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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안전한 곳은 어디일까

by 글쓰는 백곰 2023. 10. 15.

요즘 부쩍 공부하는 양이 많아져서 마트에 자주 가진 못하지만

간단히 픽업만 해오려고 Target에 가곤 한다.

주차를 한 후 매장까지 걸어가다보면

여봐란 듯이 불법 주차해 있는(?) 경찰차를 볼수 있다.

주차장이 아닌 매장 바로 앞에, 여봐란 듯이,

차종이 바뀔때도 있었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

내가 목격한 기간만 해도 대략 1년은 넘은 것 같다.

 

처음에는 겁이 났다.

매장 안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 출동한 걸까?

이미 그 안에서 유혈사태가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냥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닌지 한참 망설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늘 아무 일도 없었고,

사람들은 유유히 걸어다녔다.

나중에는 그 경찰차가 건물의 일부로 보일 지경이 되었다.

 

(언제나 그자리에 있는 경찰차)

왜 경찰차가 서있는 걸까?

가끔씩 무인계산대에서 계산도 하지 않고 

음료수를 스리슬쩍 훔치던 홈리스 때문일까?

하지만 어떤 경고음도 들리지 않던데. 

그리고 그 정도는 용인해주는 분위기였다.

1,2불 하는 금액 때문에 싸움을 원치 않는 그런 분위기.

게다가 나는 그런 사람을 단 한번만 목격했을 뿐이고.

아마도 그가 경찰의 타겟은 아닐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요즘 한창 주목받고 있는 뉴스,

샌프란시스코 슬럼화 사태가 떠올랐다.

 

원체가… 샌프란시스코는 노숙자가 많았다.

또한 그 곳의 분위기자체가 좀 남다르기도 했었다.

히피의 근원지라고 알려진 그 곳에는 뭐랄까…

자유롭다 못해 조금 방탕한 기운이 느껴진다랄까.

뭐, 나의 선입견인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 느껴지는 기운이 그랬었다.

그래도 집에서 가장 가까운 관광지에 속했기에

한국에서 온 손님들과 가장 먼저 가는 코스가 여기였다.

그런데 이제는 길을 걷기에도 좀 위협이 될만한 상황이 펼쳐지는 듯 했다.

가장 유명했던 쇼핑센터는 갈수록 공실률이 높아지고

상가에는 툭하면 강도가 들이닥쳤다.

이 모든 것은 코로나때문에 시작되었다고 뉴스는 말했다.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이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가 가능해지자

샌프란시스코를 대거 빠져나가기 시작하면서

경제와 기술의 중심에 있던 샌프란시스코가 힘을 잃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펜타닐과 같은 저렴하고도 강력한 마약의 등장에

노숙자들은 점점 더 늘어간다고 했다.

 

나는 도시의 슬럼화를 목격하게 되어 

마음이 무척 안좋아졌다.

예전부터도 깨끗하고 쾌적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샌프란시스코 자체의 낭만이라는 게 있었다.

바닷가의 비릿한 냄새와 

여유로워보이는 사람들의 웃음이 가득했던

그 따사롭던 햇살의 거리.

그곳이 조금씩 다른 그림으로 퇴색되고 있었다.

그렇듯 상실에 대한 씁쓸함을 미처 다 음미하기도 전,

내가 살고 있는 곳은 과연 괜찮은 건가, 

덜컥 불안감이 엄습했다.

집에서 겨우 1시간 거리인 곳이지 않은가.

 

나는 미국에 사는 것 자체가

안전에 대한 불안이란 언제나 동반자같은 거라고

어느정도 감내하고 살아야 할 몫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는

그것이 너무나 가까이 존재하는 문제임을 깨닫고

무척이나 걱정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코로나라는 질병 사태가 터졌는데

총을 사려고 줄을 서있는 미국인들을 보면서

이 나라가 어떤 힘의 원리로 유지되고 있는지 

그들이 숨기고 싶은 민낯을 갑자기 목격해버린 느낌이었다.

휴지와 물, 기타 식자재를 자유롭게 사지 못하는 것도

무척이나 답답하고 곤혹스러운 일이었는데

툭하면 매장을 파괴하고 도둑질하는 강도들 뉴스와,

갑자기 흑인들의 폭동사태가 일어나면서

여러면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동양인이 표적이 되어버리는 이상한 인종차별사태 역시.

과연 이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인가?

내가 한국에 살고 있었다면

최소한 저런 위협을 받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국은 거의 한민족이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답시고 폭력을 하는 그런 몰상식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어떤 믿음이 있었다.

물론 어디를 가도 범죄나나 광인들은 있기 마련이지만

저렇게 대규모로 폭력적인 상황이 유발될 때마다

내가 사회적 약자가 된 것 같아 억울했고 짜증이 났다.

다행히 우리집은 특정인종으로만 구성된 곳이다보니

(Fremont는 인도인과 중국인이 많은 동네이다)

그런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나는 그런 불행의 그림자가 우리동네까지 번질까봐

여전히 불안한 눈초리로 두리번 거리는 중이다.

내가 생각하건데,

우리동네 Target에 경찰차가 늘 서있는 것은

상가가 즐비한 그 곳에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킴으로써

범죄를 예방하는 경고문 같은 역할이 아닐까 싶다. 

 

이런 걱정들은 어쩌면 이민1세대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일말의 위험으로부터 우리 가족을 지켜야한다는

어떤 강박 같은 거 말이다.

여기서 삶의 시작을 맞이한 것이 아니니

모든 것에 의심스럽고, 조심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숙명.

 

과연 이렇게 사는게 맞는 것일까,

무심코 남편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러자 남편은 어딜가나 사는 건 힘든거라고 했다.

한국에 있었을 때 우리의 삶이 과연 만만했느냐고.

하긴. 그땐 또 다른 종류의 근심에 휩싸여있었지.

내 나라에 산다고 해서, 같은 언어를 쓴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과 진심으로 말이 통한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그때문에 더더욱 맘이 상했던 것도 같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발붙인 이 땅에서

이것이 삶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밖에.

어떤 삶이든 위험하고 곤란한 순간들의 연속이라고.

그래… 어쨌거나…

경찰차는 거기 그냥 서 있는게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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