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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그사람

3학년 10반 36번에게

by 글쓰는 백곰 2020. 6. 29.

고등학교 3학년에 반장을 했었다.

학기 초에 어쩌다가 임시반장을 하게 되었는데

그게 계기가 되어 반장으로 굳어버린 케이스였다.

게다가 고3 반장을 기피하는 것은 

인문계나 실업계나 다 마찬가지였을거라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그 1년은 내 인생에 많은 것들을 남긴 

귀중한 시간이었음은 분명하다.

단체생활에서 발생하는 수 많은 상황 속에서

인생의 다양한 면을 맛본 듯한 느낌이었다.

비록 50명 남짓한 작은 규모였지만

그들을 대표하는 것 역시 좋았다.

그들은 나를 좋아했는지 어쨌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매일매일 아이들의 이름과 번호를 외우고,

그들이 어디에 취업했는지를 애정을 담아 기억하곤 했었다.


실업계 고등학교는

3학년부터 취업 실습을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날이 갈수록 교실에 빈자리가 생겨났고

그 아이들의 출석부 번호 옆엔 회사 이름이 적혀있었다.

나는 8번의 취업실패로 인해

교실에 끝까지 남아 있던 희귀한 반장(?)이었다.

그 때 가장 빨리 취업이 된 아이가 있었는데,

작은 중소기업에 취업한 36번이었다.

1학기가 끝나갈 즈음이었나,

갑자기 담임선생님이 36번의 출석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회사를 때려친 것은 진작이고,

가출 상태로 집에도 들어오지 않아 

오히려 학교로 연락이 왔다며

거칠게 화를 내셨다.

나 역시 학교에서 그 아이를 보는 것이 전부였으므로

딱히 아는 것도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교실의 빈 자리는 많아졌고

어느덧 졸업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36번의 친구인 35번을 통해 

36번의 근황을 듣게 되었다.

집을 나가 어떤 남자와 동거중이며

아마도 동갑내기인듯 한데, 임신까지 한듯 하다고.

이 사실은 비밀인데, 반장 너한테만 이야기하는 거라고.


그 당시 우리학교는 졸업을 하기 위해선

꼭 졸업시험을 치러야 했다.

시험이 시작되려는 늦은 아침,

36번이 교실에 나타났다.

오토바이를 타다 넘어졌는지

한쪽 다리, 한쪽팔, 한쪽 얼굴까지 모두 상처 투성이었다.

담임선생님은 화가 나 펄펄 뛰었고,

나중엔 지휘봉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담임을 말렸다.

그러던 와중에 나도 몇대 얻어맞았지만

그렇다고 임신한 36번이 계속 맞게 둘 수도 없었다.

36번은 그날 하루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 나라도 아무말 안하는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 후 4년이 흘렀다.

‘아이러브스쿨’이라는 인터넷 동창회 사이트가 

선풍적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초등학교 동창회, 고등학교 동창회가 생겨났으며

그 별 볼일 없던 아이들은 벌써 술집을 드나드는 어른이 되었다.

나도 고3 동창회를 만들어 호프집에서 모임을 가졌는데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은 모두 근사해져 있었다.

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으니 나왔을지도.

약 6명이 모여서 맥주잔을 홀짝 거리고 있던 순간,

저기서 36번이 웃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것도 젖먹이 아기를 안은 채로.

아무렇지 않은 듯 우리 자리에 앉았는데

먼저 왔던 우리는 좀 당황스러웠다.

어쨌거나, 장소는 술집이었으며

곳곳에서 담배를 피워대는 곳이었다.

거기에 아기를 안고 오다니.

눈치가 없는 걸까, 아니면 쓸쓸했던 걸까,

복잡한 마음으로 앉아 있는데

갑자기 36번이 주섬주섬 뭔가를 챙기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 자리에서 모유수유를 하는 게 아닌가.

