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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시선으로부터의 자유

by 글쓰는 백곰 2018. 3. 21.

어제 아침,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난 뒤 타겟에 들렀다.

내 옷을 사러 가기 위해서였다.

이제 미국에서의 생활이 1년이 되고 보니

이곳의 4계절을 다 파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계절이 뚜렷해서 계절마다 옷이 필요했던 한국과는 달리

내가 사는 곳인 캘리포니아는 봄과 여름의 날씨만 있는 듯 하다.

그러니 한계절 옷을 계속 입는 경우가 많아서

닳거나 떨어진 옷들을 정리해야했고,

혹시 몰라 보관하고 있던 두꺼운 겨울 옷도 처분해야했다.

그러고보니 입을 옷이 별로 없어 쇼핑을 한 것이다.


옷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편이지만,

단정하게 입고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나같은 빅사이즈 체형은

한국에서의 옷 쇼핑이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온라인 쇼핑이 발전되어 있다고는 하나,

사이즈도, 핏도, 제 각기여서 맘에 쏙 드는 옷은 별로 없었다.

그렇기에 옷에 대한 흥미 자체도 떨어졌었는데

미국에 오니 내 신체가 평균사이즈 안에 들었으므로

아무데서나 옷을 사 입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옷 사는게 얼마나 신나는지 모른다.






( 타겟에서 옷을 자주 산다. 가격도 착하고, 품질도 괜찮다.)


직접 입어 보고 산다는 게 너무 즐겁다.

소재를 고를 수 있다는 것도,

내 눈으로 핏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것도.

게다가 가격이 저렴하기까지 하니

구입을 망설일 필요가 없다.

속옷 몇벌, 남방, 청바지 둘, 벨트까지 샀는데

100불 정도 밖에 들지 않았다.

누군가는 너무 싸구려를 산 게 아니냐고 할지도 모른다.

미국이라면 유명한 메이커들을 싸게 사는 편인데,

그런 것들을 사 입지 그러냐고.

물론 한국에서 파는 것보다는 싸게 파는 편이지만,

그 역시도 미국에서 싼 옷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내게 옷이란 일종의 소모품 같은 것이어서

열심히 입고, 사용하다가 떨어지면 버리는 것이지

비싸게 사서 쩔쩔매며 모셔두는 귀중품이 아니다.

게다가 미국은 한국처럼 남의 시선을 개의치 않는 편이며,

그 때문에 패션이 아주 자유롭다.

처음에는 나도 어쩔수 없는 한국인이었으므로

과다한 레깅스 패션의 엄마들을 마주칠 때마다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정작 그 사람들은 아무 거리낌이 없어 보였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인들에게 패션이란

철저히 기능성, 편안함에 중점을 두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내가 가는 카이저 병원에서는

간호사나 의사의 복장이 규정되어 있지 않다.

물론 의사 가운정도야 걸치겠지마는,

다른 병원직원들은 어떤 제복도 입지 않으며,

심지어 보풀이 잔뜩 일어난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있기도 한다.

어떤 장소이기 때문에 갖춰 입어야 하다는 강박이 덜하며,

누구도 그것에 대해 강요하지 않는 문화인 것이다.

그렇기에 타인의 패션에 대해서도 관대하다.

가슴 부분이 파졌느니, 엉덩이가 도드라 보인다느니,

그런 것들을 시선으로 훑지 않는다.

어쩌면 관심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에서였다면, 어휴, 말도 마라,

뚱뚱한 여자가 스키니 바지를 입고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몇 번이고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인가, 패션에 대해서는 미국보다 한국이 좀 세련된 멋은 있긴 하다.

그러나 유행에 너무 민감하기 때문에

똑같은 스타일의 옷, 똑같은 헤어스타일, 똑같은 화장의 얼굴들이 너무 많다.

게다가 유행은 너무 쉽게 지나가며 너무 빨리 잊혀지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 하는 건 다 해봐야 하는 그 군중심리,

그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어쩌면 무리 속에서 튀는 것을 싫어하는

무난하고 안전한 것을 추구하는 한국인들의 정서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 때문에 정작 자신에게 맞는,

자유로운 옷을 선택할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은 아닐까?


누구나 자신이 편한대로 입을 자유가 있다.

나는 비록 뚱뚱하지만, 스키니 청바지를 입는다.

한국 같았으면 엄두도 못낼 일을 하고 있다.

괜찮다.

내가 편하고, 만족스러우면 장땡이다.

게다가 여기는, 미국이다.

미국인들의 패션이 촌스럽다 할 지언정,

최소한 그들은 패션에서만큼은 무척 자유로운 영혼들이다.

그게 가장 중요하지, 아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