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오고나서 처음으로 새벽에 일어났다.
오래간만의 시간,
오랜간만의 공기.
비록 여기는 낯선 땅이지만,
해가 뜨기 전의 고요함과 기대감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인 듯 하다.
나는 중, 고등학교를 멀리서 통학했었다.
학교는 서울에 있었는데,
집은 경기도 시흥에 있었다.
원래 서울에 살고 있다가
중학교 1학년때 경기도의 판자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그전에도 신정동의 반지하 집에서 살았으니,
내 유년기는 한번도 넉넉한 기억이 없다.
자주 이사를 해야했고, 그때마다 학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그때도 이사를 왔으면 전학을 해야했는데, 그게 지독히도 싫었다.
그래서 나는 새벽 일찍 일어나 버스와 전철을 타며 통학했다.
버스를 타고 부천역에서 전철을 타고
개봉역에서 내려 다시 마을버스를 탔다.
그런식으로 통학을 한건 고등학교 떄까지였다.
그때 내가 탔던 첫차가 새벽 5시 50분이었다.
한 여름에는 해가 떠있을때도 있었지만,
대개는 해가 뜨기 전의 시간이었다.
가난한 동네의 버스 정류장이었으므로,
유난히 별도 잘보였다.
버스를 기다리며 하늘의 별을 쳐다보았고,
서서히 하늘이 물들어 가며 아침을 여는 것을 지켜보곤 했다.
그 시간과 공기.
대개의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그 시간에 깨어
하루의 시작을 온전히 구경할수 있는 그 시간이 좋았다.
추우면 추운대로,
하얗게 입김이 나왔던 그 어느 새벽도 좋았다.
그렇게 새벽이란
나의 사춘기 감수성에 큰 역할을 했던 시간이었다.
나의 두번째 새벽은
출근길이었다.
결혼을 했지만, 회사를 그만둘만큼 형편이 좋지 못했기에
약 4년동안 회사를 다녀야했다.
출근시간이 8시까지여서, 차가 막히는 시간을 피해 5시 50분엔 집을 나서야 했다.
2년동안은 버스를 타고 다녔고,
그후에는 중고차를 운전하고 다녔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었는데,
식구들이 깰까봐 불도 안켜고 조심조심 출근을 했었다.
밖으로 나와 버스정류장까지 걷다 보면
빵집과 떡집은 이미 간판이 켜져 있었고,
시장 골목으로 물건을 납품하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치는 그런 새벽이었다.
15살의 새벽길에 감수성이 넘쳤다면,
30살의 새벽길은 생동감이 넘쳤다.
출퇴근의 처음 몇개월은 힘들었지만, 견딜 만 했다.
그 고생을 하고나서 난생처음 집을 장만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번째 새벽은
엄마에게 가는 길이었다.
결혼후 2년이 되었을 때,
엄마는 췌장암에 걸렸다.
난 회사를 다니면서도 매일 아침 저녁으로 친정집에 들렀는데
그땐 중고차로 출퇴근했기에 가능했다.
엄마는 한때 대부도에 있었다.
수원에서 대부도로 가는 그 새벽.
그 시간은
너무나 무섭고 암담한 순간이었다.
시골길이기에 가로등도 없는 도로를 지나,
가끔씩 지나가는 터널까지.
이 어둠이 끝이 있을까,
수많은 의문과 슬픔으로 목이 메이던 시간.
그 새벽의 시간을 지나왔음을 돌이켜보았다.
나의 새벽은
어떤 설렘,
어떤 일상,
어떤 고통이었다.
그 이후로는 새벽에 일어난 적이 없었다.
어쩌면 그만큼 평탄 했던 시간이라고 볼수도 있다.
그러다가 나는 오늘 이 낯선 땅에서
새벽에 일어나 운전대를 잡는다.
남편을 위해서, 우리 가정을 위해서.
이 곳에서 내가 우리 가족을 위해 할수 있는 것이 이것 뿐.
힘들어 하는 남편에게 의지가 되어줄수 있도록
그를 위해 기도하러 가는 길.
나의 또다른 새벽.
이 새벽도 언젠가 한 추억이 되어지겠지,
어둠속을 활기차게 달리는 차들 속에서
조용히 지난 일을 새겨보게 되는
나의 또다른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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