물론 가릴 거 다 가려서 보이는 건 없었지만

몇몇 친구들은 아주 쇼킹하고 어이 없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아기를 바라보는 36번의 얼굴이

더할나위 없이 행복해 보였기에

아무도 비난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아기를 너무나도 이뻐하는 그 모습 때문에

나는 아무 것도 묻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그 비밀에 대해,

어떤 말도 꺼내지 않는게 36번의 행복을 위한 거라고.


그렇게 두 세번의 동창회가 더 있었고,

36번은 두 번째 동창회에도 나타났다.

그러더니 헤어지는 순간,

아이들에게 초대장을 한장씩을 돌렸다.

아기 돌잔치가 있다고. 꼭 와달라고.


36번이 친했던 친구라곤 기껏해야 두세명인데

공통의 추억도 없는 다른 아이들에게 그걸 줬어야 했나,

나는 그 친구의 상황을 최대한 이해해보려 애썼다.

중학교 3학년때도 같은 반이기도 했지만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고, 조금 아는 사이였을 뿐인데.

그리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왜 그 돌잔치에 참석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돌잔치 날이 되어, 

같은 반 친구였던 아이들과 함께 앉았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36번과 그 남편, 그리고 작은 딸아이가 보였다.

남편은 적어도 열살 차이는 있어 보였다.

그 때문에 나는 어쩔수 없이 과거의 비밀이 연상되었고

그런 나를 눈치채기라도 한듯 35번이 내 귀에 속삭였다.


예전 그 아기는 낳았대.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애 아빠는 어디갔는지도 모르고.

그 아이는 친정엄마가 아들로 호적에 올렸대.

그러니까, 36번은 엄마가 아니라 이모인거지.

저 남편은 모르는 모양이야. 

하긴 나래도.


아, 그래… 고개를 끄덕이는 것 밖에 할말이 없었다.

그럼 그 아이는 행복한걸까?

36번의 새로운 보금자리는 행복해 보이는데,

정말 모두가 다 행복한 것일까?

영원한 비밀이란 존재하긴 하는 걸까?

그런걸 가슴에 품고사는 기분은 어떤걸까?


알고 싶지 않은 비밀의 틈으로 또 들어가고 말았다.

그 불편함 속에서 식욕을 잃었던 기억이다.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그 이후에 뭐가 있었는지

그런것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튼, 20대의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너는 지금 그 아이만 그렇게 이쁜거니?

자식이라는 게 상황에 따라 그렇게 애정이 쏠릴 수도 있는거니?

못마땅했다.

무슨 막장드라마에서 나오는 ‘출생의 비밀' 같았다.

그걸 이렇게 가까이서 보고 싶지도 않았고,

그 미래를 가슴 조리며 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멀어져 버렸고

나는 더 이상의 동창회도 열지 않았다.


문득 40대의 나는 20대의 그 완고하던 나에 대해 생각한다.

자신이 무슨 정의롭고 올바른 사람인 것 마냥.

그래봤자 그 모든 일들은 주워들은 것에 불과하면서.

누구를 심판하듯이 불편해하고, 혼자 심통을 부리고.

나이가 든다는 건 그런 기분이다.

뻣뻣해서 부러질 것만 같은 나무가 아니라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꺽이진 않는 갈대가 되고 싶은 심정.

그냥 저냥 시간이 흘러서, 

둥글고 모나지 않게

무던하게만 지냈으면 하는 심정.

누군가가 꼭 지난 날의 벌과 대가를 꼭 치뤄야 한다는

그런 어설픈 정의감 따윈 빛이 바래져 버리는 것.

그냥 이젠 좀 행복하면 어떠냐고

오히려 망각을 부추기는 것,

과거의 일들에 관용을 바라는 것.


나는 이제 36번이 마냥 행복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물론 그 시간의 틈속에서도

비밀이 만들어내는 순간순간의 고통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온전히 그 사람의 몫이기에

누구도 참견해서도, 눈을 흘겨서도 안된다.

그 새로운 가족 속에서 안정을 느끼기를.

그것이 쓸데없는 죄책감을 만들어내지 않기를.

될수 있는대로 최대한 행복하기를.

3학년 10반 반장이

3학년 10반 36번에게 하고 싶은 말은 그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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