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오고나서
처음엔 무조건 가족이 함께 움직였다.
남편, 나, 아이 세명밖에 안되지만
셋이 움직이는 건 생각보다 무척 번거로웠다.
아이를 집에 혼자 놔두면 안되는 미국...
무엇보다 아이가 쇼핑에 협조적이지 않아서
언제나 모종의 딜(장난감,간식)을 한 후,
협의하에 움직여야 했다.
게다가 영어공포증이 있는 나에게
단독쇼핑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나는 운전은 20년 정도 했으므로
운전자체에 공포는 없었다.
그러나 거꾸로 남편이 장농면허였다.
이래저래 우리는 3인 1조로 움직여야 했었다.
미국 온 지 약 열흘이 지났으려나...
시차도 적응이 되고,
어지간한 물건들도 다 구입해서인가
몸의 긴장이 풀려서인지 감기기운이 있었다.
비상용으로 가져온 건강식품도 바닥이 났다.
그때 남편이 처음으로 나를 등떠밀었다.
오늘의 미션 어쩌구 저쩌구 하며,
언제까지 자신에게 의지할거냐며
혼자 타겟에 다녀오라고 하는 것이다.
그동안 남편과 같이 쇼핑은 했지만,
아이를 케어하느라 계산과정은 잘 지켜보지 않았다.
겁이 나서 싫다고, 싫다고 난리를 쳤는데
남편 역시 물러설 기세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감기약을 안먹고 버틸수도 없고,
뭐 어떻게 되겠어? 하는 맘으로 혼자 마트에 갔다.
(싸지는 않지만 월마트보단 물건이 좋은 타겟)
우리가 자주 가는 타겟은 의약품도 판매한다.
약사와 상의하여 조제하는 것은 CVS에서 처리하고
(보통 타겟 안에 붙어있는 약국이다)
그밖의 간단한 감기약과 비상약품은
타겟 매장에서 구입할수 있다.
나는 테라플루와 비타민 씨, 두개를 샀다.
계산하며 당황할까봐 일부러 현금을 챙겨갔다.
(초기감기에 효과만점인 테라플루)
달랑 두개 계산하고
30불이 넘는 금액을 주려고 하는데
갑자기 캐셔가 아이디를 보여달라고 한다.
엥?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네가 산 이 약들은 아이디가 있어야만 한단다.
갑자기 생긴 돌발상황에 말문이 막혀
(언제나 막혀있는 상태이지만, 더더욱)
어버버 할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는 소셜넘버가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주민등록번호 격인 소셜넘버가 없으니
당연히 운전면허증도 신청하지 못한 상태이고,
여권마저 들고오지 않았다.
하긴, 누가 마트 오는데 여권을 들고 오나.
게다가 남편은 여권 없이도 잘만 사던데.
아... 내 뒤에 사람은 기다리고 있고,
어떻게든 이 상황을 넘겨야겠다,
감기약만 빼고 비타민만 계산하면 안되겠니?
짧은 영어에 손짓 발짓을 했다.
그러나 너무도 단호하게 놉! 하는 캐셔.
당황한 나는 그때부터 한국어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오니 영어고 자시고,
무의식적으로 한국말이 튀어나왔다. ㅋㅋ
결국 나는 괜히 핸드백을 뒤지기 시작했는데,
거기에서 국제운전면허증이 나왔다.
혹시 이거는 안될까? (이 말을 한국어로 했다)
그러면서 제시했더니,
다행히도 알겠다며 계산해주었다.
얼핏 계산대화면을 보니, 생년을 적게 되어 있었다.
아, 타겟에서는 약을 살때 신분증을 요구하는 구나,
큰 깨달음을 얻고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나의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혹시 내가 어려보여서 그런건 아닐까? 하자
아주 단칼에 아닛! 대꾸하는 남편.
저럴때 보면 단호박도 저런 단호박이 없다.
다음에 약을 사러 갈때는 꼭 신분증 가져가야지,
그랬었는데...
이상한 일은.
그게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HEB에서 똑같이 테라플루를 샀는데,
신분증을 요구하지 않았다.
게다가 남편이 또 타겟에서 아이 감기약을 샀는데
그 역시도 신분증을 요구하지 않았다.
아마도 마트마다 규정이 다른것 같기도 하고,
약의 성분에 따라 다른 것 같다.
그래도 마트에서 헤매는 외국인에게
퉁명하게 하지 않고 끝까지 기다려준
그 캐셔 총각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부드러운 말투로, 아이디를 찾아봐,
서두르지 않고 몇번이고 말해준 그 총각.
게다가 뒤에서 아무말 없이 몇분이고 기다려준
이름 모를 동네 아저씨...
덕분에 쇼핑에 대한 공포를 극복할수 있었다.
안그랬다면 아직까지도 혼자 쇼핑하지 못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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