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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이민오기까지의 근황

by 글쓰는 백곰 2017. 7. 9.


(달라스 공항에서)




미국 생활을 시작한지 벌써 3개월이 넘었다.

여기서 왜 미국에 오게 되었는지를 간단히 써봐야겠다.


남편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한국의 대기업을 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회사의 시스템상 경쟁이 날로 치열해 지는 분위기와,

어느 연차가 되면 개발직이 아닌 관리직으로 올라가지 않으면 퇴사하는 분위기 등

여러가지 근무 여건이 남편에게 적절하지 않았다.

게다가 대기업이란 자신의 구미에 맞게 사람을 재배치함에 있어서 아무 감정적 동요가 없는 곳이다.

그게 사회라는 것이고, 한국 직업의 생태계였다.

우리 나라 모든 사람들이 선망하는 회사를 다니고 있었지만,

남편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일이 싫은 것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해외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때마침 국내 정치도 어수선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처하자,

이민이라는 것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의 문제가 되었다.

생존권과 관련된.


처음에는 캐나다를 갈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유럽쪽으로도 눈을 돌려보기도 했었다.

한창 북유럽이 인기가 좋을 때였다.

결국 남편은 육아휴직을 신청하고 영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면접을 보려면 기본적으로 영어가 되어야 하니까.

그 학원에서 영어이력서를 작성하는 강좌가 있었는데,

담당강사가 남편의 이력을 검토하더니 미국은 어떠냐며 권해주었다.

그 때부터 남편은 지독한 미국병에 걸리기 시작한다.


미국을 가는 방법은 약 3가지가 있는데,

학생으로 가서 거기서 공부 후, 취업하는 것과

비숙련직으로 가는 것,(물론 절차가 간단치 않다)

전문기술직으로 가는 것(미리 미국회사에 취업된다는 가정하에)

딱 그 세가지 였다.


그때 당시 남편은 학사 졸업후 11년간을 같은 회사에서 근무 중이었으며,

두 개의 특허가 있었다.

그 특허는 회사에서 반강제적으로 제출하라며 내준 숙제같은 거였는데,

남편의 아이디어 두 개가 채택 되었고,

이것을 회사에서 채택하여 세계각국에 특허출원을 해두었던 것이다.

남편은 학생도, 비숙련직도 해당되지 않았고,

그렇다고 전문기술직으로 가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는데,

어쩌다 인터넷 검색으로 NIW를 알게 된다.


NIW에 대한 정의는 길겠지만, 간단히 내가 우리 사정에 맞춰 설명하자면.

미국 입장에서 봤을 때 국익이 될 만한 인재에게 영주권을 주는 것이다.

보통 박사 이상의 학위, 권위있는 기관에서 인정할만한 공로가 있는 자가 해당된다.

그런데 남편이 그 NIW에 해당이 되었던 것이다.

보통 국제법인을 한곳 선정하여 그 가능성을 타진하는데, 

다행히 어느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하여 이 절차를 진행하게 되었다.

변호사를 선임하고, 추천서를 받고, 각종 서류 제출...

그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다루기로 하고...


그렇게 모든 서류를 다 갖추어 심사를 받기 위해 제출한지 3개월만에,

영주권 심사를 통과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사실, 영주권 심사과정은 최소 6개월에서 18개월까지 진행된다고 했는데 말이다.

이렇게까지 신속하게 진행이 된 것에는,

아무래도 남편의 특허권이 큰 몫을 차지 하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우리는 미국에 오게 되었다.


지금 여기는 미국 텍사스 오스틴.

우리 가족은 평온하게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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