에 오셔서 갖고 싶어하시는 것들도 사드리니

가정경제에 타격이 있을 정도로 지출이 컸었다.

하지만 워낙에 두분이 연로하시고 몸이 안좋으시니

하루라도 빠를 때 오시게 하는게 낫겠다 싶었는데,

막상 칠순이신 올해가 되고 보니

언제 그런게 있었나, 까먹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선물은 미리 하는게 아니라는 교훈을 얻었다.

게다가 환갑은 잔치를 안한다 쳐도,

칠순은 뭔가 해야한다는 압박감이 더 크기도 했다.

어머님은 괜찮으시다고 하시지만,

주변 사람들이 워낙 말하기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논란을 만드는 가까운 이들이 몇 있으시다)

그들에게 어머님 마음이 상하는 일이 없도록

서운하지 않을 무언가를 해 드려야 할것 같았다.

그래서 어머님께 전화를 해서 여쭤 보았더니

일본온천여행을 가고 싶다고 하신다.

워낙에 걷는 것도 힘들어하시니 관광패키지 말고

휴양할수 있는 온천여행을 하고 싶어하셔서

내 나름대로 여행상품을 찾아보았다.

검색해 본 결과, 어머님(아버님도)이 원하시는 세세한 부분들을

내가 조정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옆에 있는 것도 아닌 해외에서 알아보기도 힘들고,

또한 아버님은 취향이 까다로우셔서 (어머님 생신이건만)

내가 섣불리 정하는 것보다

아버님께서 직접 여행사에서 상품을 고르시는게

나중에 탈나지 않을 것 같았다.

원하시는 대로 여행상품을 결정하시면

필요한 경비를 보내드리는 것으로 해야겠다는 결론이 났다.


그리고 올해 내가 해야할 일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엄마의 납골당 관리이다.

현재 엄마의 유해는 납골당에 있다.

생전에 원하시던 것이라 그곳에 모셔 두었지만

미국으로 오기 전에 옮겨야 하나 심하게 고민했었다.

엄마의 가족이 나밖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재혼한 아빠가 관리하는 것도 곤란하고,

철없는 오빠가 관리할리는 더더욱 없고…

5년마다 한번씩 관리비를 입금시켜줘야하는데

저번에 나의 실수로 바뀐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았더니

아버지에게 연락이 갔다고 한다.

그때 아버지는 꽤나 곤란한 눈치셨다.

믿기지 않겠지만, 새어머니는 어머니에 대해 무척 예민하신 편이다.

사별 후 재혼인데 뭐 그럴것까지 있나 싶지만… 뭐 여튼…

5년마다 연락해서 관리하는 것을 잊어버릴까봐서

오기 전에 엄마의 유해를 다른 곳에 보내고 싶었지만

오빠가 결사 반대를 하며 화를 냈다.

본인이 관리할 것도 아니면서…

여튼… 그렇게 나는 5년에 한번씩 납골당에 연락해서

관리비를 송금해야 하는 임무를 안게 되었다.

가족에게 연락이 되지 않고 관리비가 연체되면

납골당에서 유해를 임의로 버린다고 한다.

이제 9년차가 되어가니 슬슬 납골당과 연락을 해봐야겠다.


해외에서 자식 노릇한다는 것...

부모님이 살아계시든, 돌아가셨든,

시부모님이든, 친정부모님이든 간에

자식이 해야할 도리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자식이야 옆에 끼고 있으니 당장 보살펴줄수 있으나

멀리 떨어져 있는 부모님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지 싶다.

경제적으로 아주 여유가 많다면

자주 모시거나, 뵈러 가거나 하겠지만...

우리에게 타지에서의 삶이란

아직도 빡빡하고, 어려운 일들 투성이다.

비록 부모님께 넉넉하게 해드리진 못해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실까?

나는 가끔 그런 의문이 든다.

훈훈한 자녀관계, 시월드 관계면 좋으련만

사연 많은 여자인 나는

그다지 착한 자녀, 착한 며느리가 못된다.

어설픈 게 참 문제이지 싶다.

아주 착하거나, 아주 못되거나 해야하는데

이건 뭐, 양쪽 모두에 발을 하나씩 걸쳐놓고 있다고나 할까.

좋은 일을 하고 나서도 퉁퉁 거리거나,

싫은 일을 하고 나서도 맘 불편해 한다거나…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왔다갔다 하는

그런 내가 한심할 때가 종종 있다.

그래도 좋은게 좋은 거라고,

해드릴땐 기쁜 마음으로 해드리자고 맘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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