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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이니셜 K에 대하여

by 글쓰는 백곰 2020. 12. 31.

요즘 들어 한국의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는 듯 하다. 

한국의 부모님이 걱정된다는 나에게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걱정 마. 한국엔 K 방역이 있잖아.

뭐, 처음엔 K 방역이 없었냐며 여전히 회의적인 내게,

한국은 이러나저러나 다른 나라보단 나을거라고

Korea가 왜 강한 줄 아냐고

다 사람을 갈아 넣기 때문이라고 남편이 대꾸했다.


요즘 들어 미국에서도 흔히 볼수 있는 이니셜 K.

Made in Korea 의 표식 같은 거다.

K-Pop, K-Food, K-Drama, 심지어 K-방역까지.

미국의 저명한 음악 상들은 BTS가 다 휩쓸고 있고,

그로서리 가판대엔 한국 식품들이 종류를 늘려가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상황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면서

한국드라마에 입문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남편 회사 동료 역시 한국드라마 추천을 부탁했을 정도니까. 

이렇듯 이니셜 K 가 들어간 것은

미국에서 일종의 힙한 문화가 되어버렸다.

그게 얼마나 지속력을 가질지 의문이 들긴 하지만,

처음 이민을 왔던 3년 전과 지금의 상황을 비교해보면

한국 문화가 무척 도드라지고 있는 게 확실하다.


객관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한국의 문화 자체가 우수한 것은 사실이다.

미국에 살다보니, 

사실 의외로 한국이 기술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선진국이라는 것을

종종 느낄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 반면에는 거기에 나오는 어떤 강제성,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살아 남기 위한 노력,

그 어떤 필사적인 것들이 녹아져 있어서

나는 마냥 해맑게 그것을 자랑할 순 없는 입장이다.

땅에서 기름이 펑펑 나오기를 해,

아니면 토양이라도 좋아서 농사라도 잘 되길 해,

넓거나 자연이 근사해서 관광사업이 흥하기를 해,

도대체 한국이란 나라가 가질 수 있는 특별함이란

‘사람' 그 자체 하나 뿐인 것이다.


가끔가다 한국 다큐를 본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산들의 풍경과,

그 안에서 뭔가를 계속 캐고 있는(?) 바지런한 사람들,

계절마다 잊지 말고 먹어 줘야 하는 특산물들…

난 그게 당연한 줄 알고 살아왔는데,

여길 와보니 오히려 ‘의식주'의 스펙트럼에 있어서

한국인들이 얼마나 필사적인지를 알겠다.

못 먹는 생물이 없으며, 독 있는 것은 독성을 제거해 먹고(?)

좌우지간 가리는 거 없이, 그것도 아주 열심히 챙기는 것을 보면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이지 긴박하고도 빡빡한 일이구나,

그렇게 훈련 되어진 민족이구나 싶다.


나는 한국인임이 자랑스럽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한국문화의 우수성에 대해 설명하려면

남편이 소위 말했던 “사람을 갈아넣는" 

한국만의 특수성을 설명해야 한다.

자원없는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생존능력을 발달시켜야 한다. 

그러니 당연히 경쟁이 치열해진다.

그로 인해 더 빨리, 더 훌륭하게 재촉되어지는 사회분위기,

그 속에서 태어난 것이 한국의 문화인 것이다.


처음 미국에 와서 충격을 받았던 것이 있다면

배달 음식에 ‘배달비'를 따로 받는다는 것이었다.

뭐, 현재는 한국에서도 받는다고는 하지만,

미국 배송비에 비할 바가 못된다.

한국에서는 당연하게 서비스 개념으로나 여겨졌던 것들이

전혀 당연하지 않다고, 이는 별도로 하나의 일이며,

한사람의 노력으로써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

아무리 싼 것을 사먹어도 배달비는 비싸다.

여기서 사람이 움직인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유일한 자원이 사람이었기에 당연히 무시되었던 것이

미국에서는 특별한 자원으로서 사람을 대우한다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것이 맞다고 느낀다.

한국의 새벽 배송도 좋고,

무엇이든 빠른 행정처리도 좋고, 다 좋지만

그로 인해 ‘인간다운 삶'을 희생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선

고민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본다.

고품질의 서비스를 누리기 위해선 그에 대한 대가를 응당히 더 지불해야하고

그렇게 사람 귀한 것을 존중해줘야 하는 것이 한국의 숙제가 아닐까.


그럼에도 내가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 해야 하는 이유는

어느 민족이나 다 이렇진 않다는 거다.

역사를 보면 좋은 환경속에서도 스스로 몰락한 민족이 얼마나 많았는가.

근성의 민족, 악착같이 이 악물고 달리는 민족,

슬픈 듯 하면서도, 음주가무를 즐기는 화끈한 민족.

정말 뭐라 설명해야 할까. 이런 민족이 또 없다.


게다가 미국에서 살아보니

한국농산물에서 나오는 극강의 맛과 향기가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

같은 종인데도, 미국에서는 그런 맛과 향이 안난다.

땅의 기운이 그런건지, 어쩐 건지

한국에서 나는 것들은 어째 중간이 없다. 사람이고, 자연이고간에.

뭐, 그래도 이왕이면 이도 저도 아닌 것보단

화끈하게, 이왕이면 확실한게 좋다고 생각하는 나.

그래, 나도 어쩔수 없는 이니셜 K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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