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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사랑하는 쮸쮸에게

by 글쓰는 백곰 2023. 9. 1.

우리가 프리몬트로 이사를 온지  만5년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쮸쮸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차를 주차시키고 들어가거나,

때때로 쓰레기를 버리러 앞마당에 나올 때마다 마주치던,

샴고양이 한마리.

아주 멀찌감치서 우리를 관찰하던 그 고양이에게

나는 쮸쮸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유치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종종 내 아이에게도 쮸쮸라고 부르곤 한다.

은연 중에 내 입에 붙어 있는, 

나름대로 귀여운 것에 대한 명명이랄까.

 

샴고양이 특유의 고급스러움이 묻어나는 녀석이었다.

1년을 넘게 마주치곤 했지만

얼마나 신중하고,

어찌나 겁쟁이인지,

자신을 향해 한발짝이라도 다가오면

황급히 자리를 떠나 버리는 야속한 길고양이.

우리는 쮸쮸와 친해지고 싶었기에

언젠가부터 습식사료를 사서 차고 앞에 두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가 옆에 있으면 먹지 않았고

차고 문을 닫고 들어가면 그제서야 다가와 먹었다.

쮸쮸는 처음부터 작은 고양이가 아니었다.

이미 자랄대로 자란 큰 고양이었는데,

길고양이가 그만큼 크려면 얼마나 조심할게 많았겠는가.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개월이 흘러서,

이제는 차고를 닫지 않아도 

내가 보는 앞에서 먹이를 먹는 쮸쮸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먹이를 먹기도 전에 내게 다가오더니

자신의 몸을 내 다리에 부벼대기 시작했다.

마음을 이제 연걸까,

나의 바지가 털뭉치로 엉망이 되어버려도

기뻤다. 

이렇게 서로 길들여진 것만 같아서.

(건식사료가 맘에 들지 않는 고양이)

 

쮸쮸는 우리가 아니어도 먹이를 주는 사람이 많은 듯 했다.

우리가 주는 습식사료도 완전히 먹는 날이 드물었으니까.

나중에는 어디서 맛있는 걸 먹고 왔는지

너희의 성의를 봐주기는 할께, 살짝 입만 댔으며

먹이보다는 몸을 비비는 것에 열심이었다.

야생의 고양이라 그런가 어쩐가

가끔은 힘조절을 못해

비비는 건지, 밀치는 건지 싶을 때가 있었다.

나중에 용기를 내어 몸을 쓰다듬을 때도 있었지만

까다로운 나의 쮸쮸,

나는 너를 만져도 되지만, 너는 안된다는 듯이

입질을 하거나, 하악대곤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몸을 대주는(?) 사람이 되어

전봇대마냥 서 있을 때가 많아졌다.

 

캘리포니아의 겨울은 길고양이에게 가혹한 계절이다.

비가 한달 넘게 내리니까.

그래서인가,

쮸쮸는 우리집 차고가 열리면

냉큼 들어와 차 밑에 앉아 있곤 했다.

그런데 그 시간이 점차 길어지면서

차고를 마냥 열어놓을 수만은 없었던 우리는

쫓아내듯 쮸쮸를 몰아내야만 했다.

밀폐된 차고보다는 

그래도 뒷마당 쪽이 자유로울것 같아서

한때 뒷마당쪽에 고양이 집도 사서 놔두고,

먹이도 주고 그랬지만,

역시나 쉽지 않은 우리 쮸쮸,

여봐란 듯이 차고만 고집했다.

결국 그 고집에 고양이 집만 썩어나갔고,

쮸쮸를 보는 내 심상도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쉽지 않은 고양이 같으니.

나중에는 그 녀석이 다가오면 살짝 쫓아내기도 했다.

여름이었다.

맨 다리에 그 거친 털이 부벼지는 건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자유로운 영혼의 쮸쮸는 숫놈이었다.

남편이 어느 날 보니, 남자였던 흔적(?)이 있었다고 했다.

길짐승들이 대개 그렇듯,

동물보호단체에서 납치한 후, 

번식의 욕구를 미리 차단해 버린 듯 했다.

