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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다정한 사람

by 글쓰는 백곰 2021. 1. 3.

작년에 교회모임에서 알게 된 사람이 있다.

직접 만난 것은 두번 밖에 안 되지만,

몇번 보지 않아도 좋은 사람은 쉽게 알아보기 마련이다. 

정말 오래간만에 만난 다정한 사람이었다. 


미국에서 사람을 사귄다는 것처럼 어려운 일도 없는 듯 하다.

미국인들과 친구가 되는 건 아직도 먼 미래의 일이고,

나와 친분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한국인들 뿐이다.

그러나 한국인이 한국인을 사귀는 것도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어서

오히려 더 좁은 커뮤니티 안에서 상처를 받고, 오해를 하며,

뭐... 기타 여러가지 일들이 끊이질 않는다.

그러다보니 굳이 사람을 사귀고 싶은 의욕이 생기질 않았다.

게다가 혼자 지내는 시간이 점차 많아지면서

그 속에서 자유로움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교회 모임도 그랬다. 사실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외로 그 소모임 사람들은 너무나 친절했고,

진솔한데다가, 겸손하기까지 한 사람들이었다.

좋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끝까지 모임에 참여했었는데

그 중에서도 유난히 반짝이던 사람이 있었다.


어쩌면 사람이 저렇게 명랑할 수가 있을까,

가끔씩 눈을 찡긋하며 웃는 모습마저 쾌활했다.

물론 그녀도 사람이기에 이러저러한 삶의 문제가 있었지만

그건 그 문제로만 그칠뿐,

그녀의 천성마저 바꿀 순 없어 보였다.

거침이 없으면서도 선을 넘지 않았으며,

어려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결코 가볍게 굴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아주 다정한 사람이라고 말해주곤 했다.

무슨 근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언니는 마음이 말랑말랑한, 포근한 사람이예요,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활짝 웃으며 말하곤 했다.

한달 전인가, 내 차로 집까지 데려다 주다가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서로 나누게 되었는데

어쩌다 시댁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그녀는 그녀대로, 나는 나대로.

나는 7년의 시집살이를 하던 그때를 그냥 담담하게 이야기했는데

갑자기 옆이 조용해졌다.

눈을 돌려보니 그녀가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었다.

-아, 어떡해, 흑흑… 언니가 왜… 흑흑…

-언니 같이 좋은 사람이 그렇게 살았단 말이예요? 흑흑…

좀처럼 그칠 눈물이 아니었다. 

이거 참. 

내가 위로를 해야하는 걸까, 

내가 위로를 받고 있는 걸까,

내 시집살이 이야기에 울어주는 사람을 본건 처음이었다.

그렇게 당황스러운 시간이 지나니, 

나중엔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정말 다정한 사람이구나, 너는.

이렇게까지 다른 사람에게 녹아들 수 있는 거구나, 너는.


나도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나 어찌된 게 그 방향이 옳지 않거나, 

표현방식이 서툴러

괜한 오지랖으로 빠지진 않는지, 

타인에게 거부감을 일으키진 않는지,

그런 걱정거리가 앞서게 되어 모든 행동을 멈추게 한다.

이렇게 망설이게 되는 것에는

천성이라는 것도 존재하겠지. 타고 나는 것.

그녀와 나는 같은 바닷가에 깔린 모래이긴 하지만,

바닷물이 지나고 나면 유난히 반짝이는 그녀는 

천성이 순수한, 빛이 나는 모래이다. 

내게 너무 어둠이 많은 까닭일까, 

옆에서 그 반짝임을 보고 있으면 눈이 부시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이랄까.

그런 귀한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이 새삼 고맙다.


인연이라는 것은 언제고 비틀어지고, 끊어지는 것이라지만

그것이 남긴 흔적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그때를 기억할 것이다.

과거의 힘들었던 나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며 슬퍼 하던 그녀의 위로를 

잊지 않을 것이다.

삶의 어느 공간 속,

문득 슬퍼지거나 고독한 순간이 왔을때

그때의 다정한 순간을 떠올리며

조용히 미소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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