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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어른도 어른이 필요하다

by 글쓰는 백곰 2017. 11. 22.

미국에 와서 여러 사람을 만나면

대번 하는 말이 어떻게 왔냐는 것이다.

여기에 사는 지인이 있어? 친척이 있어?

뭐 그런 질문들.

물론 미국에 오려고 아는 분들의 추천서를 받기를 했지만

그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려고 여기로 이사를 온건 아니었다.

시작부터 타인에게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게

얼마나 마음의 짐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그냥 우리는 우리식대로 살아가자고

틀리면 좀 돌아가면 될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다행히도 워낙 좋은 시절에 이민을 와서

인터넷 검색만 해봐도 대개의 정보는 다 구할 수 있었다.

다만 영어가 원활하지 않아 초기정착에는 어려움이 좀 있었다.

무엇이든 처음은 두렵고 낯설기만 하니까.

이민 오게 되면 처리해야 할 여러가지 주거문제들을

하루빨리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우리의 아파트를 구해주던 부동산 업자분과

친분을 쌓게 되면서 여러가지 도움을 받기도 했다.


처음에는 사실 많이 경계했었다.

이민 온다고 했을 때 주변인들이 늘 하던 말이 있다.

-한국 사람 조심해라. 교회 사람 조심해라.

-사기 안 당하게 조심해라. 사람 너무 믿지 마라.

본인들이 많은 사기를 당했기 때문이라며

이런 저런 조언을 해주셨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말을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듯이

그분이 그런 사람을 만났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하게 교회에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이런 저런 도움을 받고, 주기도 하니까.

하물며 먼 타국에서 같은 민족이 만나면...

그렇게 정착을 도와주고, 친분을 쌓고

장기적으로 서로에게 도움을 주며 사는게 맞다.

하지만 교회에 왔다가 자신의 이익만 취하고 떠나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다고 한다.

교회 사람을 통해 비지니스를 권유하거나,

자신이 갖고 싶은 정보를 다 취하자마자 떠나는 사람들이.


인간관계는 핑퐁게임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부부는

일정하게 도움을 받으면 그만큼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계란 것이 그렇게 깔끔히 정리되면 좋으련만

사실 그 경계가 모호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차라리 신세를 지지 않고 살자고. 

그러면 받을 것도, 줄 것도 없어진다고 늘 다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의로 다가오는 사람은 결코 거부할 수 없으며,

상황이란 마음 먹은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기에

결국 어떤 식으로든지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렇게 텍사스에서 친분을 쌓았지만

얼마 안되어 캘리포니아로 옮기에 되어 아쉬움이 컸다.

내가 경계한 것이 이상할 정도로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다.


캘리포니아에 와서 교회에 등록하고

다닌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교회란 곳이 사람이 많은 곳이다 보니

이런 저런 일이 생기기 마련인데,

나의 현명하지 못한 처사로 불편한 사건이 생겼다.

그 때문에 나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자세히 이야기 하기는 좀 그렇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무언가를 강요했다는 것 정도로만 설명하는게 좋을듯 하다.

그걸 거절하는 상황에서 단호하게 대응했다가 마음 상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처음부터 애착이 가는 곳이 아니었고,

다닌지도 얼마 되지 않았기에 다른 곳으로 옮길까 생각했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불편한 마음을 지니고 매주 교회를 가는 것도 싫었다.

그런 내 상황을 알게 된 교회의 어른을 만났다.

새신자를 담당하고 있는 교회의 어른이신데,

직접 우리를 만나시며 저녁도 사주시고

불편한 내 마음을 위로해 주고자 애쓰셨다.

결국 그로인해 마음이 어느정도 편안해졌고

다시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나의 부모님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인데

정말 따뜻하고, 소탈하시며 겸손하신 분이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시며 위로해주셨는데,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나 역시 어떠했나, 

생각해볼 여지를 남겨주신

어른다운 어른이셨다.

이곳에서 언제든지 필요하면 연락하라며,

엄마 아빠로 생각하라고 하시며 미소 지으시던 두분.

그 분들(부부)과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면서 

내 주변에는 왜 이런 어른이 없었을까

문득 서글퍼지기도 했다.


나와 남편은 형편이 힘든 가정에서 자랐고,

성인이 되자 마자 부모님을 부양하며 살았다.

경제적, 신체적인 어려움을 가진 분들이라

언제나 우리가 보살펴 드려야 했다.

그것까지야 어쩔수 없는 일이라 치더라도,

마음을 만져주는 일이 서투르신 분들이라

따뜻한 말을 건네거나 하는 적도 없으셨다.

결국 우리는 생각보다 빨리 어른이 되어야 했고

우리가 모든 것을 결정해야 했고,

우리 힘으로 모든 걸 이뤄야했다.

그 과정에 도움을 주는 어른은 없었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경험으로 어른이 되어야했다.


그런데 여기서 그런 따뜻한 말을 건네는

진짜 어른을 만나고 보니

우리부부가 얼마나 안쓰럽게 살아왔는가를 

문득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

미국에 아는 사람도 없이,

도움 받을 사람도 없이 왔다는 것이

얼마나 희귀한 케이스인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번도 자각하지 못했던 사실,

어른도 어른이 필요하다는 것...



어제는 텍사스의 지인이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카드를 보내왔다.

우리를 처음으로 도와주었던 부동산 업자 그분.

그동안 고마웠노라며, 

언제나 가정에 축복과 평안이 가득하기를 기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카드를 보며 생각했다.

우리랑 몇살 차이 나지 않는 사람이지만

이 사람 역시 어른이구나, 

우리에게 또 다른 어른이 되어줄수 있겠구나.

텍사스를 떠나온 지 3개월이 지났는데,

마치 어른처럼 우리를 지켜보고 있구나...

크리스마스는 꼭 카드를 보내드려야지,

사랑과 감사를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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