2년 전, 우리집 뒷마당에 고양이 식구들이 점령했을 때

자신의 구역을 뺏겨버린 쮸쮸는

어미 고양이보다 덩치는 1.5배나 컸음에도 불구하고

맥없이 그들에게 자신의 터전을 양보했다.

(어미고양이에게 얻어터지는 장면을 남편이 목격했다)

날렵하지도, 눈치가 좋지도 않았다.

우리는 쮸쮸가 그 세계에서 나이 든 뒷방 할배일 것이며,

그나마 우리한테나 큰소리 치는 중일거라고 짐작했다.

아주 간교한 고양이라며.

그래도 그렇게 우리와 5년을 넘게 알고 지냈다.

 

지난 7월, 

우리는 3주 간 한국에 다녀왔다.

그동안 우리가 없어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은 없을거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참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길래

우리한테 삐졌나보다, 나중에 오려나 했다.

그러다 최근에 쮸쮸를 보게 되었고

우리는 깜짝 놀라고 말았는데

그 통통하고 털이 풍성하던 모습은 어디가고

가죽과 뼈가 드러날만큼 앙상해진 것이다.

그동안 동네사람들이 단체로 휴가라도 가서 

못 먹은걸까 싶어 허겁지겁 먹이를 챙겨주었다.

그러자 슬렁슬렁 먹이로 다가간 쮸쮸는

먹이를 한입 먹자마자 다시 게워내기 시작했다.

한입 먹었는데 두 세배는 뱉어내는 거 같았다.

이내 괴로워하며 먹이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남편과 나는 충격을 받았다.

드디어 쮸쮸에게도 자연의 섭리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 이후로도 우리는 쮸쮸를 마주칠 때마다

먹이를 챙겨주곤 했지만, 여전히 잘먹지 못했다.

기생충에 감염되었거나, 혹은 장기 손실이 오면

그렇게 토한다고 남편이 알려주었다.

그러나 쮸쮸는 길고양이다.

우리가 어떻게 해줄 수 없는 존재이다.

우리는 그가 어떻게 5년이 넘는 세월동안 살았는지,

혹은 그 이상의 세월을 어떻게 보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런데 이제와서 그 생물의 삶을 책임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쩌면 이것이 언제고 올 결말이었다는 것을

어쩔수 없이 받아들여만 했다.

 

무언가와의 작별은 

언제나 어렵고 곤란한 일이다.

말 못하는 짐승과의 작별 역시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그다지 특별하다고 느끼지 못할 순간에서도

우리는 나름대로의 시간을 함께 보내왔다는 것 때문에

서로 그렇게 딱히 다정하지 않아도,

서로 그렇게 특별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 순간이 끝이 온다고 생각하니

울컥이는 마음과, 쓸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모든 것엔 끝이 있기 마련이라고 알고는 있다.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이 일치되면 좋으련만

감당못할 애정을 줘버린걸까.

 

나의 밉고도 귀여운 고양이 쮸쮸야.

나는 앞으로도 네게 계속 먹이를 주겠지,

그리고 토하는 너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겠고.

그래도 그건 알아주길 바란다.

네가 너무 고통스럽지 않았으면 한다는 거.

더이상 어쩌지 못하는 우리의 심정은 이렇다는 거.

자연의 섭리 뭐 그딴 건 잘 모르겠지만

이왕이면 네가 더욱 장수하는 통통한 고양이었음 좋겠다는 거.

그리고 지금도 자주 볼수 없는 네가

정말 마주할 수 없는 날이 오게 된다면

그땐 정말 울어버릴지도 몰라.

네 밥그릇을 볼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겠지.

그래도 쮸쮸야.

비록 성격이 까다롭고 여러모로 이상한 고양이었지만

너는 내가 아는 샴고양이 중에 가장 이쁜 고양이었어.

비록 내 손가락을 물었지만, 그 앙큼한 기억까지도 간직할께.

쉽지 않은 너여서 특별했는지도 몰라.

네게 더이상 고통이 없기를. 

사랑하는 고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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