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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그사람

그 시절의 소녀들에게

by 글쓰는 백곰 2020. 6. 19.

며칠 간 몸이 아팠다.

그래서 되도록 의식적으로 몸을 쓰지 않으려고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어제는 한국단편 소설을 읽었는데,

낯익은 듯한 상황과 인물들이 갈대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주인공은 고아로 수녀님이 돌보는 보육원에서 자랐다.

이제 그녀는 스스로의 밥벌이를 하는 성인이 되었지만

유년기의 상실은 두고두고 그녀의 일상을 맴돈다.

그래, 나에게도 그녀와 같은 소녀들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는 있지만

만나본 적은 없는, 그런 사이였다.


20대 중반에 시작한 방통대 공부는

나에게 여러가지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는데,

그 중 특히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배움이란 단순히 아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천하는 순간 완성된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어떤 것이 좋다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실행할 내 능력이 조금이라도 존재한다면

망설이지 않고 그 손을 펴야 하는 것,

그것의 중요함을 배웠다랄까.

그렇게 나는 개인적 후원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왕이면 가까운 곳에,

무언가 실체가 느껴질 만한 대상에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 당시 살고 있던 수원 근처로 알아보았다.

후원을 한다고 생각했을 때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과연 그것이 투명하게 쓰일 것인가 하는 문제였는데

후원단체장이 공금을 제 멋대로 쓴다하거나 하는 뉴스 탓이었다.

그런 내가 망설임 없이 선택한 곳은

수녀님들이 

도움이 필요한 소녀들과 함께 사는, 

그런 곳이었다.


처음 시작한 후원이다 보니

잘하고 싶은 의욕이 솟구치곤 했는데

막상 내가 할수 있는 거라곤 매월 5만원을 부치는 것 뿐이었다.

당시의 나는 낮엔 근무를, 밤엔 공부를 해야 하는 처지였고

집안사정까지 악화되어 그다지 경제적으로 편안하지 못했다.

그나마 5만원이라고 정한 까닭은

나의 유일한 취미를 포기함으로써 발생하는 비용이었기 때문이다.

20대의 나는 그 힘든 와중에도 망설임 없이 책을 사서 보곤 했는데

독서에서 얻는 심적 위로가 컸기 때문에 

돈이 아깝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소비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고,

필요하다면 도서관에서 빌려 보는 방법도 있었다.

그렇게 정한 금액이 5만원이었다.

이민 오기 전까지, 아마도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뭔가 생색을 내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후원단체와 긴밀하게 연락을 취하지는 않았다.

다만 일 년에 한번, 소득공제영수증을 받기 위해 전화를 하는 것 빼곤.

그러다가 그날은 무슨 바람이 들어서였을까, 

나는 갑자기 들뜬 사람마냥 사건을 만들어 냈다.


아마도 5월 초였던 걸로 기억한다.

5월이 가정의 날이기 때문에

시부모님과 외식을 할까 해서 아웃백의 홈페이지를 찾아 보았다.

접속과 동시에 5월달 이벤트 관련 내용이 떴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가족에 대한 사연을 올리면 추첨하여 무료 식사를 제공한다고 했다.

나는 그때 수녀님과 소녀들이 떠올랐다.

각자의 사정으로 머물 곳이 없는 소녀들이 모인 곳이지만

그곳도 하나의 가정이나 마찬가지 일테고,

이렇게 외식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정성들여 응모글을 썼고, 

며칠 지나지 않아 아웃백 쪽에서 연락이 왔다.

당첨이 되었으니 정확한 인원수를 알려 달라는

담당자의 말에도 어느 정도 흥분감이 섞여 있었다.

아마도 그녀와 나는 비슷한 감정이었을 것이다.

나는 즉시 수녀님께 전화를 드렸고

10명 안팎의 아이들과 수녀님들은 외식을 하게 되었다.

며칠 후 식사를 잘 마쳤다는 소식을 들은 것도 같다.


이 내용들이 갑자기 떠오른 것은

어제 읽었던 단편집 속에서

수녀님께 양육되던 어느 고아였던 여자가

홀로서기를 하며, 떠나왔던 유년기를 기억하는 장면 때문이었다.

내 기억속의 소녀들, 

본 적은 없지만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아픈,

그 소녀들의 존재가 문득 떠올랐다.


대략 10년 전,

가정의 달 행사라며 아웃백 외식 기회를 만들었을 때,

그때의 나는 스스로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곳의 소녀들은 아주 어린 아이부터 고등학생까지 있었는데,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부모님과 살수 없는 처지였고

그들이야 말로 가족의 달에 쓸쓸할 거라고,

그러니 이런 이벤트 하나 만들어주는 아이디어가 제법 괜찮다고.

하지만 대략 10년이 지난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것이 과연 잘 한 일이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온통 가족들로 가득한 5월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이들로만 구성된 테이블에선 과연 어떤 분위기가 존재했을까.

철없는 아이들은 마냥 기뻤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사춘기에 들어선 청소년들은

옆테이블과 비교되는 자신의 현실을 되새기며

음식을 씹는 그 와중에서도,

결코 웃을 수 만은 없었을 것이다.

그 상황을 생각하니 갑자기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가슴이 미어졌다.

소녀들에게 상처를 준것 같다는 자각이 그제서야 든 것이다.

왜 하필, 10년도 더 된 지금에서야 깨닫게 된걸까,

그때와 지금의 내가 다른 이유가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예전의 나는 아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이의 마음을 헤아릴줄 몰랐다.


그때, 수녀님은 침착하도고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었다.

-고마워요, 아이들이 좋아했어요.  

그러나 나는 이 어설픈 선의로 인해 마음 아팠을,

그 5월의 소녀들을 떠올리며 

몇번이고 스스로를 자책하고, 자책한다.


이런 날 이해해 주고, 용서해 주길 바래.

나는 그때 어렸고, 아무 것도 몰랐단다.

너희들은 이제 어른이 되었겠지.

그러니 지난 날의 그 기억도 이해해 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진 근사한 어른이 되었기를.

언제나 웃음이 넘쳐나고 기쁨이 너를 둘러싸기를.

다만 그렇게 기도할께. 

행복하고 또 행복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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