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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누가 우리집을 엿보는가

by 글쓰는 백곰 2019. 3. 20.

아파트에 살때만 해도 보안걱정이 없었다.

그 곳은 출입통제가 비교적 엄격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현재의 우리집으로 이사를 하고 보니

보안에 있어서 뭔가 허술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타운하우스에 살고 있지만,

별도의 보안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누가 맘 먹고 나쁜 짓을 하려고 한다면

그대로 범죄에 노출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나 할까.


물론 이사 오자 마자 현관에 도어벨은 달았다.

우리집에서 사용하는 것은 Ring 인데,

꼭 벨을 울리지 않아도

카메라 센서로 누가 현관에 접근하는지 알려준다.

요즘은 워낙 세상이 좋아지다보니,

내 핸드폰으로 누가 왔는지 실시간중계까지 해준다.

녹화된 영상도 다시 찾아볼수 있었다.

그래서 그거 하나면 충분하겠지 싶었다.


그러다 어느날,

우리집 차고의 비밀번호 입력장치 뚜껑이 열려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각자 차고 리모컨이 있기 때문에

비밀번호를 입력할 일이 없다.

그래서 다시 뚜껑을 닫아 놓았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또 뚜껑이 열려 있는 게 아닌가.

이는 즉,

누군가가 우리집에 들어오겠다는 일념 하에

인내심을 가지고 성실하게 지구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남편은 영 찝찝하다며 고심을 하더니

결국 Ring 카메라를 두대 더 사서

차고 앞에 하나, 뒷마당에 하나를 설치했다.


없던 게 생겨서인가, 신경 쓸 일이 자꾸만 생겼다.

툭하면 경고음이 울리고 난리였던 것이다.

(핸드폰으로 알림음이 울린다)

처음엔 카메라 센서 감지 반경을 너무 넓게 잡아서

옆집 차만 지나가도 알림이 울리곤 했으며,

뒷마당에 다람쥐가 지나가도 난리고,

내가 마당 쓸러 갈때도 가차없으며,

쓰레기를 버리러 차고를 나갈 때 등등…

쉬지 않고 울려댔다.


그래도 장점 몇가지가 있긴 하다.

카메라가 사방에 설치 되어 있으니

누가 오가는지 다 볼 수 있다는 것.

우리 타운하우스는 매주 목요일에 거리 청소를 하는데,

청소 아저씨가 우리집 바깥 수도를 틀어 손을 닦았다.

물론, 카메라로 다 보였으니 아는 사실이다.

뭐, 청소하다가 손을 닦는 거 가지고 뭐라할만큼

우리부부는 쪼잔한 이들이 아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화단이 흠뻑 젖을 정도로 줄줄 흐르고 있는 수돗물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아… 아저씨…! 수도 좀 꼭 잠그고 다니지!!!


그리고 언제나 나의 출입(?)이 궁금한 남편은

차고를 오가는 나의 모습을 핸드폰으로 관찰하며

전화하는 타이밍을 계산하곤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운전할때 전화오는 것에 예민하고,

집에 도착해 바로 아이를 챙겨야 하는 상황에 전화가 오는게

아주아주 싫다. (전화 오는 사람은 남편밖에 없음)

간단히 말하자면 한번에 두 개 하는 게 싫다고나 할까.

그런 앙칼진 마누라의 성격을 아는 남편은

Ring 카메라로 전화할 타이밍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느낀 장점이 하나 더.

나는 우리집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는데,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상황에서

가끔 겁이 덜컥 날 때가 있다.

무슨 소리를 들은 것도 같고,

왠지 아래에 뭐가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들때가.

그렇다고 자고 있는 남편을 깨우기도 그렇고…

잠시동안 우물쭈물하며 계단에 서 있다가

문득 카메라의 정체가 떠올랐다.

누가 우리집에 침범하고자 했으면 기록이 있을 터였다.

그래서 지난 밤의 행적을 검색해 봤다.

다행히도 새벽에 오간 기록은 없었다.

그제서야 나는 안심하고 내려올 수 있었다.


그리고…

카메라를 설치하고 나서

우리집으로 들어오려고 했던 흔적은

더이상 목격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카메라가 보이면 치사해서라도 피하지 않을까?

남편은 이제 안심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나는 문득,

우리동네 타운하우스 중에서 가장 작은 우리집이

양쪽 집들도 없는 카메라를 설치한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르게 실소가 터진다.

뭔가 굉장한 재산이라도 품고 있는 듯해서. ㅋㅋㅋ

하지만 이로써 안심되는 면이 큰 건 사실이다.

여기는 타국이고,

이곳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이방인이니까.

사소한 것에도 모든 게 두렵고, 겁나고 그러는.

시간이 지나면 좀 담담해지려나…?

아니, 우리 천성이 소심해서 끝까지 불가능할 것이다.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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