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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그땐, 이렇게 될줄 몰랐지.

by 글쓰는 백곰 2020. 11. 12.

요즘들어 내가 자주 중얼거리는 말이다.

-그땐, 이렇게 될 줄 몰랐지


나는 상업고등학교 출신이다.

입학할 당시만 해도 타자기를 사용했었다. 

1학년이 되자마자 배운 것은 영문타자였다.

상업영어 문서들을 서식에 맞게 치는 거였다.

그렇게 영문타자 3급을 겨우 따고

2학년이 되어서는 한글타자 3급을 땄다.

그랬더니 갑자기 시대가 바뀌어서는(?)

워드 자격증을 또 따야 한다는 것이다.

힘들게 딴 타자 자격증은 종이조각이 되었다.

결국 나는 취업하는데 별 소용도 없는 영문타자를 배우느라

1년을 꼬박 애만 쓴 결과가 되었다.

영어에 뜻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영어가 필요한 직업군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마지막으로 일했던 회사에서 수입업무를 담당하면서

영어 타자를 칠줄 아는게 조금 도움이 되었지만

그걸로 내 인생이 크게 달라질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17살에 배웠던 영문 타자는

머리가 아닌 몸이 기억하는 탓에,

25년이 흘러도 그 실력만큼은 유효하다.

좋은 시절에 이민을 와서

영어를 자동해석해주는 핸드폰 앱도 있고 하지만,

가끔씩 영어를 직접 입력하면서 해석을 해야할 때가 많다.

지금처럼 아이의 과제를 도와주거나, 

공적 서류를 읽거나 할 때 말이다.

그때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영문타자를 직접 쳐서

해석기에 돌리곤 하는데,

그것이 나에게나 당연한 것이었지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지도 못하는 영단어를 치면서 불평을 쏟아내던 어린 나는,

그 시간이 존재해줘서 고맙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는 중년이 되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지, 이렇게 될 줄은.


그리고 대학교 1학년 때였던가,

방통대를 다니던 나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2학기 교양과목으로 ‘대학영어'를 신청했었다.

그때 나는 회사생활과 학업을 동시에 진행했었는데

때마침 가세가 기울고, 취업도 해야하는 등,

안정적이던 1학기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 닥치면서

나는 당장 먹고 사는 것부터 걱정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공부할 시간도 부족했고

마음은 여러가지 번민으로 복잡하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그나마 공부를 붙들고 있어서 겨우 견디던 그런 시절.

대학영어는 영어치고는 상당히 쉬운 난이도의 시험이었지만

영어 자체가 절대량의 시간을 요구하는 과목이라서

나는 아주 낮은 학점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 대학영어를 공부하던 시간은 무척 행복했던 기억이다.

아주 늦은 밤, 스탠드 불빛만 켜놓고

작은 골방에서 영어단어를 쓰고, 독해를 하고,

그런 시간 속에서 나는 평화로움을 느꼈다.

새로운 언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구나,

하지만 무척 시간이 많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구나,

정말 호사스러운 공부다, 나랑 어울리지 않아,

영어만 공부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정말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그랬던 내가 요즘은 하루 6시간 이상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온전히 영어 공부를 한다고 하긴 뭐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수업을 하는 아들 뒤에서

감시도 할 겸 같이 수업을 듣는 것이다.

100% 다 이해한다고 할 순 없지만

영어로 수업 받을 일이 없는 나로써는 굉장한 공부가 되고 있다.

아이의 학습교재를 미리 예습하기도 하는데,

학교 공부다 보니 미국역사와 여러가지 미국 문화도 같이 배우고 있다.

그리고, 영어로 성경을 쓴지도 1년이 되어간다.

평소에 미국인을 만날 일이 없는 나로써는

이번 기회에 듣는 연습을 많이 하고 있다.

미국에 와서 영어 공부를 할때만 해도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 형편없는 이해력과,

예전같지 않은 기억력 때문에 한숨만 나왔었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살자니, 

그것도 정말 나 자신에게 무책임한 일 같아서

나름대로 공부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그냥, 그래도 뭔가 꾸준히 헛발질이라도 하면

언젠가는 근사한 킥을 날릴 때도 올거라고

그 헛발질이 몇만번 필요한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이 들어 공부하는 게 정말 쉽지 않구나 싶다.

새로운 포맷으로 머리 속 지식을 다시 정렬하는 게,

어쩔땐 너무 감당할수 없을 만큼 거대해보이는 작업 같고

하루종일 매달렸는데도 별 차이 없어 보이는 현실을 보면

한숨만 나오고.

내가 왜 여기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건가, 

현실에 대한 회의가 들때쯤이면

어김없이 그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영어만 공부할수 있는 상황이면 참 좋겠다

25살의 나는 그런 소리를 했었다.

43살에 그런 날이 닥칠줄 모르고 말이다.

그땐 그게 사치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렇듯 내 하루를 점령해버릴 줄은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땐 어떻게 알수 있었는가 말이다.


시간이 언제나 꾸준하게 흐를 줄만 알았지,

그리고 그것들은 언제나 내 예상에서 크게 빗나가지 않을거라고,

안온하게만, 서운하지 않을 만큼한, 

그렇게 적당한 속도로 흘러가 달라고,

단지 그렇게만 바랬던 것 같다.

슬픔과 괴로움 속에 갇혀있던 그 공간속에서는.


그러나 참 이상하고 고맙게도,

시간을 지나온 어떤 것들은 

때로는 현재를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고,

우리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서프라이즈를 만들어주고,

그렇게 다시 미소지을수 있게 해준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맞다. 그래서 나는 종종 겸연쩍어진다. 

그렇기에 계속 똑같은 말을 중얼거리는 중이다. 

-그땐, 이렇게 될 줄 몰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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