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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미국 독립기념일에

by 글쓰는 백곰 2019. 7. 7.

지금 미국은 연휴기간이다.

Independence day가 목요일이라

금요일에 휴가를 내서 4일동안 노는 분위기다.

그래서 태권도장도, 아트스쿨도 이번 주는 휴무였다.

집에만 있으니 아이는 지루해 죽을 지경이었고,

그 특유의 에너지를 애먼 나에게 발산하기 시작했다.

어찌나 내게 치대는지, 심신이 고달팠다.

이제 슬슬 나들이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7살...

그런 아이를 위해 남편은 

독립기념일에 불꽃 놀이를 가자고 했다.

문제는… 두 남자들끼리 합의봤다는 사실.

나는 사람 많은 곳은 아주 질색인데.


여튼… 그래서 가게 된 동네 근처의 놀이공원.

California’s Great America .

Santa Clara에 위치했는데, 

9시 45분에 불꽃놀이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 지역 근방에 2년째 살고 있지만

동네에 놀이동산이 있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어차피 우리의 목적은 놀이동산이 아니므로

우리는 저녁을 먹고 천천히 갔다.

주차비와 입장료가 결코 만만치 않았지만,

아이와의 약속은 웬만하면 지키는 것이 우리부부의 철학이라

이것도 일종의 이벤트라 생각하고 다녀왔다.

디즈니랜드나 유니버셜 스튜디오처럼

규모가 크지도, 디테일한 맛도 떨어지는 곳이었지만

뭐랄까…

모자르면 모자른 대로의 느낌이 나름 존재했다. 

뭐랄까, 미국 특유의 촌스러우면서도 허름해보이는 분위기?

하지만 독립기념일에 맞게 성조기로 이곳저곳을 꾸며놓은 걸 보니

나름대로 특별한 날의 ‘맛'이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겁이 많기 때문에

탈수 있는 놀이 기구는 손에 꼽고,

부모 역시 체력이 좋지 않은 관계로 인해

우리는 7시 30분쯤 입장했다.

약간의 줄을 기다려 회전목마를 타고,

낚시게임과 카레이싱을 했다.

인당 36불의 입장료가 있었지만,

낚시게임과 카레이싱은 별도의 경비를 지불해야 했다.

왜 사람들이 이 놀이공원의 존재를 모르는지

비로소 알 것 같은 대목이었다. 

못마땅한 얼굴로 돌아다니는 부모와 달리,

아이는 마냥 즐겁기만 했다.

불꽃놀이만 보는 줄 알았는데, 이게 웬 떡인가 했을 듯.

사람 쪼는 데 타고난, 참을성 없는 어린이가 

놀이기구 타겠다고 1시간 30분을 군말 없이 기다리는 것을 보니

에휴, 얼마나 좋으면, 싶어 웃음이 픽 새어나왔다.

두 사람만 타라고 하고 나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문득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진짜 오래간만이었다. 

한공간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본 것이.

차츰 쌀쌀해지는 밤공기 속에서

즐겁고도 가벼운 웃음소리가 떠다니고 있었다.

이런 것을 ‘그날의 분위기'라고 하는 것일까.

어떤 날이 주는 들뜨는 공기 같은 거 말이다.

그 속에서 뭔가 아늑하면서도 느슨한 기분이 들어

한참동안 사람들을 멀거니 쳐다 보았다.


이민 와서는 뭐가 그렇게 무서웠는지

밤에는 되도록 나가지 않았다.

평소에는 잘 모르지만 

해가 진 후 다시 보게 되는 미국의 밤거리란 

정말 삭막하기 그지 없다.

미국 특유의 투박한 건물들이

불빛 하나 없이 띄엄띄엄 서있는 도로를 지나다보면

뭔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아(그래봤자 사람이겠지만)

어지간하면 밤 외출 자체를 하지 않는다.

밤운전도 꺼려지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런 우리가 그날엔 11시가 넘도록 밤나들이를 한 것이다.


미국에서의 밤이었지만,

2년이란 시간이 지난 후의 밤이었고,

즐거워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 밤이었다.

그 속에서 불꽃은 쉬지 않고 솟아 올랐고

하늘에 꽃과 별을 수놓은 뒤 

다시 환영처럼 사그러들었다.

그때마다 우리는 모두 한결같이 환호하고 박수를 쳤으며

그렇게 축제의 마지막을 아쉬워했다.

독립기념일.

꼭 미국인이 아니어도 성조기를 마구 흔들 수 있는 그런 날.

그 화려한 밤의 한가운데에서 

우리가 정말 미국에 살고 있구나,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던, 그런 특별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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