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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사/희.노.애.락.

산타클라라를 산책하며

by 글쓰는 백곰 2017. 11. 16.

미국에 와서 처음 맞는 가을이다.

한국은 이미 영하의 날씨라고 하는데

여기는 아직 10~20도의 온도다.

가을이어서 그런가, 

비가 자주 내리고 있다.

그때마다 한움큼씩 떨어지는 낙엽들을 보면

가을은 가을이긴 한데,

한국의 가을풍경과는 분위기가 다름을 느낀다.

여기가 온난한 곳이어서 그런건지 

단풍의 색들이 진하지 않다.

그냥 누렇고, 시들하고, 뭔가 맥빠진다.

한국의 단풍들은

처절하리만큼 빨갛고, 그윽한 느낌이었는데.


미국에 온 지 7개월이 되어서야

온전한 일상 속으로 들어온 듯 하다.

남편은 회사 가고, 아이는 학교 가는 그런 일상.

물론 그 속에서도 여러가지 사건 사고는 있었지만

어쨌든 이제 자리를 잡아간다는 표현이 맞는듯 하다.

나도 이제서야 여유가 조금 생겼으므로

동네산책하며 걸어다닌지 2주가 넘었다.

여러가지 운동을 해보려고 했는데,

너무 무리가 가는 운동을 며칠 했다가

몸이 약해진 상태에서 독감에 걸려 고생한 후로는

무리한 운동은 하지 않기로 했다.

집에서 로잉머신을 30분~1시간씩 하곤 했는데

힘들기도 하거니와 (전신운동 버금간다)

그 이후로 크게 앓고 나서는

도무지 나란 사람의 성격이 왜그렇게 극성 맞은가,

적당히를 모르는가 싶어 한숨이 났다.

무언가를 시작하면, 눈에 보이는 성과가 보여야만 직성이 풀린다.

오늘은 몇 마일을 더, 아니 몇백 칼로리를 더,

더, 더, 더, 하다 보니 자신의 컨디션까지 망치는 거다.

무리한 상태에서 독감으로 며칠 앓고보니 

내가 얼마나 무식했는가를 깨달았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동네 한바퀴 돌기이다.



나는 원래 길눈이 무척 어두운 사람이어서

새로운 곳을 개척하고 싶다거나,

이런저런 곳을 다 알아보고 싶다거나 하는

그런 욕구 자체가 없는 편이다.

이런 내가 운전을 한다는 게 놀라울 정도다.

게다가 낯선 타국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 

과연 안전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코스는

아이의 등교길이다.

우리집에서 아이의 학교를 지나

공원 하나를 빙 돌아오면 다시 우리집이다.

학교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걸어 다니는 길이고

그만큼 안전한 길이기도 하다.



나는 요즘 팟캐스트를 들으며 

그렇게 동네를 산책하곤 한다.

길에는 나처럼 운동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걷는 운동을 한다.

보통 미국에서는 위험 때문에 이어폰을 꽂지 않고

길을 걸어다녀야 한다고 하는데 (미국 영어강사 말이)

동네가 안전해서 그런가,

모두들 이어폰을 꽂고 통화를 하거나 

음악을 들으며 산책을 한다.

그리고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도 무척 많다.

미국은 특히 중대형견이 많아서

반대편에서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게 겁을 먹게 된다.

다행히도 다들 매너가 있어서

내가 지나갈때까지 비켜주는 경우가 많다.

원래는 인도로 한사람씩 걸어다녀야 하지만

나란히 걷는 사람이 있을 경우는

그냥 내가 옆으로 비켜간다. 

길을 건너게 될 때에도 언제나 차들이 먼저 양보해준다.

어제, 공원 인도를 지나가다가

공원에 진입하려고 하는 차를 보았다.

나는 자리에 멈춰 서서 먼저 가라는 사인을 했다.

사람보다는 차를 먼저 보내는

한국에서의 젠틀한 습관이(?) 몸에 밴 탓이다.

그런데 내 앞을 지나가는 그 차의 창문이 열리더니

중년의 아저씨가 미소지으며 "Thank you"를 날려주었다.

별거 아닌데 참 흐뭇해졌다.

이게 여유가 있는 삶의 차이일까,

한국에서 운전을 20년 넘게 했지만

창문까지 내려가며 고맙다는 사람은 못봤다.

(뭐 나 역시도 그러겠지만)



산책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배우 김주혁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아까운 젊음, 그가 남긴 묘한 상실감.

그를 그다지 좋아하거나, 자주 본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인생의 허탈감이 들어 며칠이 심난했다.

왜? 라는 의문이라기 보다는

나 역시도 피해갈수 없을 거라는 막연한 공포.

오늘이란 시간이 내게 주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했다.

큰 인생의 목적까지는 아니어도

오늘의 '최선'을 다했는가 라는 그런 생각.

남편에게 거친 말을 하진 않았는가,

아이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진 않았는가,

나의 가족부터 서운하게 한 점이 없었는가를 생각했다.

그 생각들의 마지막에 발견한 사실 하나.

나는 지금 걷고 있다는 것.

언제 갈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세상이지만

내가 지금 할수 있는 것을 한다는 생각.

운동이라도 이렇게 조금씩 해서

수명이란 것을 조금 조절할수 있게 되고

그만큼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할 시간을 벌게 되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


오늘을 비가 내려 밖에 나가질 못했다.

시시한 비바람이 불어대고 있다.

내일은 비가 그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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