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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냄새의 기억

by 글쓰는 백곰 2023. 8. 25.

어제는 아이의 태권도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태권도 도장이 있는 곳은 다른 작은 상가들도 함께 위치해있다.

그러나 언제나 같은 자리, 지정된 곳에만 주차하게 되어 있어서

실제로 그 상가들에 들어가서 무언가를 해본 적은 없다.

태권도가 끝나길 기다리는 약 40분간의 시간동안

음식을 사먹기는 애매하고, 

그렇다고 딱히 시간을 보낼만한 볼거리도 없는,

그냥 여러 식당들과 가게들이 섞여 있는 공간이었을 뿐이니까.

 

그런 그 공간이 특별하게 느껴진 건

일상에 찾아온 약간의 틈 때문이었다.

어제는 늘 주차하는 곳에 아스팔트를 까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래서 나는 도장에서 백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고

아이를 데리고 걸어가야 했다.

 

아이와 함께 갈때만 하더라도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도장에 데려다 주고 혼자 다시 차로 돌아오는 순간,

피자 가게 옆을 지나게 되었다.

그때 갑자기 훅 끼치던 피자 냄새.

그게 나를 갑자기 20살의 시절로 데려갔고,

그 때의 공기, 그 때의 친구들이 너무나 선명히 떠올라

나는 갑자기 그들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졌다.

 

……

 

우리가 20살 때 가던 그 피자집 기억나?

영등포 역 앞에 있던 피자 퍼즐 말이야.

거기 샐러드가 무제한이었나 그랬던 거 같아.

그래서 우리 세명은 툭하면 거기서 만나곤 했잖아.

그때의 우리는 참 공평하게도 가난했으니까.

몇달 만에 서로의 얼굴을 보게 되면 으레 가던 그곳 말야.

그땐 그렇게 맛있고, 즐겁고 그러더니…

20대 중반에 들어서기도 전에 그 곳은 없어져 버리고 말았지.

너는 기억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공간이 사라져 아쉽고 그랬어.

그런데 난 지금 한번도 가보지 못한 어느 피자 가게를 지나면서

그 때의 피자냄새를 맡고 말았어. 

그래서 다시 그곳에 앉아 있는 느낌이 들었어.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날수 있다는 기대감 속에 즐거웠던.

그러면서 동시에 뭔가 낯선 느낌이 다가왔지.

우리는 이제 피자 따윈 큰 결심하지 않고도 사먹을 수 있는

그런 어른의 나이가 되어버렸으니까.

그때의 시간이 너무나 선명해서 마치 며칠 전 같은데 말야.

…… 

맞아.

그저, 그리움이 일렁여서 전화해 봤어.

참, 이상하지 않아?

44살이나 먹은 캘리포니아에 사는 중년아줌마가

20살 시절 영등포에서 친구들이랑 피자 먹은 이야기나 하고 있다는 게.

그 별거 아니었던 게, 

오늘 갑자기, 이 낯선 곳에서, 

왜 이렇게 사무치게 다가오는지 참 모를 일이야.

그게 너무나 이상해서, 

그래서 전화해봤어.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나의 시간과 친구들의 시간은 너무 멀어서

내가 느낀 그 서글픔이 대수롭지 않아져 버릴까봐

그냥 망설이다가 시간이 흘러가 버리고 말았다.

지난 시간들을 추억하는 것은

대개 그때의 음악, 그때의 장소에 국한되어 있다고 믿었는데

이렇게 동떨어진 곳에서 냄새만으로도 

그 먼곳까지 달려갈수 있다는게

믿어지지가 않아서, 

혹은 황당스러운일이어서,

나는 그저 차안에 앉아 

늦은 저녁, 공기에 떠다니는 기억의 냄새에 빠져있었다.

행복하고도, 아릿한 묘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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